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헌의 기업단상] 중국이 더 무섭다
(서울=연합인포맥스) 그동안 중국은 IT 기술에서 한 수 아래였다. '기술강국' 한국의 시각에선 그랬다. 한국은 이미 일본과 유럽을 넘어 미국에 도전할 기세였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은 세계 1, 2위를 다퉜다. 스마트가전과 디스플레이, 배터리 분야도 세계 탑티어로 통했다. 최근 한국기업의 위상은 그렇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언제부터라고 콕 집기는 어렵지만, 미국의 기술패권은 더 세졌다. 중국의 약진은 놀라울 정도다. 더 무서운 건 중국 당국이 드라이브를 거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배터리, 가전, 자동차 등 대부분이 한국의 주력산업과 정면충돌한다는 점이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이 낸 '2023년 산업기술 수준 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중국과 한국의 산업기술 격차는 0.3년에 그친다. 3개월 정도면 중국이 한국의 기술 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과 중국은 1년 이상 기술 격차를 보였다. 매년 이 격차가 빠르게 줄어든다. 이 추세라면 앞으로 2~3년 후에는 완전히 따라잡힐 수 있다.
중국의 기술 약진은 중국 당국의 강력한 지원책 덕분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5년에 산업진흥책 '중국제조 2025'를 발표했다. 2025년까지 세계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에도 산업별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담아 밀어붙였다. 파격적인 규제 완화는 덤이었다. 규제 완화는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로봇 등 실험적 분야에서 치고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는 다시 고성능 반도체와 배터리 등 기술 제조업의 발전으로 확장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는 중국의 기술굴기를 확인하는 장이 됐다. CES에 자주 참석해온 대기업 관계자는 "CES 2025의 주인공은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가 아니라 중국이었다"고 평가했다. CES 현장을 취재한 당사 기자도 TV 등 생활가전 분야에서 더 이상 중국과 한국 제품 사이의 기술력 차이는 체감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중국은 로봇도 다수 전시했다. 젠슨 황이 로봇 개발 플랫폼 코스모스를 발표하며 14개 로봇을 선보였는데, 이 중 6개가 중국산이었다.
한국 시장에 직접 상륙하는 중국 기업들은 한층 더 위협적이다. 중국의 대표 전자 기업 샤오미와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가 그 선두에 섰다. 국내 기자간담회 등에서 이들은 공통으로 '가성비' 전략을 내세웠다. 그렇다고 제품 성능이 뒤처진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기술력 등에서 큰 차이가 없음이 확인된다면 빠른 시장 잠식도 가능해질 수 있다. 국내 로봇 청소기 시장에서 3년 연속 점유율 1위를 차지한 중국 '로보락'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중국산=저가 양산형 제품'이란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중국의 역습에 맞선 반격이 중요해진 시점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 2기의 변하지 않는 슬로건이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강력한 정책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가 중국 굴기를 약화시킬 것이란 전망이 있지만, 꼭 그렇진 않다. 미국 창구가 막힌 중국은 아시아와 중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영역을 확대 중이다. 유럽도 미국과 러시아에 대응해 중국과 더 밀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의 대중 압박이 오히려 중국의 기술 굴기를 더 강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의 기술 혁신은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듯 빠르고 강력하다. 이에 맞선 우리 정부 차원의 대비책이 있는지 의문이다. 중국은 정부가 법과 제도를 만들어 기술 상용화를 적극 지원하는 판인데, 한국에선 규제에 발목이 잡히는 일이 허다하다. 적어도 기술을 개발하고서 규제에 묶여 상용화를 못 하는 일들은 없어야 한다. 중국이 거대한 몸을 이끌고 전력 질주를 하는 데 덩치가 한참 작은 한국은 '만만디' 나라가 됐다는 푸념이 나온다. 기업은 연구개발과 투자 확대를 통해 끊임없이 혁신해야 하고, 정부는 기업 성장에 좋은 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정부와 기업이 제대로 협력할 수 있는 혁신 생태계가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 (산업부장)
chhan@yna.co.kr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