'ELS 손실사태' 해결책은 은행 창구 찔끔 열어주기…실효성 의문
거점점포 제한에 고령층 등 금융취약계층 판매 사실상 막아
은행권 "실적 반영 안되고 책임만 커져…차라리 안 팔아"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금융당국이 은행의 주가연계증권(ELS) 등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를 소수 거점점포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지만,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보다는 고령층 등 금융취약계층를 상대로 한 판매에 제한을 두고,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제시한 데 따른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품 가입이 까다로워지고 손실에 대한 책임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어 '차라리 팔지도 말고, 은행에서 가입도 안 하는 게 낫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1년 만에 내놓은 대책…소비자 선택 제한 불가피
금융당국은 작년 초 홍콩 H지수 ELS 손실 사태가 발생한 후 제도 개선을 추진해 왔다.
손실가능금액이 투자원금의 20%가 넘는 고난도 상품에 대한 불완전 판매를 줄이겠다는 취지에서다.
올 초부터 금융당국 공동 태스크포스(TF) 등을 통해 제도 개선의 큰 틀을 만들고, 공청회를 통해 업계와 학계,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해왔다.
H지수 ELS 대규모 손실 사태가 발생한 이후 약 1년 만에 제도 개선 방안이 나오는 셈이다.
당초 ELS 상품의 은행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최종 논의 끝에 거점점포로 판매를 한정하도록 했다.
거점점포의 운영 여부와 점포수 등은 은행이 자율에 따라 판단, 결정하게 된다.
즉, 은행의 ELS 상품 판매 의지에 따라 소비자가 거점점포를 일부러 찾아 방문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금융당국에서 거점점포 운영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제시한 적 없으나 전국 지점의 5~10% 정도가 적정하지 않나 본다"고 말했다.
이 경우 지점 수가 부족한 지방 등에선 소비자 불만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만 6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가족 등 동의를 받고 가입하게 됨에 따라 사실상 고위험 상품 가입이 금지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고령 소비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을 위해 희망하는 소비자만 적용한다는 입장이지만, 은행이 판매 대상자에서 우선 제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극소수 불완전판매 사례를 이유로 ELS 판매 채널을 제한하면 소비자 선택권이 과도하게 제한될 우려가 있다"면서 "비대면 금융이 활성화된 상황에서 창구 판매 금지가 근본적 해결책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LS 판매 재개했다 옷 벗을 판…제재 강화
은행들은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 실적은 은행 성과보상체계(KPI)에 반영되지 않는대신 불완전 판매에 따른 제재가 강화되는 점도 큰 부담이다.
금융당국은 국회 등과의 논의를 통해 금융소비자보호법상 과징금 부과 등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이르면 내년부터 불완전판매 규모가 큰 금융회사는 업무정지 등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다 책무구조도 실행과 맞물려 대표이사 책임을 강화하도록 함으로써 리스크를 무릅쓰고 은행이 ELS 판매를 재개할지도 의문이다.
직원들 입장에서도 ELS 소개 건수는 KPI에 반영되지 않아 굳이 적극적으로 판매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앞으로는 ELS는 전담판매 직원만 취급할 수 있게 되는데, 실적에도 포함되지 않는 상품 판매를 위해 일부러 교육 이수와 자격증을 따는 직원이 있겠느냐는 분위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불완전판매를 막겠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현실적으로 창구에서 고위험 상품 판매 대상 등을 놓고 혼란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은행 입장에서도 거점점포 개설 등 비용을 써가며 판매 재개를 굳이 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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