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칼럼] 민족주의를 꿈꾸는 제국주의자 트럼프
(서울=연합인포맥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경 간 무역 장벽을 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연결된 글로벌 공급망에 관세라는 도구를 들고 직접 손을 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고하고 세계화란 물결을 되돌린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세계 무역의 장벽은 높아질지라도, 금융의 장벽은 보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물결 속에 공고해진 글로벌 금융시장의 연결성은 시시각각으로 확인된다. 트럼프의 '무역 장벽 치는' 소리에 글로벌 금융 자금이 시차와 국경을 가리지 않고 요동친다. 실물과 금융이 반대되는 의미로 출렁이는, 모순되는 현상을 세계인이 목도하고 있는 요즘이다.
트럼프는 현재 자국 무역은 보호하면서도, 달러를 중심으로 세계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금융 시장 패권은 놓치려 하지 않는다. 역사학자이자 경제 칼럼니스트인 아담 투즈 뉴욕 컬럼비아대 교수는 트럼프를 향해 행동은 민족주의자(보호무역), 결과는 제국주의자(달러패권)라고 꼬집은 바 있다. 한 국가의 행동과 결과가 이렇게 서로 충돌하면, 국제 사회는 이 나라를 두고 혼란에 빠지며 신뢰를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
세계 시장만 혼란에 빠진 것은 아니다. 모순에 빠진 트럼프도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설사 의도적으로 모순에 들어갔어도,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하버드대 국제정치학자인 다니 로드릭 교수는 지난 2011년 저서 <세계화의 역설>을 통해 '정치적 트릴레마'(political trilemma)라는 이론을 소개한 바 있다. 트럼프의 출현을 예언한 것은 아니지만, 해당 개념은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Democracy), 국가 주권(National Sovereignty), 경제적 세계화(Globalization)는 동시에 만족할 수 없고, 셋 중 둘을 선택하면 나머지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이 가운데 미국의 민주주의는 (미국 내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유지된다고 보자. 두 번째인 국가 주권이란 개념은 한 나라의 형식적인 주권이라기보다는, 정책적 자율성이라는 측면의 경제학적 의미로 봐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적 규범을 무력화하고 자국 법률을 통해 관세를 부과하는, 즉 아무런 국가 주권의 제한 없이 정책적 자율성을 극대화하려는 게 트럼프의 현재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금융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경제적 세계화) 속에서 달러 패권주의를 유지하려 한다.
최근 있었던 '셀 USA', 즉 미국 주식과 채권, 통화의 동반 약세는 로드릭 교수의 트릴레마가 작동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유럽을 대표하는 민간 은행인 도이체방크의 글로벌 외환 헤드인 조지 사라벨로스는 최근 트럼프의 상호관세 유예 결정에도 "달러화에 대한 피해는 이미 발생했다"며 "세계 기축통화로서 투자자들은 달러의 구조적 매력을 재평가하고 있고, 급속한 탈달러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의 지위를 내놓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기축통화의 지위 상실은 역사적으로 제국 쇠퇴기의 초기 징후가 아닌, 쇠퇴기 후반부에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지난 18세기 네덜란드 길더화가 그랬고 지난 1940년대 영국 파운드화가 그랬다. 이미 모든 것이 사실상 끝난 뒤에 확인되는 게 기축통화국의 지위 상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또는 미국에 남아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 트릴레마의 둘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든지, 둘 간의 적절한 균형점을 다시 찾아야 한다. (국제금융부 권용욱 기자)
[김선영 제작]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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