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모저모] 'IPO 추진' 질문에 "합병 안 한다"고 답한 한화그룹
(서울=연합인포맥스) ○…"승계 자금 활용이나 ㈜한화와의 합병 계획은 전혀 없습니다."
한화그룹이 최근 한화에너지 기업공개(IPO) 추진과 관련해 내놓은 공식 입장이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써 필요한 경쟁력 강화와 미래 성장 동력 확보, 국내외 신인도 제고를 위해 IPO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확정된 바 없다"면서 이 같은 답변을 덧붙였다.
엄밀히 따지면 질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다소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대답이다. 그나마 "승계 자금으로 쓰지 않는다"는 건 IPO를 통해 확보한 자금의 용처에 대한 설명일 수 있지만, ㈜한화[000880]와의 합병 부인은 다소 생뚱맞게 느껴진다. 한화는 왜 밑도 끝도 없이 합병 얘기를 꺼냈을까.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는 한화그룹이 김승연 회장으로부터 세 아들로의 그룹 승계를 얼마나 민감하고 조심스럽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상 주요하게 거론되는 승계 시나리오 중 하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부인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IPO를 추진하는 한화에너지는 김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들고 있는 곳이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50%, 김동원 한화생명[088350] 사장과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이 각 25%씩 보유한 비상장 오너 가족 회사다.
시장 관계자들이 한화에너지를 눈여겨보는 건 한화그룹의 지주사격 회사인 ㈜한화의 2대 주주(22.16%)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분율 차이도 0.49%포인트(p)밖에 나지 않는다. 한화그룹은 사실상 지주사인 ㈜한화 위에 또 다른 지배회사(한화에너지)가 있는 '옥상옥' 구조다.
그동안 한화는 김 회장이 ㈜한화의 최대주주(22.65%)로서 그룹 전반을 지배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승계 시점이 임박하며 변화가 필요해졌다. 사실상 김 회장은 이미 수년 전 경영에서 손을 떼고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머잖아 세 아들에게 회사를 넘겨주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지분 이양을 마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증여·상속 같은 정면 돌파를 택할 수 있고, 일부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할 수도 있다. 한화그룹과 오너일가 입장에선 가능한 '최소 비용'으로 이 작업을 끝내는 게 중요한 숙제다. 현재 세 아들도 ㈜한화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셋이 합쳐 10%가 채 되지 않는다. 한화에너지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화에너지는 지난해 공개매수 등을 통해 ㈜한화 지분율을 12.5%가량 끌어올리는 등 지배력을 대폭 강화했다. 한화오션 지분 매각으로 4천억원대의 현금을 손에 쥐기도 했다. 이번에 성공적으로 IPO를 마치면 추가 현금도 유입된다.
재계에서는 한화에너지가 향후 ㈜한화 지분을 추가 취득해 김 회장을 제치고 최대주주에 오를 가능성을 점친다. 이후 ㈜한화와 합병한 뒤 삼 형제가 맡은 사업별로 인적 분할하는 시나리오다. 한화그룹이 벌써부터 "아니"라고 부인한 내용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이어진 사업구조 개편으로 삼 형제가 책임질 사업간 교통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며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재계 내 전례도 있다.
앞서 SK그룹도 이와 유사하게 지배구조를 손질했다. 2015년 초까지 SK그룹은 '최태원 회장→SK C&C→SK㈜→주요 계열사'로 이어지는 옥상옥 구조였다. 그러나 그해 8월 SK C&C가 SK[034730]㈜를 흡수합병하며 현재의 지배구조가 완성됐다. 2009년 SK C&C가 상장했을 때부터 SK㈜와의 합병설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그때마다 SK그룹은 단호하게 부인했었다.
한화그룹 역시 설령 추후 합병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하더라도 굳이 지금부터 해당 사실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 시장의 눈길이 지속적으로 쏠리는 것은 물론, 상장 과정과 이후 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앞으로 IPO를 비롯해, 한화에너지 관련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매번 ㈜한화와의 합병 얘기가 뒤따르겠지만 사실상 한화 측의 입장은 지금과 동일할 것으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이 같은 지배구조 개편이 아니더라도 삼 형제는 IPO 과정에서 구주 매출을 통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해 직접 ㈜한화 지분을 사들이거나 향후 상속세 마련에 보탤 수 있단 얘기다. 한화그룹과 오너일가 입장에선 이번 한화에너지 IPO로 승계 준비를 위한 다양한 카드를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산업부 유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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