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모저모] 삼성전자 자사주 7조원의 행방
(서울=연합인포맥스) ○…이제 '7조원' 남았다. 삼성전자가 용도를 정해야 하는 자기 회사 주식(자사주) 얘기다. 작년 11월 자사주 10조원 매입 계획을 발표했던 삼성전자[005930]는 최근 30%에 해당하는 3조원 규모의 취득을 마쳤다. 정확히 3개월 만이다.
매입 목적은 여느 기업과 다르지 않다. 주가 부양 등 주주가치 제고다. 작년 7월 9만원에 육박했던 주가가 불과 4개월 만에 40% 넘게 빠지며 '관리의 필요성'이 커진 영향이다. 금융당국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에 발을 맞추려는 의도도 있었다. 자타공인 1등 기업에 거는 시장의 기대를 언제까지나 모른 척할 순 없으니.
[연합인포맥스]
이 기간 주가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사실상 발표 당일과 다음날(영업일 기준) 반짝 오른 게 전부다. 지난해 11월14일 겪은 '4만전자 악몽'이 재연되진 않았지만, 부진한 실적 등을 이유로 주가가 그와 유사한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조만간 매입분 소각에 들어가면 상황이 나아질 거란 기대가 높다. 발행주식 수를 줄여 주당 가치(주당순이익·주당순자산)를 높이는 자사주 소각은 단순히 유통주식 수를 줄이는 자사주 매입보다 더 적극적인 주가 부양책으로 꼽힌다.
시장과 공유된 내용은 여기까지. 당초 삼성전자는 3개월 동안 10조원 중 3조원 규모로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머지 7조원의 경우 '매입'은 결정됐지만 '소각'은 물음표다. 회사는 이르면 이번 주 이사회에서 추가 취득 규모 및 활용 방안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주들의 눈은 매입 규모보다 소각 여부에 쏠려있다.
변수가 하나 있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리스크다. 금산 분리를 목적으로 금융회사의 보유 주식을 제한하는 해당 법에 따라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은 최대주주(삼성생명)의 지분 매각으로 이어진다. 자사주 소각 시 구주주들의 지분율이 자연스럽게 높아져 법적 기준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삼성전자 주식 2천746억원어치(499만5천409주)를 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했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을 앞두고 금산법 위반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서다. 그간 양사는 법적 한도(10%)에 임박한 수준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밸류업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기껏 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를 소각했는데 매도 물량 발생으로 효과가 미미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무엇이 주주를 위한 길인지 혼란이 커진다. 이는 삼성전자가 굳이 거금을 들여 자사주 매입·소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을 핑곗거리가 될 수도 있다.
동시에 지배구조에 대한 고민도 커진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금융회사(삼성생명)가 비금융회사(삼성전자) 지분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형태의 지배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으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슈다.
만약 나머지 7조원 규모(혹은 일부)의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또다시 되돌이표를 그려놓은 것처럼 동일한 상황이 반복된다.
이에 삼성전자는 임원 성과급의 일부를 자사주로 지급하기로 하는 등 소각 외 방안을 마련해둔 상태다. 책임경영 강화 측면에서 주주들에게도 솔깃한 방법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가가 신통치 않은 것은 물론, 밸류업 정책이 용두사미에 그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앞서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논평에서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은 발표가 너무 늦었고 규모도 그간 주가 하락과 시가총액, 현금보유 등 대비 너무 작다"며 "10조원 모두를 매입해 즉시 소각하길 권한다"고 했다.
다시 삼성전자의 시간이다. 자사주 7조원의 행방은 어떻게 될까. (산업부 유수진 기자)
sjyoo@yna.co.kr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