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은 2월 20일(목) 오후 4시 연합뉴스경제TV의 '경제ON'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콘텐츠입니다. (출연 : 홍경표 연합인포맥스 기자, 진행 이민재)
[이민재 앵커]
미국 하면 막강한 군사력으로 워낙 유명합니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이 강력한 군사력이 쇠퇴하고 있다고요.
[홍경표 기자]
미국의 조선업. 강대국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낙후된 수준에 처해있습니다. 작년 기준 시장 점유율은 0.1%로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요. 이는 미국의 이른바 '존스법'에 따라 조선사들이 자국 내 군함 및 상선 건조를 독점하면서 투자 유인이 감소한 것과, 1980년대 들어 냉전 완화에 따른 함정 수요 감소, 정부 지원 축소 등이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 내 조선소 폐쇄가 이어지면서, 과거 400여개에 달했던 조선소가 현재 21개로 줄었습니다.
반면 중국은 2001년 WTO 가입 이후 글로벌 교역량이 크게 확대되면서, 조선업 육성을 위한 정부차원에서의 대규모의 금융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결국 조선업 세계 1위를 찍었습니다.
양국 간의 조선 능력 차이는 곧 해군력의 격차 확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5년 이후 중국의 함정 규모가 미국을 상회했으며, 2030년에는 그 차이가 약 135척으로 확대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이 남중국해 등에서 해상 패권을 강화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조선 능력 확보를 통한 해군력 증대가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 대국임에도 자국 상선 비중이 매우 낮은 것도 문제라고요.
[기자]
미국의 해상 교역을 수행하는 미국 국적의 상선 비중이 작년 2.6%에 불과해, 외국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입니다. 미국 국적의 상선은 185척으로 1960년대 대비 크게 감소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조선 능력이 쇠퇴함에 따라, 연간 상선 건조 실적이 1975년 70척에서 작년에 5척 미만으로 감소한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 이후 LNG 수출 및 액화터미널 투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으나, 현재 미국 국적의 LNG선은 전무합니다. 국제법상 특정 국가에 등록하는 상선은 평상시 해상 교역 경쟁력 유지에 필요할 뿐 아니라, 전시에 필수 물품 및 군사 화물을 운송하는 전략적 자원입니다.
군사적 해상 수송에 필요한 인력 수급 또한, 해당 국가의 상선 시장으로부터 이뤄지고요. 에너지 운송을 비롯한 국가 무역 구조상 외국 상선 의존도가 높은 점은 유사시 안보 이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해상 교역 경쟁력 강화와 국가 안보 유지 차원에서 미국의 상선 확충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미국의 바다 장악력이 상당히 쇠퇴한 것 같습니다. 미국도 이같은 상황을 손놓고 보고만 있지는 않을 듯 한데요.
[기자]
미국은 조선 시장 내 경쟁력이 우수한 동맹국과의 공조를 통해, 떨어지는 조선 인프라와 해군력을 보완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국의 조선 인프라는 대부분이 노후화 또는 해체되고 협력 업체 및 전문 인력 규모가 크게 줄었기 때문에, 이를 단기간에 재구축해서 상선과 함정 수요를 자체적으로 충족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에 미국은 연방법상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함정 유지보수.MRO 분야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조선사에 아웃소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미 해군 선박은 외국 조선소에서
수리와 유지보수를 받을 수 없으나, 해외 배치 함정 또는 연안 전투함 은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직 전례는 없지만, 미국 군사용 선박. 함정을 동맹국에 발주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군사용 선박과 주요 구성 요소가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될 수 없으나 국가 안보와 이익을 위한 미국 대통령의 예외적 승인하에는 가능합니다.
또한 미국 의회에서 외국 조선소에서의 건조를 허용하는 법안도 발의된 바 있습니다. NATO 회원국이나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인도 태평양 지역 소재의 외국 조선소에 한해 미국 해군 및 해안경비대의 함정 건조를 허용해준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우리나라나 일본 등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현재의 조선 능력으로 즉시 대응할 수 없는 해군 분야의 수요를 단기적으로 충당하는 전략을 쓸 것으로 예상됩니다.
[앵커]
미국이 치고 올라오는 중국을 견제하는 방안도 강력하게 내놓을 계획이라고요.
[기자]
미국은 중국 조선과 해군력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방면의 제재 조치를 실행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우선 미국 국방부가 올해 1월 중국의 핵심 글로벌 해운사와 조선사들을 중국 군사기업 리스트에 등재했습니다.
이에 미 국방부와의 직접 거래가 금지되고 2027년부터는 해당 기업이 공급망에 포함된 상품과 서비스를 조달 못하게됩니다. 이는 중국산 선박 구매가 곧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자금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중국 해운 조선 사업을 고사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가 발표한 중국의 조선업 불공정 지원 및 관행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중국이 시장 경쟁 체제를 해치고 산업 내 중국 의존도를 비정상적으로 높여 미국의 경제적 안보 위험을 높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조선업 규제가 가능해져, 고강도 후속조치가 시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이렇게 중국을 눌러놓는 사이, 미국은 중국을 따라잡는 계획을 세워놓았다고요.
