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의 친절한 환대, 알바니아

2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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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바다와 알록달록 파라솔이 인상적인 '두러스 해변'이다.

청정한 바다와 알록달록 파라솔이 인상적인 두러스 해변. 저렴한 물가와 사람들의 친절함이 더해져 알바니아는 유럽인이 선호하는 여름 휴양지로 부상했다.

지중해를 품은 온화한 기후와 조밀한 산지가 어우러진 발칸반도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주요 교차점이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민족, 언어, 종교, 문화, 정치가 수없이 뒤섞이고 충돌하며, 깊은 상흔과 모자이크 같은 다양성을 품었다.


오늘날 발칸반도에는 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 튀르키예(유럽 부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가 속한다. 이 가운데 발칸 여행의 떠오르는 휴양지로 사랑받는 곳이 알바니아(Albania)다. 투명한 청록색 바다를 품은 청정 해변과 저렴한 물가, 사람들이 건네는 친절과 환대는 낯선 세계에서 마주하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독수리의 나라

알바니아의 비상을 꿈꾸는 수도 '티라나' 전경이다.

알바니아의 비상을 꿈꾸는 수도 티라나 전경. 잘 정비된 가로수와 공원이 많아 도심에 활력이 넘친다.

티라나의 중심 '스컨데르베우 광장'의 마스코트이자 알바니아 국민 영웅의 동상이다.

티라나의 중심 스컨데르베우 광장의 마스코트이자 알바니아 국민 영웅의 동상. 힘차게 펄럭이는 붉은 국기와 파란 하늘, 초록 잔디가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발칸반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나마즈가흐 모스크'이다.

발칸반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나마즈가흐 모스크.

핏빛을 연상시키는 붉은 바탕에 머리가 둘 달린 검은 독수리 한 마리가 포효한다. 알바니아 국기에는 강인함을 향한 열망이 담겨 있다. 발칸반도 서쪽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알바니아에 수많은 생채기를 냈다. 20세기 초까지 끊임없이 외세에 시달렸는데, 근 500년 가까이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1941년부터 1985년까지는 자국의 독재자에 의해 40년 넘게 공산주의 체제에 놓였고, 1999년에는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민족이 세르비아에 의해 잔인하게 탄압당하며 민족적 수모를 겪기도 했다.


탄압과 투쟁을 반복해온 어두운 역사와 달리 알바니아 국토는 더없이 청정무구하다. 우리나라 면적의 8분의 1에 불과하지만, 지중해의 맑은 바다와 해발 2,500m가 넘는 북알바니안 알프스를 비롯한 울창한 산세가 국토를 에워싼다.


알바니아가 품은 해변은 그리스, 이탈리아 못지않게 깨끗하고 푸르다. 아직 상업화가 덜 돼 자연 그대로의 여유와 한적함을 누릴 수 있고, 리조트 역시 유럽 물가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어 가성비 휴양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그래서 유럽 휴양객은 크로아티아보다 알바니아를 선호한다.


알바니아 도시 곳곳에는 모스크를 비롯해 이슬람 흔적이 많다. 오스만제국의 지배 탓에 유럽 어느 국가보다 무슬림 비율이 높아서다. 종교를 가진 인구의 68.0%가 무슬림이다. 그다음으로 정교회(22.0%)가 많으며, 가톨릭(10.0%)이 그 뒤를 잇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숫자에 불과한 수치다. 알바니아인은 종교 간 교류에 관대하다. 이슬람교도임에도 버젓이 성당을 방문해 기도하거나, 심지어 술과 돼지고기를 먹는 세속적인 면모를 지니기도 한다. 알바니아는 알면 알수록 반전 매력으로 가득하다.

다시 깨어나는 중, 티라나

'야외 카페'에서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이다.

야외 카페에서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

알바니아의 깨끗한 자연경관을 만나는 일출 명소, '보빌라 호수'이다.

알바니아의 깨끗한 자연경관을 만나는 일출 명소, 보빌라 호수. 투어를 이용하면 산 정상 부근까지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어 편리하다.

독재자에 의해 철권통치를 겪은 알바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국가였다. ‘유럽의 북한’으로 불렸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특히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는 현대적 도심 곳곳에 예술적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도시로 변신 중이다.


