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이모저모] 위기마다 온 강방천의 편지…"지금은 인내할 때"
연합뉴스
(서울=연합인포맥스) ○…"마치 허세 섞인 한 판의 큰 포커 게임 같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전 회장이 최근 미·중 관세 전쟁으로 요동치는 시장을 짚으며 던진 메시지다. 서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며 압박하는 모습이, 실제 파국보다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블러핑'에 가깝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강방천 전 회장이 지난 10일, 다섯 번째 특별 서신을 투자자들에게 띄웠다. 서신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현재 시장을 뒤흔드는 관세 전쟁은 한때의 노이즈일 뿐, 진짜 주목해야 할 게임 체인저는 'AI 혁명'이 견인할 구조적인 금리 인하 시대라는 것이다. 그는 이 새로운 국면을 '디플레이션 성장 모델'로 명명하며, 투자의 활로는 '희소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강방천의 특별 서신은 그 자체로 시장의 이정표가 되어왔다. 지난 17년간 시장이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던 결정적인 순간마다 등장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과 2022년 글로벌 긴축기, 그리고 이번 관세 전쟁까지 총 다섯 차례. 이 서신들은 단순한 심리적 위안을 넘어 투자 기회의 증표 역할을 해왔다.
2008년 10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투매가 극에 달하고 코스피가 900선마저 위협받던 시절, 그는 펜을 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참을 수 없어…지금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한다면 평생의 한이 될 것 같다"고 토로하며 IMF 외환위기 때 공포에 질려 시장을 떠났던 이들이 이후 강세장의 과실을 놓쳤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지금의 공포스러운 상황이 지나간 후 펼쳐질 엄청난 축제의 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인내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결국은 축제를 맞이하는 위대한 투자자가 되시기를 바란다"고 역설했다.
그의 신념대로 공포를 인내한 투자자들은 '달콤한 열매'를 경험했다. 공포 속 기회를 포착하는 그의 원칙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2011년,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유럽 재정위기가 겹친 순간에도 그의 진단은 날카로웠다. 당시의 위기가 2008년 금융 시스템 붕괴와는 다른 '신용 위험'의 문제이며 이미 시장 가격에 과도하게 반영됐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에게 굳건히 자리를 지킬 것을 주문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의 충격 속에서도 그의 메시지는 일관됐다. 인내심을 재차 강조하며 위기가 오히려 한계 기업을 정리하고 1등 기업의 지배력을 공고히 할 기회임을 설파했다. 특히 '보복 소비' 키워드를 제시하며 위기 이후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보여주었고 이후 시장의 V자 반등으로 증명되었다.
가장 최근인 2022년 2월, 글로벌 긴축 공포가 시장을 엄습했을 때도 그의 편지는 도착했다. 다만 이번에는 위기의 양상 변화를 읽고 다른 처방을 내놓았다. "과거 조정들이 짧게 지났던 깊은 협곡이라면, 앞으로의 조정은 깊진 않지만 오래 가야 하는 U자형 또는 분지형 조정"이라며 장기전을 예고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내'와 '가치 집중'이라는 핵심 원칙은 놓지 않되 '부채 투자 회피'와 '적립식 분산 투자' 등 변화된 환경에 맞는 유연한 대응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강방천 전 회장의 서신은 위기의 순간마다 투자 심리가 바닥까지 떨어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중요한 '신호'를 던져왔다. 위기의 성격에 따라 단기 전망과 대응의 결은 달랐지만, "인내의 끈을 놓지 마시라", "두려울 때 다가서라"는 역발상 투자의 대원칙은 한결같았다. 그리고 그 원칙이 장기적인 부(富)로 연결될 수 있음을 과거의 기록들이 묵직하게 증명한다.
과거 네 차례 위기의 정점에서 발송된 강방천 서신의 일관된 등장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이번에도 그의 통찰은 장기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부의 지도를 그려주고 있다. 시장의 격변기에 불안에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는 투자자들만이 또 한 번 달콤한 열매를 수확할 것이다. 그의 이번 서신에 시장이 다시 한번 귀 기울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증권부 이규선 기자)
연합인포맥스
kslee2@yna.co.kr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