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한 주의의무'가 뭐길래…금감원 책무구조도 컨설팅에도 금융권 혼란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슬기 기자 = 금융당국이 주요 금융사를 대상으로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평가되는 책무구조도 현장 컨설팅을 진행했지만, 제도 안착을 위해선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책무구조도를 통해 금융사들의 자발적인 내부통제 개선 의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운영지침상 '상당한 주의 의무'에 대한 모호성을 해소하는 등 감독상 포인트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을 대상으로 책무구조도 운영 실태를 점검하는 등의 현장 컨설팅 작업을 마무리하고, 현장 조사·컨설팅 결과에 대한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각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별로 책무를 배분한 내역을 기재한 문서다.
지난 1월부터 책무구조도가 본격 시행되면서 10개 금융지주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을 포함한 54개 은행 임원은 책무구조도에 기반한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 책무를 지게 됐다.
금융권 안팎에선 금감원 컨설팅 등을 통해 은행권 임원들의 관련 업무에 대한 내부통제 책임이 더욱 명확히 규정돼 내부통제 시스템 역시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책무구조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3개월이 넘었지만, 운영 과정에서 당국과 은행권 간 온도차가 극명하다는 점이다.
책무구조도의 정착을 위해선 현행 내부통제체계를 정확히 진단해 운영상의 어려움을 개선해야 하는데, 여전히 당국의 지침이 모호해 당국의 기대와 현장 운영상의 괴리가 큰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책무구조도를 촘촘히 작성한다고 하더라도 금융사고 발생을 원천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어 사고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이를 시스템적으로 최대한 막기 위해선 금융사고 발생 자체보단 '누구한테 책임이 있고 이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기준이 너무 모호해 이를 입증하기까지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내부통제 관리의무 위반 관련 제재 운영지침'도 너무 모호해 운영상의 어려움이 큰 만큼, 당국의 구체적인 가이던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운영지침에 따르면 위법행위의 발생 경위·정도·결과, 상당한 주의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자체 시정조치와 징계 등 사후수습 노력은 별도의 제재감면 사유로 고려된다.
금융회사가 제재 감면을 위해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는지 정도를 따져 최종 제재 수준을 결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임원 등이 위법행위 등 결과 발생에 대해 예측 가능했는지,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는지 등 '행위자 책임 고려요소'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특히 당국이 검사 및 제재 과정에서 임원 등에게 '상당한 주의'를 다 했는지에 대해 충분한 소명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명시했지만, '어떤 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주의의무'를 요구하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게 은행권의 공통된 주장이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책무구조도 조기 제출 당시에도 은행권에서 공통으로 우려했던 사안이 '상당한 주의 여부' 부분이었는데, 이 부분이 너무 구체적이지 않다 보니 어느 정도를 이야기하는지 해석상의 어려움이 컸다"며 "회사 경영진의 책임을 결정짓는 부분에 대해 불명확한 문구가 있다 보니 현장의 혼란이 큰 데다, 향후 문제가 불거졌을 때 감독 당국에서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로펌의 고액 자문을 통해 책무구조도에 대한 컨설팅을 실시했지만, 여전히 '상당한 주의 의무'에 대한 지침이 구체적이지 않아 이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상당한 주의 의무를 다했음을 임원 스스로가 증명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업무부담이 가중되는 데다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일이 될 수 있어 이에 대한 감독 당국의 세밀한 검토와 가이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제재 절차로 들어가게 되면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다했다는 증적이 있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여부 등이 가장 큰 다툼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명확한 기준이 없어 충분히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구체적인 기준과 예시가 없어 책무구조도 적용 사례가 발생할 경우 그걸 판단 기준으로 삼아 향후 제재 등이 결정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다만 금감원에선 이미 내린 운영지침만으로도 제도 운영상의 어려움은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미 배포된 내부통제 관리 의무 위반 관련 제재 운영 지침에 고려 요소들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만큼, 추가적인 가이드를 내릴 계획은 없다"며 "발생한 금융사고의 사안과 그걸 사전에 예방하려고 하는 노력의 수준은 케이스별로 봐야 하는 것이고 소명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진행하는 것이지 이보다 더 세부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는 없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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