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권의 쿰파니스] 은행 옥죄는 공정위의 조바심

2025.02.18 11:01

읽는시간 4

URL을 복사했어요
0

[고유권의 쿰파니스] 은행 옥죄는 공정위의 조바심



(서울=연합인포맥스) 2022년 3월. 윤석열 정부 국정방향의 큰 틀을 잡기 위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구성됐다. 인수위가 구성되면 각 부처는 인수위에 더 많은 에이스 공무원을 파견하기 위해 눈치싸움을 벌인다. 인수위에서 입안되는 국정과제가 향후 정부 정책으로 실제화되고, 정책 방향과 파급력에 따라 부처의 입지가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순간 찬밥 취급을 받을 수도, 또는 환대받는 더운밥 입장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시 유독 전전긍긍하는 부처가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였다.

공정위는 검찰, 국세청, 감사원과 함께 경제계에서 이른바 4대 권력기관으로 불린다. 기업에는 '경제검찰'로 불리며 위상이 대단하다. 하지만 공정위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인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찬밥 신세였다. 인수위에 파견된 인원은 고작 한 명에 불과했다. 국장급도 아닌 과장급(행시 49회) 한 명이 경제1분과 실무위원으로 배정됐다. 기획재정부가 8명이나 보낸 것과 비교하면 초라했다. 공정위 국장급 간부들이 삼청동 금융연수원 주변을 배회한다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들렸다. 인수위에서 어떤 얘기들이 오가는지 궁금했을 터다.

윤석열 정부의 첫 공정거래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1일째인 2022년 8월 18일이 돼서야 내정됐다. 앞서 지명됐던 후보가 엿새 만에 사퇴한 이유도 있었지만, 역대 정부에서 가장 늦은 인사였다. 그런데 공정거래분야의 정통한 인사가 아닌 보험법 전문가였다. 법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보험연구원장과 한국보험법학회 부회장,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 등을 지낸 인사여서 갸우뚱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공정거래 분야와 큰 접점은 없어 보였다. 인사는 메시지다. 결국은 부처의 위상을 축소한 인사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윤 정부 경제정책 방향은 명확했다.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민간 역할을 북돋아 주는, '친(親)기업' 기조였다. '공정위 홀대론'은 어찌 보면 예상됐던 것이기도 했다. 이에 더해 검찰 수장 출신인 윤 대통령의 경험도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공정위와 검찰은 늘 공정거래 분야를 두고 살얼음판을 걷는 긴장 관계였다. 그 매개는 전속고발권이었다. 공정거래 사건은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기소할 수 있도록 한 게 전속고발권이다. 막강한 힘이다. 그래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전속고발권을 손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곤 했다. 윤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공정위가 기업들을 옥죄기 위해 전속고발권으로 '장난치고' 있다는 인식을 윤 대통령이 강하게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거대 플랫폼을 규제하는 소위 플랫폼법 제정과 관련해서도 공정위는 정부 안에서 눈총을 받았다. 용산(대통령실)에서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보고도 들어오지 말라는 험한 소리도 오갔다는 얘기도 들렸다. 공정위 입장에서는 매우 힘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플랫폼법 제정은 무산됐다.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플랫폼 공룡을 '사전 지정'이 아닌 '사후 추정'으로 규제하기로 결론이 났다.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사후적으로 지배적 사업자를 특정해 규제하는 방식이다. 공정위 입장에서는 단단히 체면을 구긴 결과다.

공정위의 타깃이 은행을 향하고 있다. 은행들이 담보인정비율(LTV) 거래조건 정보를 교환한 행위가 담합이라고 보고 탈탈 털고 있다. 2023년 2월 윤 대통령이 은행들의 독과점을 해소하고 경쟁을 촉진할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이후 공정위는 은행들에 칼날을 들이댔다. 처음에는 예금과 대출금리 등 은행 업무 전반에 대한 조사로 시작했지만, 초점은 LTV 거래조건 정보교환으로 좁혀졌다. 1년여가 지난 작년 1월 공정위는 은행들을 제재하겠다면서,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보냈다. 하지만 작년 말이 돼서야 공정위 전원회의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최근 공정위 조사관들은 4대 시중은행에 대한 현장조사를 다시 시작했다.

벌써 3년째다. 단순 정보교환인지, 그 교환정보를 통해 실제 영업에 활용했는지가 쟁점인데 공정위 조사와 제재 여부에 대한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2021년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명문화한 정보교환에 따른 담합을 처음 적용하는 것이라 더 그렇다. 공정위는 은행들이 정보 교환을 통해 LTV 수준을 낮춰 금융소비자가 불이익을 당했다고 본다. 담합을 통해 은행들이 경쟁을 스스로 제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은행들은 가급적 LTV를 높여 더 많이 대출해 주고 그만큼 이자 이익을 더 벌고 싶어 한다. 그 방향을 거꾸로 했다고 담합이라고 보는 것은 뭔가 좀 어색하다.

LTV는 금융당국이 은행의 건전성을 규제할 목적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거시 건전성과 부동산 시장 안정화 등을 위해 LTV 규제를 적절하게 활용한다. 세계 주요 신용평가사나 기관들도 우리나라의 LTV 규제를 칭찬한다. 그런데 공정위는 지금껏 한 번도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관련 사안에 대해 의견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부동산 가격 폭등과 가계부채 급증 속에 금융당국이 LTV를 규제하고, 은행들도 그에 맞춰 적용했던 현실적 상황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법 논리에만 치우쳤던 것은 아닌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지나친 조바심이 작용한 측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본다. 공정위 공무원들은 버릇처럼 말한다. "내외부에 우리에게 우호적인 곳들은 없다. 여론이 우리 편이다". 이 말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결국 여론의 흐름은 법보다 상식에 우선한다. (경제부장)

pisces738@yna.co.kr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고유권

고유권

돈 되는 경제 정보 더 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