[기자]
미국은 중국과의 해운업 및 해군 경쟁력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국제 무역상선과 군함 규모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작년 12월에 미국 의회에서 초당적으로 발의된 '선박법'에 따르면, 현재 93척에 불과한 미국 국적의 국제무역 상선을 2034년까지 250척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국적 상선 중 노후 선박의 비중이 약 55%로, 신규 발주가 없는 한 2034년에는 100%에 달해 교체 수요도 함께 발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미국 해군은 향후 30년간 해군 함대를 약 364척을 늘릴 계획으로, 총 1조 달러의 대규모 예산을 의회에 요청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상선 및 군함 건조 수요가 중장기적으로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앵커]
그렇다고 하면, 이같은 미국의 조선업 부흥 정책이 우리나라 조선업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기자]
미국의 전략적 상선 확대에 따라, LNG 및 탱커선 중심의 중단기 수주가 예상됩니다. 미국은 향후 화석연료 기반의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해 물가 안정 및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입니다. 이에, 셰일 혁명 이후 낮은 비용으로 대규모 생산이 가능해진 석유와 천연가스 공급이 확대되고, 해외 수출이 증가할 전망입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의 주요 LNG 수입국인 중국, 일본, 한국, 대만과의 무역 협상에서 관세 인상안을 레버리지로 활용해 미국산 LNG 구매 확대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미국 국적의 상선 구성상 LNG선은 전무하고, 탱커선 수도 적기 때문에 향후 증가할 에너지 운송 수요를 고려해 전략적 상선 프로그램을 통해 LNG선과 탱커선 중심의 선대 확충이 예상됩니다.
[앵커]
결국 미국이 상선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조선업과 협업을 할 수 밖에 없겠는데요.
[기자]
미국의 선박 건조능력이 열악한 가운데 2034년까지 전략적 상선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초기에 동맹국과의 공조가 필수적이며, 대상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과 한국, 일본의 3강 체제인 조선 산업에서, 견제 대상인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과 일본이 남기 때문입니다. 최근 발의된 선박법에서도 2029년까지 한시적으로 외국에서 건조된 선박을 전략적 상선 프로그램에 허용하고 있어, 초기 단계에 동맹국으로의 선박 발주를 염두에 둔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 전략적 상선 프로그램의 주요 선종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LNG선과 탱커선의 건조 점유율 현황을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1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미국 상선 수주에서는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앵커]
미국의 해군력 강화 분야에서도 우리나라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고요.
[기자]
미 함정 유지보수. MRO 사업 수주와 함께 미국 진출 시 군함 건조 수주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이 MRO 분야를 아웃소싱함에 따라, 국내에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이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이 두회사는 작년에 함정 MRO 사업의 입찰 자격을 취득했고. 이후 한화오션이 미 해군 7함대 소속의 군수지원함, 급유함의 MRO 사업을 수주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미 해군 7함대가 일본 해군 기지에 주둔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 조선사에 MRO 용역을 발주해온 것을 고려하면, 이번 수주를 기점으로 국내 조선사가 MRO 시장 진출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함정 MRO 분야에서 한국 조선사의 협력이 필요함을 공개적으로 피력해, 관련 사업 수주가 중단기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함정 수주는 좀더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외국 조선소에서 상선 및 함정의 건조를 금지하고 있는 미국의 존스법은 개정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최근 발의된 선박법 상 전략적 상선 프로그램에 외국 건조를 한시적으로 허용한 점, 미국의 국익을 우선하는 정책 기조를 고려할 때 조선 역량이 우수하며 동맹 관계인 우리나라의 조선 인프라 투자를 적극 유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로 한화그룹의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도 최종 완료된바 있어서 우리나라 조선 기업의 미국 진출도 기대되고요. 국내 조선사가 직접 투자를 통해 미국에 진출할 경우, 미국 함정 MRO뿐 아니라 건조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어 사업기반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앵커]
미국의 중국 견제도 우리나라 조선사들에게 반사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요.
[기자]
미국의 대중국 조선업 견제 정책이 향후 한국 조선업의 성장세를 결정할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조선 점유율 격차는 2019년 이후 확대돼 작년에는 25.4%에 이르고 있습니다. 중국의 생산능력 증설과 함께, 컨테이너선 및 탱커선 중심의 공격적인 수주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가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한다고 하지만, 중국의 인해전술과 가격 덤핑에 어느정도 밀린 것으로 볼 수 있죠.
하지만 미국이 올해 1월 중국의 조선업 불공정 지원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무역법 301조 기반의 제재를 시행할 수 있게됐습니다. 이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을 고려해 향후 주요 선사들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중국 조선사에 발주를 지양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배 잘못샀다가 미국과 무역을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대체품을 고려하는 것이죠.
따라서 중국 조선업에 대한 재제 조치의 내용 및 강도에 따라 국내 시장의 수혜 정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여 향후 미국 조선 정책 변화도 주시해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