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상법, 혁명이 일어난 것…총수·일반주주 이해상충 해결"
주주충실 의무로 주주평등의원칙 한계 보완
주주 현금수취권 넘어 지배권 보호 기대
[출처: 정수인 기자]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수인 기자 = 최근 국회를 통과한 개정 상법이 총수일가와 일반 주주 간 이해상충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 수 있게 되면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전문가 진단이 나왔다.
원론적인 내용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는 일부의 견해와는 전혀 다른 시각이다. 지배주주라는 이름 아래 숨어 있던 총수 일가의 전횡을 견제하고 주주평등 원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분석이 뒷받침됐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일 법무법인(유한) 바른이 강남구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개최한 '새 정부의 개정 상법-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중심으로' 세미나에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에 '주주'가 추가된 것은 당연한 사항을 확인한 것에 불과한 조치가 아니라 혁명이 일어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일 국회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처리됐다. 기존 상법에서 명시했던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주주까지로 확대됐다. 또한 이사가 직무를 수행할 때 총주주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주주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내용도 개정상법에 포함됐다.
이 교수는 기존 상법이 '회사'라는 거대 담론 아래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등 실질적인 지배 문제를 가려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간 소액주주는 철없는 존재로, 행동주의 펀드 등은 단체의 앞길을 가로막는 이기적인 세력으로 취급돼 소액주주는 재판에서도 대부분 패소해왔다"면서 "정작 회사를 움직이는 건 지배주주(총수 일가)다. 본질은 회사를 뒤로하고 총수 일가와 일반주주 사이 이해상충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지배 구조상 총수 일가가 일가친척과 계열사를 동원해 실질적으로 기업을 통제하면서도 직접적인 지분을 보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 교수는 지배주주가 아닌 총수 일가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이번 개정에서 추가된 주주 충실의무 조항이 주주평등원칙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봤다.
과거 삼성물산 합병 당시 가처분 판결에서 주주들이 동일하게 불이익을 받아 평등 원칙이 침해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판단했다며 이러한 경우 주주평등원칙이 있어도 주주들이 실질적인 권익을 침해받아도 법적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간 괴리는 단순히 회사의 이윤이 주주에게 돌아오지 않을 때뿐 아니라주주에게 전달하는 배분비율을 바꾸거나 주주 의사를 반영할 메커니즘 수단이 미흡한 경우 등에서도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주가치는 현금수취권(Cash Flow Right)과 지배권(Control Right) 양 날개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변호사 등 실무자들이 주식 가치를 단순히 '현금수취권'의 가치만으로 해석한다"며 "'지배권'의 가치는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물적분할이나 지주사 전환 등으로 회사의 영업이익이 늘어나 일반 주주에게 나쁠 것이 없다는 일부 해석도 있지만, 이는 결국 주주들이 지배권을 뺏기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배권이 뺏기면 나중에 현금 수취권까지 뺏기게 되어있다"며 합리적인 시장은 이 두 가지 가치를 모두 고려해 주식가치를 판단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간 괴리가 나타나는 세 가지 사례를 거론했다.
먼저 그는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주주에게 전달하지 않아 주주의 현금수취권을 훼손하는 사례를 들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최근 10년간(2023년까지) 평균배당률은 29%지만 미국은 92%, 중국은 31%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주주에게 줘야 하는 당기순이익 등 자금을 71% 이상 환원하지 않아 주주들의 공분을 샀다고 분석했다.
또한 총수 일가가 이해상충 투자나 계열사 지원을 하면서 자본비용에 미달하는 낮은 수익률의 투자를 할 경우 이 역시 현금수취권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로 이 교수는 합병과 증자, 물적·인적분할, 신주발행 등 배분비율을 바꾸는 자본거래가 현금수취권과 지배권을 모두 손상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돈을 주주에게 전달하지 않는 경우 회사에 돈이 남아는 있어서 향후 배당을 늘릴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주주에게 돌아가는 몫을 바꿔버리면 이는 영구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주주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거나 이사회 결정이 주주총회를 통해 견제되지 않는 경우 지배권이 손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들이 소송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놓치는 부분은 지배권을 손상시키는 경영활동"이라며 "이 역시 엄청난 주주 가치 손상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원 역시 지배권의 중요성을 인식해 소송을 어렵게 만드는 해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sijung@yna.co.kr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