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삼성전자 대표이사 한종희

2025.03.26 08:48

읽는시간 4

URL을 복사했어요
0
[현장에서] 삼성전자 대표이사 한종희



(서울=연합인포맥스) ○…샐러리맨 신화, 37년 삼성맨, 삼성 TV 세계 1위 주역.

삼성전자[005930] 한종희 대표이사(부회장) 부고 기사에 붙어 있는 각종 수식어다. 몇 개만 훑어보더라도 한 부회장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1988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비(非)오너 경영인으로서 최고 단계인 대표이사까지 올랐으니 가히 '신화'라 부를 만하다. 삼성에 몸담았다는 '37년'이란 시간도 이제 막 10년 차 딱지를 떼려는 기자에겐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국내 1등 기업, 세계인이 사랑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의 대표이사 아닌가. 삼성전자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20년 연속 글로벌 TV 시장 1위를 수성한 데에는 한 부회장의 공이 컸다. 다른 사업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AI) 가전'의 대표주자 비스포크 AI부터 갤럭시가 속한 모바일까지 DX부문장이던 한 부회장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故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삼성을 취재하며 한 부회장을 실제로 몇 번 본 적이 있다. 처음엔 그가 어렵고 또 어려웠다. 그를 표현하는 수많은 단어가 낯설고 멀게 느껴진 탓이다. 마치 다른 세계 사람인 것 같았다.

실제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삼성전자 DX부문장으로서 공식 행사를 소화하는 한 부회장은 언제나 준비된 모습이었고 당당했다.

처음 소개하는 신제품에 대해서도 세세한 부분까지 모르는 게 없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막힘없이 답을 줬다. '말로 청중을 압도한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1등 기업' 대표이사의 면모가 느껴졌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인간적인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일례로 지난해 CES가 열린 라스베이거스에서 기자 간담회를 마친 직후 "이런 전시회 기간에는 저녁을 매일 3~4번씩 먹지만 제대로 배를 채우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거래선과 줄줄이 미팅이 잡혀있기 때문"이라면서다.

가기 싫다는 뉘앙스를 풍긴 '말'과 달리 빠르게 겉옷을 챙겨 입는 '행동'에서 CEO의 책임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좀 더 하지 못하고 먼저 자리를 뜨는 데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한 부회장은 평소 기자들의 질문에 흔쾌히 답을 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작년 5월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선 극히 말을 아꼈다. 행사 내내 밖에서 기다린 기자들이 한 부회장에게 다가가 신규 인수합병(M&A)과 AI 전략 등에 관해 물었지만 일절 답을 주지 않았다.

그는 "오늘은 호암상 수상자를 축하하러 온 자리"라며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으신 분들이 오셨으니 업무 얘기는 다음에 하자. 훌륭한 분들 상 받는 자리에서 내가 코멘트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물론 같은 행사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의 주인공들에게 좀 더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배려기도 했다. "열심히 박수 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는 농담에 기자들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정기주주총회서 발언하는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CEO기도 했다.

한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최악의 실적(결산 기준)을 냈던 2023년을 비롯해 매년 의장으로서 정기 주주총회를 주재했다. 전국 각지에서 수백 명이 몰려오는 국내 최대 규모 주총을 원활히 이끄는 것을 넘어,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을 질책하는 주주를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우직하고 깐깐해 평소 '코뿔소'라 불리지만 주주들 앞에선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더 나은 한해를 약속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때론 가까이서, 때론 멀리서 지켜본 한 부회장은 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그에게 평소 생활 습관을 물어본 적이 있다. 전 세계를 누비는 출장과 끊임없는 내외부 미팅에 분초 단위 일정을 소화하느라 잠도 충분히 못 잘 텐데 항상 표정이 밝은 비결이 궁금했다.

답변은 의외로 소박했다.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꾸준히 비타민을 먹고 틈틈이 운동한다는 것.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정말 그게 전부냐"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보다는 삼성을 지금보다 더 좋은 회사로, 자타공인 1등 회사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원동력인 듯 보였다. 그의 스마트폰 메신저 상태 메시지는 '영원한 1등, 세계 최고'다.

이재용 회장 역시 이를 잘 아는 듯, 중국 출장 중에도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현지 일정상 직접 조문을 하진 못하지만, 한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를 크게 안타까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삼성 전현직 경영진과 임직원은 물론, 각계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는 것을 보며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대선배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넘어 황망하고 애석한 마음"이라고 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산업부 유수진 기자)

sjyoo@yna.co.kr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유수진

유수진

돈 되는 경제 정보 더 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