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신탁 제재①] 레고랜드가 쏜 공…관행이란 이름의 편법

2025.02.1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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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신탁 제재①] 레고랜드가 쏜 공…관행이란 이름의 편법



(서울=연합인포맥스) 박경은 기자 =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시장을 떠들썩하게 한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투자업계가 유탄을 맞았다. 문제가 된 건 증권사의 채권형 랩어카운트·특정금전신탁(랩·신탁) 계좌다.

그간 암암리에 성행한 '돌려막기 관행'은 레고랜드 사태를 거치며 세상에 알려졌고, 이듬해 금융당국의 전방위 조사가 시작됐다. 랩·신탁의 정화를 위한 당국의 제재가 확정되기까지 1년 9개월여의 시간이 소요됐다.

금융위원회는 19일 정례회의를 열고, 랩·신탁 자전거래 의혹을 검사한 증권사 9곳에 대한 제재 수위를 확정했다.

랩·신탁 계좌 내 CP 운용의 잘못된 관행이 처음으로 드러난 건 2022년 12월께다. 당시 가파른 통화 긴축이 진행되는 과정에 레고랜드 사태가 겹치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물의 신용경색 사태가 일어났다.

그간 증권사들은 랩·신탁 상품의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일종의 '미스매칭'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단기 신탁 상품으로 법인의 자금을 맡고, 수익률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상품의 만기보다 긴 장기 CP를 편입해 운용한 셈이다.

기준금리 인하 시기 이러한 운용 방식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장기물 채권의 가격 변동성이 상품의 손실을 키우기 시작했다.

증권사들도 업계의 '관행'을 활용해 대응에 나섰다. 이상한 자전거래의 시작점이다. 이에 CP 시장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당시 일별 거래 물량을 살펴보면, 기준금리보다 낮게 거래된 CP·전단채 규모가 하루 거래의 40%를 웃돌기도 했다. 증권사 간 CP 거래가 시가평가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거래다. 기준금리보다 낮은 가격으로 증권사 간 거래가 진행될 경우, 채권을 파는 쪽에서는 시황과 관계없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상한 '자전거래'가 CP 시장의 큰 비중을 차지한 셈이다.

채권형 랩이나 신탁 상품에 자금을 맡겼던 법인 투자자들은 증권사에 환매를 요청하기 시작하면서, 일부 증권사는 증권사 간 파킹거래에 더해 회사의 고유 자금을 활용해 이를 매입하거나, 만기가 남은 다른 고객의 계좌로 손실을 떠안기도 했다.

불법 거래 혐의를 발견한 금융감독원은 2023년 5월, 대대적인 점검에 나섰다. 문제가 포착된 건 직전 연도 연말께이지만, 단기 자금 시장이 파고를 겪고 안정을 찾아가는 상황이기에 신중히 점검에 나섰다.

검사가 진행된 지 6개월여만에 금감원은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특정 고객의 수익을 메워주기 위해 다른 고객에게 손해를 전가한 행위는 업무상 배임 소지가 있는 위법 행위라고 봤다. 9곳의 증권사와 30여명의 운용역이 제재 및 검찰 조사의 대상이 됐다.

다만 업계의 항변도 거셌다. CP 운용과 관련한 규정이 없었고, 그간 업계 관행처럼 이뤄져 온 거래에 대해 위법으로 판단하는 건 과도한 처사라는 의견이 들끓었다. 파킹거래와 관련해서도 만기까지의 시간을 벌기 위함이며, 이미 우량 신용등급의 채권으로 자산을 편입하는 만큼 결국 손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는 입장문을 내 만기 미스매칭 운용이 불법은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미 이러한 사실을 고객들에게 고지했으며, 손실을 덮을 목적으로 타 증권사와 거래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은 제재심을 거친 끝에 9개 증권사에 영업정지 조치를 포함한 중징계 결론을 내렸다. 제재 대상 회사의 수가 많았던 만큼 각 회사의 소명을 듣고 회의를 진행하는 데에만 수개월이 소요됐다.

이후 진행된 금융위의 증선위에서는 각 증권사가 향후 관련 위법 행위를 막기 위해 운용 가이드라인을 적극 적용한 점을 참작했다. 또한 증선위는 증권사들이 투자자의 손실을 적극적으로 배상했고, 제삼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고유계정을 사용한 점도 깊이 살폈다.

여기에 더해 대부분의 증권사가 채권 영업을 중단할 경우 시장에 미칠 영향도 고려했다.

결과적으로 금융위원회는 교보증권에 일부 영업정지 1개월을 결정했다. KB증권, 하나증권, 미래에셋증권, 유진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유안타증권, NH투자증권에 대해서는 기관경고를 의결했으며, SK증권은 기관주의를 받았다. 이들 9곳 증권사에 대한 과태료는 289억원이다.

여의도 증권가

[출처 : 연합뉴스 자료사진]





ge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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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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