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서의 조곤조곤] MG손보의 구멍, 관리인 제도
(서울=연합인포맥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정리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하면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산업구조개선법)이 개정됐다. 이를 통해 금융당국이 일컫는 부실금융기관의 범위는 더 넓어졌고, 할 수 있는 조치도 많아졌다. 부실금융기관 임원의 집무 집행정지와 관리인 선임에 대한 권한이 생긴 것도 이때의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금융당국이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관리인을 보내는 이유는 부실의 최소화, 비정상의 정상화다. 금융사고 방지체계를 운영하고, 고객이 맡긴 돈을 지급하거나 시장에 자금을 수급하는 과정의 유동성을 점검하는 것도 관리인의 몫이다. 이 모든 과정을, 금융당국은 '경영에 대한 밀착 관리·감독' 이란 표현 안에 축약해 집어넣었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관리인은 금융회사에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 불편함이야말로 관리인의 정체성이다.
1999년, 매각을 진행했던 대한생명에 금감원 검사 1국장이 관리인으로 선임됐다. 당시 관리인은 검찰에 고발된 최순영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공백을 대신했고, 내부에선 관리인을 '점령군'으로 불렀다. 그 무렵 금융당국은 대한생명을 포함해 매각이 추진됐던 7개의 부실 생명보험사에도 비슷한 조처를 했다. 일부 생보사에서 매각과 관련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투자자에게만 자료를 제공하는 불공정 행위가 발견되자 원활한 매각을 위해서라도 상시 감시체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자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된 저축은행에도 관리인이 파견됐다. 그 무렵 시장은 혼란했다. 대한해운과 LIG건설, 삼부토건의 기업회생 신청에 이어 웅진 사태와 STX팬오션의 법정관리로 모두가 벼랑 끝을 향하고 있었다. 이에 금융회사만큼은 금융당국 주도 아래 흔들림 없이 정리돼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도 강했다.
이에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금융위 운영규칙을 개정했다. 은행·보험·카드 등 전 금융권에 대해 관리와 감독, 승인권을 강화하는 게 골자였다. 여기에는 금융산업구조개선법에 따라 구조조정과 관련한 관리인의 대리인 선임 권한도 포함됐다. 경기 침체로 부실해진 금융권의 체계를 바로잡고자, 금융회사 정리 과정에서 당국의 발언권을 확대한 셈이다.
일각에선 금융위원장의 권한이 지나치게 세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기존에도 금융위가 자체적으로 결정했던 것을 그저 금융위원장에게 위임한 것뿐이었지만, 시장이 느끼는 무게감은 그만큼 달랐다.
하지만 관리인이 느끼는 무게감은 달라지지 않았다. 관리인이 가져야 할 불편함도 점점 옅어졌다. 오히려 누군가의 인생 2막을 열어주는 자리로 변질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2014년, MG손해보험 부사장은 취업제한 규정 위반으로 선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임됐다. 금감원 출신이던 그는 MG손보의 전신이었던 그린손해보험의 대표 관리인이었다.
2022년, MG손보가 다시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면서 금융위는 금감원 3명·예금보험공사 1명·MG손보 1명으로 관리인을 새롭게 구성했다. 하지만 금감원 출신의 대표 관리인은 수개월마다 바뀌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현재까지 스쳐 간 대표 관리인만 4명이다.
메리츠화재가 MG손보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되면서 투쟁에 들어간 MG손보 노조는 의례적으로 관리인의 출근길을 막았다. 하지만 한번 막힌 출근길을 다시 찾은 관리인은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외부에 마련된 사무실에 머물며, MG손보가 제공하는 수 백만원짜리 법인카드를 사용 중이다. 역대 모든 관리인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관리인은 마냥 편하기만 하다. 그들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메리츠화재와 MG손보 노조의 더딘 협상을 지켜보던 금융당국이 예보의 입을 빌려 으름장을 놨다. 이제는 '파산'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의 관리인을 보고 있노라면 MG손보의 현재는 금융당국의 방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기 전 매달 10억원 남짓의 신계약 매출만큼은 꼬박꼬박해오던 MG손보가 이제는 1억원을 채우기도 버거운 조직이 됐다. 700명에 달하던 조직은 500명 남짓으로 쪼그라들었다. 오늘의 MG손보는 누구의 책임일까. MG손보가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된 지 '만' 3년이 두 달도 남지 않았다. (금융부 정지서 기자)
[촬영 안 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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