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세연의 프리즘] 버핏의 혜안, 현금·울타·단기채·처브
(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달 30일 94번째 생일을 맞은 워런 버핏은 시장이 흔들릴 때 더욱 주목받는 인물이다. 주가가 사상 최고치로 내달릴 때 그가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는 오히려 보수적인 투자를 해왔는데, 그 판단은 옳았다.
버크셔는 지난 2분기 애플 등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 현금 비중을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렸다. 3분기 들어서도 버핏의 '원픽' 중 하나였던 뱅크오브아메리카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다.
2019년 코로나 주가 사상최고치 랠리와 1999년 닷컴 열풍 때도 버핏은 현금을 쌓아뒀고, 기술주 매수 행렬에 동참하지 않았다. 반대로 버핏은 1974년 약세장부터 2008년 금융위기까지 주식에 장기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 "남들이 욕심을 부릴 때 두려워하라",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을 부려라"는 버핏의 투자 철학이다.
버핏은 이번에도 미리 현금을 확보해놓은 만큼 급락장에서 추가 손실을 지킬 수 있었다. 앞으로 주가가 조정을 받으면 저가 매수 기회도 노릴 수 있다.
시장에서 의외라고 생각했던 포트폴리오 역시 '버핏은 버핏'이라는 투자 혜안을 증명했다.
버크셔는 지난 2분기 화장품 소매판매업체 울타뷰티에 대규모로 투자했다. 울타뷰티는 경쟁사 세포라와 달리 저가 상품 라인업이 강해 '미국판 올리브영'으로 불린다. 애플 지분을 더 줄이고 현금 보유액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늘리면서 새로 선택한 회사라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불황기에 기분 전환용 저가 소비재 판매가 늘어나는 '립스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울타뷰티 투자 당시만 해도 미국 경제에 불황의 그림자는 전혀 없었다. 증시는 수년간 끌어다 쓴 호황 지속에 베팅하기에 바빴고, 엔비디아를 필두로 주가지수는 계속 올랐다. 8월 들어 경기 둔화에 이어 불황 내러티브가 나오더니 9월에는 침체를 받아들이고 있다. 늦었더라도 더 깊은 침체를 막기 위해 연준이 25bp가 아닌 50bp 금리 인하, 빅컷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버크셔는 지난 1분기에는 보험회사 처브를 포트폴리오에 새로 담았다. 그때도 애플 대체제로 은행주를 샀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스위스 취리히에 본사를 둔 보험사를 선택했다. 2분기에도 처브 투자 비중을 확대했는데, 이 보험사는 채권을 1천200억 달러 이상 보유할 만큼 채권 보유량이 매우 많은 회사다. 버크셔는 현금성 자산 대부분을 1년 미만 미국 단기채로도 보유하고 있다. 처브에 투자한 것도 사실 어떻게 보면 채권에 투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투자 덕분에 급락장 속에서도 버크셔의 시가총액은 버핏의 생일을 이틀 앞두고 장중 1조달러를 돌파하며 미국 기업 중 빅테크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시총 '1조달러 클럽'에 진입했다.
지난 주말 발표된 미국의 8월 비농업부문 신규 고용은 재차 실망을 안겼다. ISM제조업지수에 이어 고용지표도 단순히 허리케인 영향이 아니라 실제로 경기가 둔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40,829, S&P500지수는 5,471, 나스닥종합지수는 16,884로 밀려났다. 사상 최고치와 비교하면 낮지만, 8월 초 폭락 이전의 주가 수준을 회복한 이후 다시 시작된 조정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회복다운 회복도 하지 못한 채 재차 조정받는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전 저점에 근접했다. 수출 의존도, 특히 반도체 비중이 높은 경제 구조 외에 취약한 내수 경기, 서학개미들의 국장 탈출이 겹친 결과다.
오늘도 '국장 아니고 미장이 답'이라고 외치는 개미들에게 버핏의 혜안은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다. 미국과 한국의 경기는 똑같이 어렵고, 미국의 투자자들과 한국의 투자자들은 오늘도 대안을 찾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투자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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