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재벌가 이야기에 빠진 외국인 투자자
"재벌가 소유 기업 악명 높아"…일본처럼 자이바쯔·게이레츠 청산해야
코스피, 지배구조 개선 기대감으로 30%↑
(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태 기자 =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글로벌 OTT를 휩쓸며 50여개 나라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 드라마 외에도 '눈물의 여왕'처럼 재벌을 소재로 해외에서 히트한 작품이 많다.
그런데 K-드라마 시청자만 재벌가 스토리에 푹 빠진 게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도 'Chaebol(재벌)'을 열심히 공부 중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국내 재벌가 히스토리를 영어로 써 해외 투자자에게 보내줬다"며 "승계 등 지배구조 문제가 글로벌 관심사"라고 전했다.
재벌은 K-드라마 팬에게나 낭만적 주인공이다. 외국인 투자자에겐 주가를 누르는 악당이다.
신흥국 투자운용사 모비우스캐피탈파트너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중요 원인은 취약한 지배구조"라며 "삼성·현대차·LG처럼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재벌가가 소유한 기업이 악명 높다"고 지적했다.
지분율 낮은 창업자 가문이 그룹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총수가 있는 78개 기업집단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겨우 3.5%였다. SK(0.40%)·HD현대(0.46%)·카카오(0.48%)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고작 0.5% 이하였다.
한국형 재벌은 일제강점기에 배태됐다. 1930년대 이후 민족 자본가가 일본계 자본을 투자받고자 일본 자이바쯔(財閥·재벌)와 관계를 맺었고, 자이바쯔로부터 기업조직과 경영기술을 배웠다.
동북아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교 교수는 "한국 재벌의 출현과 그 형태에 있어 일본 재벌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광복 후 재벌은 무럭무럭 자랐다. 1960년대 초부터는 군사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이후 수십년간 재벌과 정부의 협력이 경제를 키웠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지금은 재벌의 종언과 지배구조 개선이 기다려지는 시대다.
과거 재벌 해체를 주장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상법 개정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코스피는 연일 초강세를 보인다. 연합인포맥스 신주식종합(화면번호 3536)에 따르면 코스피는 연초부터 6월 24일까지 29.38% 치솟았다. 20일에 3년 5개월 만에 3,000선을, 24일에는 3년 9개월 만에 3,100선을 돌파했다.
코스피 랠리는 돌아온 글로벌 자금이 한몫했다. 대개 창업자 가문인 지배주주와 평범한 일반주주의 이익을 모두 중시하는 상법 개정을 해외 투자자가 고대하고 있다. 승계를 목적으로 한 비합리적 의사결정이 사라지고, 주주환원율이 높아진다는 기대다.
미국 투자은행(IB) JP모간은 상법 개정이 올해 3분기에 끝날 것이라며, 한국 투자 비중을 키우라는 의견을 냈다. 코스피가 1년 내로 3,500까지 오를 가능성도 보고서에 썼다. 중국계 CLSA는 한국 증시 재평가에 있어 상법 개정이 핵심 촉매라고 했다. 상법 개정을 통한 지배구조 개선으로 재벌그룹 지주회사 주가가 오른다고 전망했다.
기대감을 먹고 오른 증시가 떨어지지 않으려면 지배구조 개선이 현실화돼야 한다. 한국보다 먼저 증시 밸류업을 성공시킨 일본의 해법은 자이바쯔 청산이었다.
자이바쯔는 2차대전 이후 전범 기업으로 몰려 미국에 의해 해체됐으나 이후 산하 회사 경영진끼리 서로 연대하는 게이레츠(계열)로 변모했다. 한 가문이 지배했던 자이바쯔와 달리 게이레츠는 서로의 주식을 보유하며 연합했다.
이러한 상호주 관행은 일본 특유의 지배구조를 만들었고, 외국인 투자자의 비판을 받았다. 이를 수용한 일본 정부가 지배구조 개선을 주도했고, 1990년에 50%였던 전체 시가총액 중 상호출자 비중이 이제는 10% 정도로 떨어졌다.
자이바쯔 잔재인 게이레츠까지 정리한 일본 증시가 지난해 35년 만에 1989년 거품경제 고점을 경신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잘 알려진 해피엔딩이다.
이제 외국인은 K-드라마의 결말을 궁금해하고 있다. 악당은 재벌, 주인공은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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