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태 기자 = 한국과 미국이 환율 협상을 하죠. 미국이 원화 절상을 요구할 전망인데요. 원화 표시 자산에 호재로, 외국인의 한국 주식 투자를 부추길 수 있습니다. 다만 미국이 전략적으로 약달러를 추진한다고 해도, 원화 강세에는 변수가 많습니다.
◇ 약달러 선호 트럼프…마러라고 합의 추진?
지난달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 회동했죠. 양국이 앞으로 논의할 경제현안의 틀을 세웠는데요.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 기한인 7월 8일까지 환율 정책 등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약달러를 선호해요. 무역 상대국 통화가 값쌀 경우 상대국이 수출 경쟁력을 가지니까요. 미국인이 1달러로 1천300원어치가 아닌 1천400원어치 한국 제품을 살 수 있으면 미국의 수입이 늘겠죠. 반대로 한국인이 1달러어치 미국 제품을 사는 데 1천300원이 아닌 1천400원을 써야 할 경우 미국의 수출이 줄고요.
미국은 주요국을 상대로 약달러를 유도하는 환율 정책을 지속해서 요구할 전망입니다.
'마러라고 합의'란 시사용어도 등장했는데요. 트럼프의 플로리다 별장인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주요국 정상과 환율 협정을 체결하는 구상입니다. 1985년 미국이 달러 가치를 낮추고자 일본, 독일 등과 체결한 '플라자 합의'를 변용한 용어입니다. 40년 전의 플라자 합의도 달러 강세로 인한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를 해결하려는 조치였죠.
마러라고 합의는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이 이른바 미란 보고서에서 제안했는데요. 이 보고서는 약달러를 통한 무역적자·재정적자 해소를 관세 전쟁의 최종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연합인포맥스와의 통화에서 "마러라고 합의를 떠나 미국이 환율 이슈를 당연히 제기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원화 가치를 올릴 수단이 딱히 있는 게 아니라도 어느 정도 노력은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달러-원 환율이 완만하게 하락하는 데 무게를 둘 수 있다"고 했습니다.
◇ 원화 강세로 국내 주가 상승하나
트럼프는 1기 때도 무역 상대국의 환율 정책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달러-원 환율이 과거에도 미국의 압박으로 떨어진 바 있는데요. 2017년 1월 3일 1,211.80원까지 올랐던 환율은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발표와 우리나라에 대한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 지정 등으로 다음 해인 1월 25일에 1,057.90원까지 하락했습니다. 1년 동안 153.90원 내려갔죠.
어쩌면 우리나라 외환당국도 요번 기회에 달러-원 환율이 하락하길 바랄지 모르겠습니다. 환율이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1,400원대로 올라간 뒤 좀체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때 1,487원 수준으로 치솟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기억나게 했죠.
만약 한미간의 협의로 환율이 어느 정도 내려가면 국내 증시가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주식을 9개월째 40조원 순매도하고 있는데요. 지난 8월 1,300원대 초반이었던 달러-원 환율이 1,400원대 후반으로 치솟으며 원화가 약세이던 시기, 즉 달러화를 원화로 바꿔 투자하는 입장에서 한국 주식이 매력 없던 시기였습니다.
앞으로 환율이 충분히 내려왔다는 판단이 설 때 외국인은 한국 증시로 몰려올 전망입니다.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 투자할 때 먼저 보는 숫자 중 하나가 환율입니다. 원화가 약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때 한국 주식을 적극적으로 매수합니다. 일각에선 "밸류에이션보다 먼저 보는 게 환율"이란 말도 나옵니다.
원화가 달러화 대비 강세이면서 주변국 통화 대비로는 약세라면 최고입니다. 달러-원이 달러-엔, 달러-위안보다 높아질 경우 우리나라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니까요. 수출기업 주식에 호재입니다.
DS투자증권은 원화가 달러 대비 절상 압력을 받을 수 있지만, 엔화나 위안화의 절상 폭보다는 작을 가능성이 크다며 주요 경쟁 통화인 엔화와 위안화 대비 원화의 상대적 약세 또는 더딘 강세가 나타나면서 한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부각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약달러 동시에 원화 약세도 가능
일단 달러화가 과거만큼은 선호 받지 않는 분위기는 맞습니다. 취재하다 보면2020년 이후 이어져 온 달러 강세의 흐름이 중기적으로 이미 약세로 돌아섰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10% 가까이 하락한 달러지수가 더 떨어질지 모른다는 전망인데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향후 12개월간 달러 가치 하락을 예상하는 투자자는 61%로 20년 만에 달러에 대해 가장 비관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전반적인 달러 약세라고 원화가 강세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게 섣부를지도 몰라요. 원화도 약세일 수 있으니까요.
환율은 중장기적으로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하는데요. 얼마 전 입수한 JP모간 보고서는 우라나라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 전망치를 0.7%에서 0.5%로 하향 조정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씨티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8%에서 0.6%로 낮췄고요.
당장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국 정부의 관세정책입니다. 우리나라는 수출에 매우 의존적입니다. 2023년에 GDP에서 수출이 차지한 비중은 38%로 옆 나라 일본(18%)보다 훨씬 컸죠. 미국의 관세정책 때문에 무역이 둔화한다면 경제 펀더멘털 개선과 원화 강세가 불가능합니다.
중장기적으로도 펀더멘털 개선이 깜깜합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보고서를 통해 2025∼2029년 연평균 1.8%, 2030∼2034년 1.3%, 2035∼2039년 1.1%, 2040∼2044년 0.7%, 2045∼2049년 0.6%라는 충격적인 추세 예측을 했습니다. 장기적인 잠재성장률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인구 감소입니다.
또 다른 큰 변수는 중국입니다. 미국에 반기를 들고 있는 중국이 더 강경하게 나오고 트럼프가 최대 수위로 중국을 압박한다면 중국 경제를 반영하는 위안화가 평가 절하되겠죠. 원화는 주요 교역국인 중국의 위안화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데요. 중국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원화 가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1기 때인 2019년 8월에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한 전력이 있습니다. 과연 미국과 중국은 환율 전쟁을 벌일까요. 한국과 미국은 완만하게 환율 정책 합의에 이르게 될까요. 트럼프는 새로운 한국 대통령을 7월에 플로리다 마러라고 별장으로 초청할까요. 앞으로도 유튜브를 통해 이야기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