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대한항공의 '반반(半半)'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반반(half&half)'은 무엇일까. 누가 뭐래도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 대표되는 치킨 아닐까. 누군가가 '반반'을 선창하면 자연스럽게 '무 많이'가 따라붙는 것만 봐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반반 치킨의 매력은 '반전'이다. 고소하고 바삭한 후라이드와 매콤달콤한 양념을 번갈아 먹을 수 있는 재미. 한 가지 맛에 질릴 때쯤 다른 맛을 입에 물면 다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상반된 두 가지 맛이 만들어내는 시너지의 결과다. K푸드의 인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고 하니, 한국인을 넘어 세계인이 사랑하는 반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복날도 아닌데 치킨을 떠올린 건 11일 대한항공[003490]의 신규 기업 이미지(CI·Corporate Identity)를 접하고 나서다. 이날 대한항공은 1984년 이후 41년간 써온 CI를 교체한다고 발표했다. 아시아나항공[020560]을 품고 글로벌 10위권 항공사로 도약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다.
[출처:대한항공]
이날 처음 선보인 새 CI는 대한항공의 상징인 태극마크(심벌)와 영문명 'KOREAN AIR(로고타입)'를 나란히 배치한 형태였다. 색깔은 '다크 블루' 단색을 사용했다.
그동안 항공업계 내에서는 대한항공의 새 CI가 보라색이란 소문이 무성했다. 나름의 근거도 있었다. 대한민국 대표 항공사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태극 문양의 빨간색과 파란색을 반씩 섞었다는 것.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대한항공의 신규 CI가 보라색이라던데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며 궁금해했다.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반반'이 맞았다. 다만 색깔이 아닌 디자인과 철학 측면의 반반이었다. 대한항공은 회사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태극마크 심벌을 그대로 유지하되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해 세련된 이미지로 구현해냈다. 고유의 헤리티지를 계승하면서 기업 브랜드의 최신 트렌드인 모던함과 미니멀리즘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로고타입 'KOREAN AIR' 역시 볼드하게 표현해 국적 항공사로서의 격식을 갖췄지만, 개성도 포기하지 않았다. 서체 끝에 적용된 붓 터치 느낌의 마무리와 부드러운 커브, 열린 연결점 등은 한국식 우아함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다. '전통'과 '현대'가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룬, 대한항공만의 온고지신(溫故知新)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역시 "전 세계적인 트렌드에 맞춰 CI를 현대화하게 됐다"면서도 "해외 디자이너로부터 첫 시안을 받았을 때 태극무늬가 완전히 빠졌기에 '이건 안 된다. 우린 대한민국 대표 항공사니, 태극 문양을 살려야 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대한항공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드러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촬영: 유수진 기자]
그렇다고 해서 '빨강+파랑' 조합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로고 배경에 사용하는 '3D 모티프'가 대표적이다. 라이트블루를 기본으로 하되, 곳곳에 강조 색으로 레드를 쓴다. 이 3D모티프는 체크인 화면과 모바일 스카이패스 카드, 홈페이지 등 고객이 접할 수 있는 주요 디지털 화면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이날 대한항공이 공개한 기내식 신메뉴에서도 유사한 포인트를 찾을 수 있었다. 회사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Cesta'의 김세경 오너셰프와 협업해 승객들이 하늘에서도 고급 파인다이닝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기존 클래식한 느낌의 기내식에 변화를 주기 위해 식기부터 서비스까지 모든 걸 바꿨다.
동시에 그동안 대한항공 기내에서 맛볼 수 없었던 김치를 제공(퍼스트·비즈니스 클래스 한정)하기로 했다. 일부 승객의 요구에도 냄새 등을 이유로 기내에 실린 적 없었던 음식이다. 조 회장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모던함에 전통을 더한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현재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의 최종 결합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강산이 네 번 가까이 바뀌도록 '경쟁 관계'에 있었던 두 회사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양념과 후라이드' '빨강과 파랑' '전통과 현대' '파인다이닝과 김치'처럼 서로 상반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를 거쳐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면 누구보다 큰 시너지를 낼 거라는 데 이견이 없다. "양사가 운영상, 서비스상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안전을 목표로 한다는 운영 기본은 똑같다"며 "걱정하는 만큼 화학적 결합이 어렵진 않을 것"이라는 조 회장의 말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새 CI가 부착된 대한항공 항공기는 12일부터 순차적으로 전 세계 하늘길을 누빈다. '반반'의 시너지를 장착한 대한항공이 K푸드 열풍의 주역 치킨을 넘어,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반반이 되길 기대한다. (산업부 유수진 기자)
[촬영: 유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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