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 공매도①] '불법 공매도 1호' 무죄…檢 무리한 기소였나

2025.02.2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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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BC 공매도①] '불법 공매도 1호' 무죄…檢 무리한 기소였나

해외 체류 트레이더 수사 못 한 검찰…법원 "생년월일도 확인 안 돼"



(서울=연합인포맥스) 온다예 기자 = 불법 공매도 '1호' 사건으로 기소된 HSBC(홍콩상하이은행) 홍콩법인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애초 검찰의 기소가 무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은 검찰이 공매도 주문을 진행한 HSBC 트레이더들에 대해 아무런 수사도 하지 않았다며 통상적이라면 '기소중지'할 사건을 재판에 넘겼다고 지적했다.

◇ 법원 "직원 무차입 공매도 공모행위 인정 안 돼…HSBC 홍콩법인 무죄"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김상연 부장판사)는 지난 1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HSBC 홍콩법인에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초 HSBC 소속 대차부서 트레이더 A씨 등 3명도 기소됐으나 피고인들이 홍콩 등 해외에 있는 탓에 공시송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재판부는 A씨 등 3명과 HSBC 홍콩법인 변론을 분리하고 법인에 대한 1심 선고만 내렸다.

A씨 등은 2021년 8~12월 글로벌 자산운용사 등 투자자로부터 매도 스와프 주문을 받은 후 차입한 주식이 없는 데도 국내지점 증권부를 통해 9개 상장사 주식 31만8천781주(157억8천468만원)를 공매도한 혐의로 지난해 3월 기소됐다. HSBC 홍콩법인은 양벌규정으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HSBC의 잔고관리시스템이 무차입 공매도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알면서도 A씨 등이 회사 대표이사 등과 공모해 보유하지 않은 주식에 대해 공매도 주문을 내고 주문이 체결되면 부족한 주식을 외부에서 '사후 차입'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봤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매도하고 결제일 전까지 주식을 빌려 결제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자본시장법 180조는 매도하려는 주식을 먼저 차입한 뒤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만을 허용한다.

재판부는 "자본시장법에서 허용하는 차입 공매도가 되기 위해선 매도 주문 전에 차입이 확정돼야 하는데, HSBC는 차액 확정 절차를 사후적으로 취하는 시스템을 가진 건 맞다"면서도 "은행 직원들이 그런 규제 위반행위를 알면서도 대표이사 등과 공모해 무차입 공매도를 공모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개별거래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업무를 수행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은행이 사용한 잔고관리시스템은 이전부터 세계 각국 시장에서 수년간 사용하던 것이라 대차부서 트레이더로 일한 피고인들이 규제 위반을 인식하면서 공매도 업무를 진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법인 소속 직원의 위반행위를 유죄로 판단할 수 없는 이상 직원의 관리감독 의무를 지닌 HSBC 홍콩법인에도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봤다.

이번 기소와는 별개로 HSBC 홍콩법인은 무차입 공매도로 2023년 12월 금융위에서 74억원 상당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 "피고인 조사 하지도 못했다"…기소 문제점 꼬집은 법원

재판부는 검찰 기소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재판부는 "A씨 등 피고인들은 수사, 기소 이후 현재까지도 홍콩 등 해외에 체류 중이고 수사기관은 피고인들에 대한 아무런 조사도 하지 못했다"며 "일부 피고인에 대해선 생년월일도 확인하지 못해 그들이 형사책임능력이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고 질타했다.

이어 "HSBC 은행 대표이사 등이 피고인들의 공범으로 적시돼 있지만, 이들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러한 경우 피고인들의 위반행위나 공모 여부에 대한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검찰사건사무규칙에 따라 불기소처분(기소중지)을 하는 게 통상적이지만, 그런데도 기소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은 2021년 4월 불법 공매도 형사처벌 규정이 신설된 이후 기소된 첫 사례로 이목을 끌었다.

금융감독원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만연한 무차입 공매도를 뿌리 뽑겠다며 2023년부터 주요 IB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검찰은 서울남부지검에 전담 수사팀인 '불법공매도 수사팀'을 꾸려 집중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해외 서버에 보관된 HSBC의 내부 자료에 대한 접근이 차단돼 수사 단계부터 난항을 겪었다. 피고인들은 검찰의 수 차례 소환통보에도 대응하지 않았고 자료제출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검찰이 사건을 재판에 넘기긴 했으나 법원이 HSBC를 무죄로 판단한 데다가 검찰 기소의 문제점을 요목조목 지적하면서 기소가 무리하게 진행됐다는 비판을 피해 가긴 어렵게 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행위자에 대한 확실한 유죄의 증거가 확보된 상황에서 양벌규정으로 법인을 기소해야 처벌이 가능하다"며 "행위자를 소환해 조사도 못 하고 그 죄책에 대한 확실한 증거나 근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인을 양벌규정으로 기소한 건 검찰이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내증시에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면서까지 불법 공매도를 뿌리 뽑겠다고 밝힌 만큼 검찰이 기소를 밀어붙였으나 전략이 먹히지 않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자본시장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변호사는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당사자에 대한 조사 등이 필수적인데 기초적인 부분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소부터 했다는 건 무리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절차적으로 기소를 하는 게 검찰의 전략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유효한 전략은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다른 변호사는 "수사가 진척이 안 되는 상황에서 기소중지를 하게 되면 사실상 사건 수사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어서 검찰이 현실적인 방법을 택한 것 같다"며 "불법 공매도를 처벌하는 규정이 만들어진 이후 선례를 만들어놓는 데 의미가 있어 적극적으로 판단한 듯싶다"고 말했다.

검찰은 HSBC홍콩법인의 무죄 판결에 불복해 법원에 항소한 상태다.

서울남부지검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d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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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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