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지금] 급진 좌파 시장이 온다…부동산 업계 '패닉'
(뉴욕=연합인포맥스) 지난달 25일 뉴욕증시에서 부동산 업종 지수(S&P500 Real Estate Sector)가 하루 만에 2.46% 급락했다. S&P500 지수는 당일 보합에 머물렀던 점을 고려하면 부동산 업종의 낙폭은 전체 시장의 흐름과 구별되는 '이슈'가 일어났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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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슈'는 전례 없이 급진적인 좌파 정치인이 차기 뉴욕시장으로 유력하다는 공포감이었다.
앞서 지난달 24일 뉴욕시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뉴욕시장 후보를 뽑는 예비선거(프라이머리) 본투표를 실시했다. 이 선거에서 33세의 정치 신인 조란 맘다니 뉴욕주 의원이 67세인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를 꺾으면서 사실상 민주당의 뉴욕시장 후보로 낙점받게 됐다. 그는 이달 2일 치러진 3차 라운드 투표에서 민주당 후보로 최종 낙점됐다.
뉴욕시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텃밭으로 민주당 간판을 달면 웬만해선 이기는 지역이다. 맘다니가 민주당의 뉴욕시장 후보로 낙점됐다는 것은 차기 뉴욕시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은 소식에 맨해튼을 중심으로 사업하는 미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 SL그린(NYS:SLG)의 주가는 25일 하루만 5.68% 떨어졌다. 작년 12월 18일 6.83% 급락한 이후 하루 최대 낙폭이다.
또 다른 뉴욕 중심의 부동산 개발업체 쿠쉬맨앤드웨이크필드(NYS:CWK)도 같은 날 주가가 3.07% 밀렸다.
뉴욕 중심의 부동산 개발업체 주가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부동산 업계에서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맘다니의 주택 정책 때문이다.
맘다니의 1순위 공약은 뉴욕시의 '살인적인' 아파트 임대료의 동결이다. 그는 뉴욕시에 있는 약 100만채의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에 대한 임대료 동결을 추진한다.
임대료 안정화는 뉴욕시의 주요 주택 정책 중 하나로 급격한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고 세입자에게 안정적인 거주 권리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6가구 이상, 1974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 주 대상이며 주요 보호 장치로는 ▲임대료 인상률 상한 ▲갱신 거부 금지 ▲퇴거 보호 ▲개선비용 인상 제한 등이다.
뉴욕의 부동산 전문지 더리얼딜은 "맘다니는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만을 대상으로 동결을 추진하지만 그것은 뉴욕시 전체 임대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며 "이미 10년간 인플레이션보다 낮은 인상률과 2019년 사실상의 비규제 종료로 유닛 렌트는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부동산위원회는 뉴욕시 집주인들은 이미 2019년에 도입된 임대료 인상 제한법에 시달리고 있으며 맘다니의 정책으로 연간 20억달러의 부동산세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부동산투자회사 가이아리얼에스테이트의 대니 피쉬먼 최고경영자는 "맘다니의 정책은 뉴욕시에 사형 선고와 같을 것"이라며 "동시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마이애미와 팜비치에 일어나는 최고의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플로리다주는 각종 유인책으로 미국 전역에서 부자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맘다니가 뉴욕시의 임대료를 직접 통제할 수는 없다. 뉴욕시의 임대주택 중 임대료 안정화 가구는 임대료 가이드라인 위원회(RGB)가 관리 및 통제한다. 하지만 RGB는 뉴욕시장이 전원을 임명하게 된다. 사실상 맘다니가 간접적으로 뉴욕시의 임대료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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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급진적인 사회주의적 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브라운해리스스티븐스의 베스 프리드먼 최고경영자는 뉴욕타임스에 "사회주의는 효과적이지 않다"며 "맘다니가 제안한 정책 중 많은 부분은 '사치스러운 신념'으로 특권층은 감당할 수 있지만 실제로 노동자 계층을 돕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개발업체 RXR리얼티의 스콧 레클러 최고경영자는 "뉴욕은 자본주의의 수도인데 사회주의자 시장을 두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며 "그들은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 수사와 표퓰리즘 정책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운영 방식에 대한 근거는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맘다니의 임대료 동결 정책으로 금융시장에서 부실자산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그에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크롤본드레이팅에 따르면 지난 2년간 뉴욕시 다가구 주택의 증권화 대출 중 부실 비율은 2배 이상 상승하며 14.4%에 달했다. 또한 뉴욕시 다가구 부책의 90%에 해당하는 18억달러는 임대 규제를 받는 건물에 묶여 있다.
맘다니가 부동산 개발업계에 폭탄만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임대료 동결 정책과 함께 부유한 지역의 용적률 상향과 주차장 의무화 폐지에 따른 주택 공급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부유한 고급 지역 중 상당수는 뉴욕시가 책정한 역사 지구(historic districts)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 지역은 건축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공식 지정된 구역으로 뉴욕시의 도시보존위원회(LPC)에 의해 더 까다로운 규제가 적용된다.
역사 지구에선 건물 높이에 제한이 있고 건설 비용도 증가하며 외벽 수리, 간판 교체까지 LPC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뉴욕의 소호와 트라이베카 등의 재개발이 아직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더리얼딜은 지적했다.
맘다니가 추진하는 정책 중 일부는 뉴욕주지사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도 뉴욕시 부동산 업계가 쥔 카드다.
맘다니는 임대료 동결과 함께 부자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세금은 주 정부의 권한이고 뉴욕주지사 후보들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증세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레클러는 "맘다니가 제안한 정책 중 다수가 뉴욕주지사의 지지 없이는 시행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정호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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