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극의 파인앤썰] 추경 서둘러야 하는 이유
(서울=연합인포맥스)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는 가운데 국내외에서 고물가 조짐까지 감지되고 있다. 탄핵정국으로 어수선한 정치·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한 마리 토끼도 잡기 바쁜 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1일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조정했다. 지난해 11월 2.0%를 제시했는데,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0.4%포인트나 낮췄다. 한국에서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 2023년 1.4%에서 지난해 2.0%로 겨우 2%대에 턱걸이를 했으나 다시 1%대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버텨줬던 수출마저 1월에는 뒷걸음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취업자수는 2천804만1천명으로 작년 같은 달에 비해 5만2천명이나 줄었다. 취업자가 감소한 것은 지난 2021년 2월 이후 3년 10개월 만이다. 소비와 생산, 내수와 수출, 여기에 고용까지 어느 것 하나 괜찮은 경제지표가 없는 실정이다. KDI의 우려처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국내 정국 불안이 장기화하면 성장률은 더 낮아질지도 모른다. 일부 투자은행(IB)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 근처까지 낮췄다.
문제는 이처럼 경기둔화가 심화하는 와중에도 물가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1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2.2% 상승했다. 지난해 7월 2.6%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5개월 만에 2%대로 올라섰다. 국제유가와 달러-원 환율 상승이 물가 상승을 자극한 결과다.
외부 환경을 감안하면 물가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진다.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는 전월과 비교해 0.5% 상승했다. 지난 2023년 8월 이후 최고치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3.0%나 상승했다. 특히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3.3%나 올랐다.
보편관세, 이민자 정책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각종 경제정책이 물가 상승을 가속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미국의 경제정책이 그렇지 않아도 저성장에 허덕이는 한국 경제에 고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경기둔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물가가 오르면 내수가 더욱 위축되는 빈곤의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경기침체에도 물가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내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적지 않지만, 물가가 꿈틀하면 한국은행의 입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도 쉽지 않다. 현시점에서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집행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탄핵정국에서 경제만 생각한다면 추경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정부나 여야 정치권 모두 추경 필요성에는 동의하고 있다. 서둘러 각론에서 입장차를 줄이고 고물가가 재현되기 전에 추경이 집행되도록 조치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저성장과 고물가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면 그나마 쓸 수 있는 추경과 같은 단기 처방을 내려도 '백약이 무효'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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