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용의 글로브] 금값 급등과 외환보유고
연합뉴스
(서울=연합인포맥스) '외환보유고(Foreign Exchange Reserves)'란 국가 지급불능 사태에 대비하고 외환시장 교란시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한 나라가 보유한 외화자산을 말한다. 유가증권과 예치금, 특별인출권(SDR), 금, 국제통화기금(IMF) 포지션 등으로 구성된다. 외환보유고라는 개념은 19세기 후반 금본위제 시대에 등장해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등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확립됐다.
영국은 19세기를 대표한 금융제국으로 현대적인 의미의 외환보유고 관리를 처음 시작한 국가다. 당시 영국은 파운드화를 금에 연계하는 금본위제를 도입했고, 세계 각국은 교역시 파운드화를 결제 용도, 즉 기축통화로 사용했다. 또 영국은 국제 무역 및 금융 거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일정량의 금과 외화를 보유하기 시작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신흥 패권국인 미국의 주도로 국제통화체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브레턴우즈 협정이 체결됐다. 미국은 1온스당 35달러의 고정 금태환을 보장했고, 다른 국가들은 달러화와 금을 함께 보유하며 외환보유고를 관리했다. 이 체제는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재정 적자 등을 이유로 금 태환 정지를 전격 발표하면서 붕괴했고, 각국은 변동환율제하에서 보유외환을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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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 금 가격이 잇따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고 운용전략이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관심사로 급부상했다. 세계금협회(WGC)가 이달 5일 발표한 2024년 세계 금 수급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금 수요는 4천974t으로 사상 최고치를 나타냈다. 역대 최고 금 가격과 거래량이 맞물리며 총수요도 3천820억달러로 최고 기록을 다시 썼다.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량은 3년 연속 1천t을 넘어섰고, 작년 4분기에만도 333t으로 전년 대비 급증했다. 국가별로 세계 최대 금 보유국인 미국은 작년 기준 8,134t에 달하는 금을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의 외환보유고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75%에 달한다. 중국 역시 작년 한 해 33.9t을 사들여 외환보유고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약 6%로 끌어올렸다. 러시아는 2,336t의 금을 보유해 외환보유고 대비 금 비중이 32%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2013년 이후 12년째 금 보유량을 총 104.4t으로 묶어두고 있다. 한은이 보유한 금은 지난달 말 기준 47억9천만달러 규모(매입 가격 기준)로 전체 외환보유액의 1.2%에 불과하다. 한은의 금 보유량 순위는 2013년 말 세계 32위에서 지난해 말 38위로 여섯 계단 하락했다.
한은의 금에 대한 보수적 스탠스와 관련해서는 낮은 유동성과 높은 가격 변동성에 대한 고려가 원인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금이 주식이나 채권에 비해 현금화가 어려워 환시 개입이 단행되는 상황에선 비중을 늘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2011년 온스당 1천900달러에 달했던 금 가격이 2015년 1천달러대로 조정을 받는 등 금 가격이 급등락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금 가격이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끊이지 않으면서 한은이 외환보유고 관리에서 지나치게 안정성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투자은행 UBS는 올해 하반기에 금 가격이 온스당 3천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앙은행 등 기관의 금 수요가 늘어났고, 외환시장 헤지수단으로서의 금의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베테랑 외환딜러는 "한은이 실기한 측면이 있다. 적절한 매수 타이밍을 놓친 만큼 현시점에서 금 매입에 나섰다간 손실을 볼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은은 금 추가 매입 여지를 아예 닫아놓지는 않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달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외환보유고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낮다는 지적에 "현재 외환보유고를 사용해야 하는 시기"라며 "환율 변동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안정된 시기가 됐을 때 저희 전략자산 배분에 대해 다시 한번 검토해 보겠다"라고 언급했다. (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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