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재무장관은 눈물 흘리면 안되는 이유
(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주 금융시장에서 '영국 역사상 가장 비싼 눈물'이 화제를 모았다.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이 의회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금융시장이 한바탕 술렁였다.
눈물의 경위는 이랬다. 영국 정부의 복지개편안 축소 문제가 진통을 겪는 가운데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리브스 재무장관의 거취 문제에 대한 질문에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자 리브스 장관이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후 스타머 총리는 '재정준칙을 강조한' 재무장관에 대해 신임을 재확인해 줬지만, 충격파는 컸다.
'개인적인 사정'이라는 해명이 뒤따랐음에도 채권시장은 재무장관이 울면 어떻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영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지난 2일 한때 연 4.68%까지 치솟았다. 30년물 영국 국채금리는 연 5.48%까지 급등했다.
재무장관의 눈물 두 방울에 채권 매도세가 집중되면서 시장은 급격히 출렁였다.
이전에도 영국 국채는 재정 불안이 불거질 때마다 매도 압력을 받아왔다. 올해 1월에도 영국 채권 매도세가 집중되며 10년물 금리가 4.90%까지 급등한 바 있다.
영국 국채는 지난 2022년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대규모 감세안을 내세우면서 재정 불안이 커졌을 때는 그야말로 패닉셀을 겪기도 했다. 당시 영국의 리즈 트러스 총리는 44일 만에 총리직을 사임했다.
영국 재무장관의 눈물이 부추긴 영국 국채 매도세는 다소 완화됐지만 영국 재정에 대한 시장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파운드 환율도 지난 7월 2일 1.37달러대에서 1.35달러대로 급락한 후 지지됐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주변국으로 전이될 경우다. 자칫 투자 심리를 자극하면 다른 나라 시장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영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을 비롯해 수많은 나라들이 재정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미국도 최근 감세안과 부채한도 상한 조정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미 지난 4월에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은 미국이 지난 2022년 말 영국이 겪은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영국 국채 불안에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한때 4.34%대로 다시 올랐고, 30년물 미 국채 금리도 4.86%대로 상승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이 시행되면 향후 10년 동안 연방 정부 부채를 3조4천억달러 증가시킬 것으로 분석했다.
미 재무부는 올해 초 정부부채 한도 36조1천억달러에 도달한 후 현재까지 특별 조치를 하고 있으며, 채무불이행(디폴트)에 직면하는 X-date가 8월 중에 도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적어도 7월 중에는 부채한도 상향에 대한 협상이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이번에도 과거처럼 갈등과 불안이 고조되다 결국 협상 타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미국 감세정책에 따른 재정 악화 우려가 커지면 금융시장은 또 한 번의 큰 파도를 겪을 공산이 크다.
영국과 미국의 재정 불안과 국채시장 혼란은 강 건너 불구경이 될까. 그렇지 않다. 주요국 장기채 금리 상승의 충격파가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이 들어오고 주식시장도 견조한 흐름을 보이면서 지난해 말 계엄사태 이후 놀란 시장 심리가 다소 가라앉았다.
이런 분위기는 외환시장에서도 반영됐다. 1,400원대였던 달러-원 환율이 6월에 1,340원대~1,380원대 부근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미국 상호관세 유예 기한이 오는 9일로 다가왔고, 국내 펀더멘털이 지속적으로 호조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도 제한적이다.
외환시장도 원화 강세 기조로 달리다 주춤해졌다. 시장 참가자들은 쉽게 달러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정책 안정성과 1·2차 추가경정예산 집행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는 우리나라 경제전망에 대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재정건전성 우려는 남아있다.
영국 재무장관의 눈물은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재정 관련 위기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재정 불안을 둘러싼 불확실한 대외 여건은 여전히 금융시장이 안심할 수 없는 대목이다. (경제부 정선영 기자)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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