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00일] 그의 뇌관, 채권시장이 노리는 것
(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0일간 가장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인 곳 중 하나는 채권시장이다. 공격적인 관세 정책을 거둬들인 주요 배경으로도 꼽히는 미국 장기 국채금리의 향방에 세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25일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미국 10년 국채금리는 11일 종가 기준으로 한 주 상승폭이 지난 2001년 11월 이후 가장 컸다. 초장기물인 미국 30년 국채금리는 지난 1987년 4월 말 이후 38년 만에 가장 가파르게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대부분의 국가를 상대로 90일간의 상호관세 유예 조치를 단행했다. 그러면서 국채 시장의 반응 때문에 관세를 유예했냐는 질문에 "난 국채 시장을 보고 있었다. 국채 시장은 매우 까다롭다"면서 "내가 어젯밤에 보니까 사람들이 좀 불안해하더라"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뇌관은 금융시장, 특히 미 국채 시장이란 평가가 확산했다.
◇관세 발표 이후 3배 넘게 폭등한 숫자
국채 시장 향방은 최근의 불안 요인이 근본적으로 해결될지에 달려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관세 정책과 무역 전쟁에서 비롯한 불확실성이 여전하고, 재정 적자 증가와 경기 침체, 인플레이션 우려 등 미국을 둘러싼 거시 경제 여건의 문제도 해결될 조짐이 없다고 바라봤다.
특히, 채권시장이 무엇을 노리는지는 초장기 국채의 기간 프리미엄 폭등으로 유추할 수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모델에 따르면 미 국채 10년물의 기간 프리미엄은 22일 기준 77.7bp를 나타냈다. 21일에는 83.7bp까지 올라 11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관세 발표 직후인 이달 4일만 해도 27bp에 머물렀으나 2주 만에 3배 넘게 폭등했다.
기간 프리미엄은 장기 국채 금리가 단기 금리의 예상 경로만으로 설명되지 않을 때 투자자가 장기물을 보유하는 대가로 요구하는 추가 보상 수준이다. 시장의 불안과 우려, 분노 등이 클수록 장기 보유의 대가도 당연히 커진다.
자료 : 뉴욕 연방준비은행
기간 프리미엄이 지금처럼 높았던 11년 전은 지금과 상황이 많이 달랐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융 위기 이후 2014년까지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내렸다. 기준금리(단기 금리)가 낮을 때는 채권 커브는 자연스럽게 가팔라지고 장기물의 기간 프리미엄은 높아진다. 2014년 당시의 높은 기간 프리미엄은 시장의 우려가 컸다기보다는 단기 금리가 너무 낮아서 생긴 일종의 '착시'였던 셈이다.
지금은 기준금리 상단이 4.5%다. 그런데도 장기물에 대한 보상 요구인 기간 프리미엄 역시 매우 높다. 즉 단기 금리가 높은 데도 커브가 매우 가파르다는 것은 채권시장이 미래의 장기채 공급과 수요 여건을 모두 강하게 우려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웰링턴 매니지먼트의 브리지 쿠라나 매니저는 "기준금리가 높은 상태에서 장기물 기간 프리미엄이 매우 높다는 것은 채권시장이 미래의 국채 발행과 외국인 매도에 대해 이례적인 수준까지 우려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풀이했다.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에 따른 국채 발행 확대와 미국 자산의 신뢰 저하에서 비롯된 외국인의 자산 이탈 우려가 평균 수준을 넘어서까지 커졌다는 뜻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90일간의 상호 관세 유예 조치에도 관세 정책이 미국 국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재평가나 달러 자산에서의 외국인 이탈 가능성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진단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경제의 성장과 인플레이션 간의 긴장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외국인이 달러 자산에서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 역시 미국 국채 시장에 계속해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채권 운용사 핌코는 "미국의 높은 부채 수준과 인플레이션 압력은 장기 국채 금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미국 중심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익숙해진 투자자들에게 미국의 급격한 정책 변화는 도전 과제를 안긴다"고 평가했다.
◇레버리지 펀드에 대한 IMF의 경고
장기 금리 급등을 초래한 스와프스프레드나 현·선물 베이시스를 활용한 레버리지 거래의 청산이라는 기술적인 요인도 사라진 게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미국 국채 금리의 상승으로 헤지펀드의 레버리지 포지션이 위험에 처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시장의 변동성을 더욱더 증가시켰다"고 꼬집었다.
IMF는 "지난해 12월 기준 미국 국채선물 시장의 2년 만기 공매도 포지션의 절반이 소수의 헤지펀드가 관리하는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특정 헤지펀드들이 미 국채와 레포시장에서 매우 중요해져 이제는 실패하기에는 너무 큰 것(too big to fail)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ywkwon@yna.co.kr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