파란 하늘과 잘 정비된 초록 공원이 주는 산뜻함은 평화롭고 조용한 유럽의 여느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낯선 나라에서 으레 발동하는 경계 모드가 스르륵 풀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스컨데르베우 광장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온종일 활기가 넘치는 티라나의 중심지다. 국립역사박물관, 오페라극장, 호텔, 시장, 분수, 교회와 모스크 등이 광장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가장 먼저 초록 잔디밭 한가운데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동상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15세기 오스만제국에 맞서 싸운 알바니아 군주이자 국민 영웅 제르지 카스트리오티 스컨데르베우 동상이다. 광장도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동상 옆에 나부끼는 붉은 국기가 그의 위상을 돋보이게 한다.


동상 맞은편엔 알바니아 투쟁의 역사를 모자이크로 표현한 국립역사박물관이 자리한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시계탑과 에템 베이 모스크, 나마즈가흐 모스크의 미너렛이 탁 트인 하늘을 떠받치듯 서 있다.


1882년에 지은 시계탑의 나선형 계단 90개를 오르면 멋진 도심 전망이 펼쳐진다. 시계탑 바로 옆에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인 에템 베이 모스크가 자리하고, 걸어서 10분 거리엔 최근에 건설된 나마즈가흐 모스크가 있다.


튀르키예 정부의 지원으로 발칸반도 최대 규모로 건축됐으며, 미너렛 4개와 푸른 타일의 중앙 돔이 인상적이다. 가톨릭, 정교회 성당과도 스스럼없이 이웃해 있어 알바니아의 종교적 포용성을 엿볼 수 있다.


티라나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벙카르트2’에 들렀다. 과거 엔베르 호자가 건설한 핵 벙커 중 하나다. 그는 알바니아 전역에 벙커 70만여 개를 만들고, 극단적인 통제와 검열을 일삼은 독재자다. 암흑의 시대를 상징하는 사진과 문서, 물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이자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는 의미심장한 장소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방문할 가치는 충분하다.


밖으로 나오자 파랗던 하늘이 발그레한 홍조를 띠고 있었다. 도시의 밤을 재촉하듯 빠르게 소멸하는 일몰과 달리, 자연의 한복판에서 마주하는 일출은 수채화물감처럼 서서히 스며든다.


티라나에서 당일치기 투어로 다녀오기 좋은 보빌라 호수는 대표적 일출 명소다. 도심에서 20km 남짓 떨어진 다이티산 국립공원은 알바니아의 청정 자연을 손쉽게 경험할 수 있는 장소다. 이른 새벽 도심을 빠져나온 투어 차량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뒤뚱거리며 달렸다.


보빌라 호수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면 깜깜한 길을 따라 하이킹하거나 정상 근처에 자리한 보빌라 레스토란트까지 차를 몰고 가야 한다. 참고로 보빌라 레스토란트는 사방이 통유리로 된 레스토랑인데, 이곳에서 먹는 한 끼는 그야말로 풍경을 맛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전망이 황홀하기 그지없다.


다행히 정상 부근까지 차를 타고 이동한 뒤 뷰 포인트로 편하게 향했다. 계곡 깊은 데서 서서히 몰려들던 안개와 구름이 일순 싹 걷히더니 하늘이 붉게 물든다. 청록색 호수 위로 황금빛이 드리우자 호수의 자태가 서서히 드러난다.


아침 햇살이 지나간 자리엔 생의 즐거움이 깨어났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새 지저귐뿐 더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응시하며 일생에 한 번뿐일 순간을 오래도록 음미했다.

알바니아의 숨은 보물

알바니아 최대 항구도시 '두러스'의 그림 같은 아침 풍경이다.

알바니아 최대 항구도시 두러스의 그림 같은 아침 풍경. 알바니아의 하늘은 유독 낮게 깔리는 구름 덕분에 일출과 일몰 풍경이 환상적이다.

베라트 시내를 굽어보는 '성 삼위일체 교회'이다.

베라트 시내를 굽어보는 성 삼위일체 교회.

'베라트 만갈렘' 구역의 마을 전경이다.

베라트 만갈렘 구역의 마을 전경. 흰 벽과 다갈색 지붕, 크고 작은 창을 낸 옛 가옥이 여전히 이웃하며 공존한다.

