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골든타임①] 구광모는 왜 지금 '쓴소리'를 했을까

2025.04.0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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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의 골든타임①] 구광모는 왜 지금 '쓴소리'를 했을까

전 임직원에 메시지 공유…긴장감·경각심 고취

트럼프發 대외 불확실성 확대…적극적 대응 강조



[※편집자 주: 의료계에서 골든타임은 외상을 입었을 때, 치료받아 죽음에 이르는 것을 방지할 가능성이 가장 큰 시간대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최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골든타임을 언급했습니다. 시급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LG그룹이 왜, 지금 골든타임을 맞이했는지 3회에 걸쳐 짚어봅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유수진 기자 = "일부 사업의 경우 '양적 성장'과 '조직 생존' 논리에 치중하며 경쟁력이 하락해 기대했던 포트폴리오 고도화를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달 27일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서 열린 올해 첫 사장단 회의에서 "이런 모습이 그동안의 관성이었다"며 작심한 듯 '쓴소리'를 했다. LG전자[066570]와 LG디스플레이[034220], LG화학[051910], LG에너지솔루션[373220]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진(CEO) 3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다.



◇생일날 쏟아진 고강도 발언…"골든타임 얼마 안 남아"

이날은 LG그룹의 78번째 생일(창립기념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룹 총수의 입에서 '지금은 위기 상황'이란 말이 여러 차례 나오면서 잔칫집 분위기는 전혀 나지 않았다고 한다. 회의 시간 대부분이 엄혹한 경영 환경 속 LG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할애됐다.

작년 9월 LG 사장단 워크숍에 참석한 구광모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자리에서 구 회장은 "절박감을 갖고 과거의 관성, 전략과 실행의 불일치를 떨쳐내자"며 LG 계열사 전반에 적극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경영환경 변화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일어났지만, 우리의 사업구조 변화는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서다. 각 계열사 CEO에겐 조직의 선두에 서서 주도적으로 변화를 이끌라는 과제를 줬다.

평소 온화하고 차분한 성품으로 알려진 구 회장은 이날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생존' '골든타임' 같이 구성원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단어 사용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변화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며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해당 내용은 LG그룹이 배포한 참고 자료를 통해 회사 내·외부에 알려졌다. 여기엔 회의에 참석한 CEO들뿐 아니라 LG 임직원 모두에게 구 회장의 메시지를 공유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구 회장이 체감하는 위기의식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LG 안팎에 알려진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성장세 꺾인 실적…사업 성과 설명도 생략

그렇다면 구 회장은 왜 지금 '위기론'을 꺼내 들었을까.

재계에서는 구 회장이 성장세가 한풀 꺾인 그룹 전반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작심하고 고강도의 메시지를 낸 것으로 해석한다. 현재 LG는 장기화하고 있는 석유화학 불황과 전기자동차 캐즘의 여파로 화학 계열사 등의 실적이 크게 악화한 상태다.

지난달 말 ㈜LG[003550] 주주총회에서 권봉석 부회장(COO)이 대독한 영업보고서 내 CEO 인사말에서도 이 같은 기류가 감지됐다.

구 회장은 ㈜LG 대표이사(회장)에 선임된 2018년(결산 기준)부터 매년 인사말을 적어오고 있는데, 작년까진 전자와 화학, 통신 계열로 나눠 한 해 동안 이뤄낸 사업 성과를 자랑하곤 했었다. 하지만 올해(2024년 결산)는 이를 모두 생략했다. 대신 시대 변화에 따른 컴플라이언스 경영 확대와 신성장동력 발굴 의지로 지면을 채웠다.

그렇다고 해서 구 회장의 의중이 단순히 일부 계열사의 실적 부진을 지적하는 데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단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미·중 무역전쟁 심화 등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주문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구광모 LG 회장과 인사하는 한덕수 권한대행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경제안보전략TF 회의에 앞서 구광모 LG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2025.4.1 jjaeck9@yna.co.kr





◇커져가는 불확실성…생존 위협에 대한 '절박함'

글로벌 정치, 경제 환경 변화에 발맞춰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금세 뒤처져 도태될 수 있단 우려에서 비롯된 발언이라는 것이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실기하면 그룹의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근원이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과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이 각각 중국과 미국에 오가며 불확실성 최소화를 위한 돌파구 마련에 나선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전날(1일) 4대그룹 총수들과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개최하고 산업계 의견을 청취한 것도 비슷한 취지다.

연장선상에서 구 회장은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 확보' '따라올 수 없는 진입장벽 구축'에 사업과 투자, 실행의 우선순위를 두라고 강조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 구조를 재편하되, '할 수 있는 것' 아닌 '해야 하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실제로 그룹의 전반적인 사업 구조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쟁 우위를 갖추면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영향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내외적 환경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자체 경쟁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구 회장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이자 방향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을 뒷받침하기 위해 구본무 선대회장의 8년 전(2017년) 신년사를 인용하기도 했다. 당시와 현재는 '예측 불허'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글로벌 통상과 무역, 외교 분야에서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선대회장께선 경쟁 우위 지속성, 성과 창출이 가능한 곳에 선택과 집중해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해야 한다시며 이를 위해 사업 구조와 사업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고 짚었다.

sj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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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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