따사롭고 화창한 날씨 아래 청정 해변에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사란다'는 ‘알바니아의 낙원’이다.

따사롭고 화창한 날씨 아래 청정 해변에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사란다는 ‘알바니아의 낙원’이라고 해도 손색없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알바니아의 해변은 번잡하지 않고 청정하다. 티라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두러스는 알바니아 최대 항구도시이자 무려 3,000년 역사를 품은 고대도시다. 비록 관리 부실로 허물어진 부분이 많지만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로마시대 원형극장이 그 역사를 대변한다.


두러스의 해변은 수심이 얕아 가족단위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파도도 말이 없을 만큼 잠잠한 바다에 뛰어든 아이들의 해사한 웃음소리가 한적한 백사장 위를 맴돈다.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를 보내기에 알맞은 휴식처다.


반면 알바니아 남부 해안에 자리한 사란다는 1년에 한 번뿐인 여름휴가를 보내기 아깝지 않을 만큼 화사한 휴양지다. 우선 날씨가 화창하다. 연중 300일 이상 내리쬐는 태양으로 언제나 따사롭고, 지천으로 자라는 올리브나무와 오렌지나무는 여느 지중해 국가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 그리스의 코르푸섬이 바로 눈앞에 보일 정도로 가깝기도 하다. ‘알바니아의 낙원’으로 불리는 사란다에서 인기 있는 해변으로는 보라보라 비치, 데르미 비치, 미로르 비치를 꼽을 수 있다.


보라보라 비치는 작은 백사장 가득 파라솔과 선베드가 펼쳐져 한적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물이 맑고 레스토랑이나 바를 이용하기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멋진 산 전망에 둘러싸인 데르미 비치 역시 맑고 푸른 바다에 몸을 담그거나 일광욕을 즐기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로운 자유를 누리기에 좋다.


레스토랑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휴양지의 분위기를 돋우며 진정한 휴식처임을 느끼게 한다. 미로르 비치는 상대적으로 적은 인파 덕에 한적하며, 해변에는 모래가 아닌 조약돌이 깔려 있다. 수정처럼 맑은 바닷물이 인상적인 해변 중 하나다.


즐거운 하루의 마무리로는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러쿠러시 성에 올라 일몰을 감상하고, 신선한 식재료로 맛을 낸 음식을 풍성하게 맛보는 것이다. 알바니아 음식은 발칸과 지중해, 오스만제국의 영향을 받아 양고기와 소고기, 요구르트와 허브, 향신료, 채소, 올리브오일을 주재료로 한다.


대표적으로 양고기와 요구르트를 오븐에 구운 고소하고 크리미한 식감이 돋보이는 타버코시, 얇은 반죽에 고기, 치즈, 시금치 등을 넣어 구운 파이 뷔레크, 토마토와 고추, 양파, 치즈를 넣어 익힌 퍼르게서, 견과류와 꿀을 넣어 만든 달콤한 디저트 카다위프가 있다.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과일 맛도 일품이다.


알바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베라트는 ‘1,000개의 창을 가진 도시’로 불린다. 베라트의 만갈렘 구역에 가보면 절벽 위로 흰 벽과 다갈색 지붕을 인 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데, 수없이 많은 사각 창이 인상적이다. 강 건너편에서 그 풍경을 바라보면 마치 1,000개의 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곳은 강을 사이에 두고 무슬림과 정교회 마을이 마주한 채 오랜 세월 공존해왔다. 비잔틴양식의 세인트 마리 성당을 비롯해 크고 작은 성당 100여 채가 전통의 맥을 잇고, 오스만제국 시절의 건축양식이 여전히 잘 보존돼 과거의 영광을 대변한다.


비록 무너진 부분이 있지만 여전히 언덕 위에 당당히 서 있는 베라트 성과 주변 성곽길은 포토존으로 가득하다. 올망졸망한 조약돌이 깔린 좁은 골목, 야트막한 담장 사이로 피어난 들꽃, 붉은 기와를 이고 도시를 굽어보는 성 삼위일체 교회, 담장에 내걸린 채 관광객의 손길을 기다리는 순백의 리넨 옷까지, 모든 게 조화롭고 순화롭다. 언젠가는 사무치게 그리워질 알바니아의 풍경이다.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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