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과 현대사회의 표상, 앤디 워홀

2025.04.09

읽는시간 4

0

'앤디 워홀'의 작품을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앤디 워홀 이전에 통조림 캔과 바나나는 그저 사물일 뿐이었다. 붓으로 칠해야만 그림이었고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광고용 포스터나 상업용 일러스트는 돈벌이 수단으로 여길 뿐 예술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앤디 워홀이 미술시장을 뒤집어놓았다.

 

실크스크린으로 찍은 ‘금빛 마릴린 먼로’는 미국 대배우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떠올랐고, 캠벨사의 통조림 캔은 미국 소비문화를 꼬집는 ‘예술적 피사체’로 격상되었다. 앤디 워홀은 예술계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돈 밝히는 상업 미술가’와 ‘혁신적 예술가’로.

오늘날 앤디 워홀이 세계적 예술가라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그 작품은 어마어마한 가격을 호가하며 세계 유수 갤러리에 걸려 있다. 살아생전 부와 명성을 거머쥔 예술가였고, 수많은 연예인 및 예술가와 교류한 스타였다. “돈 버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다”라는 거침없는 발언도 현실을 반영하는 명언으로 회자된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전설적인 큐레이터 헨리 겔트잘러는 앤디 워홀의 작가성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는 다양하고 모순되는 의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화가다. 주제를 포착하는 혜안이 뛰어나고, 대중을 소비자로 규정하는 사회의 방식을 깊이 고찰했다. 그런 능력을 바탕으로 실제 세계에 대한 묘사와 모순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시 풍경을 담아내는 새로운 접근법을 창안했다.”

세계적인 예술가 '앤디 워홀'의 사진이다.

명성을 좇은 겸손한 예술가

앤디 워홀은 유명세를 동경했다. <앤디 워홀 일기>를 펴낸 팻 해켓에따르면, 워홀은 눈길을 끄는 아름다움, 인내로 이룬 결실, 혁신적 아이디어 그리고 최초의 시도에 열광했다. 훌륭한 성품이나 유려한 말솜씨에도 흥미를 보였으며, 반짝 떠올랐다가 사그라드는 명성이라도 우러러보고 감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고 오래된 미국 지폐를 좋아했다.

유명세를 갈망한 한편 거만하지는 않았다. 예술적 재능과 대중적 명성을 모두 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했다. 실크스크린 작품은 일부일 뿐 일러스트 작업과 영화 제작, 음반 프로듀싱에 잡지 발행까지 하며 수 많은 예술가와 밤낮없이 교류했다. 열정과 노력은 워홀이 명성을 이어간 비결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 요소를 더하자면 ‘겸손’이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자신만의 일로 여기지 않았고, 사소한 일이라도 꼭 감사를 전했다. 팻 해켓은 앤디 워홀이 ‘고맙다’는 표현을 말버릇처럼 했다고 전한다. “나는 앤디처럼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고, 그의 말에서는 정말로 고마워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미지 소비 시대의 표상

앤디 워홀은 부지런했다. 전형적인 모습부터 스스로 공들여 연출한 것이다. 대중 앞에서는 언제나 흰색 가발을 썼고 피부 화장을 진하게 했으며, 크고 진한 선글라스로 눈을 가렸다.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으면서 다분히 상징적인 모습이다. 그의 작품이 얼마든지 복제 가능한 시대적 표상이듯 말이다.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일화도 있다.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앤디 워홀에게 강연 초청이 이어지자, 그는 배우 앨런 미드게테를 자신처럼 꾸며 강연에 내보냈다. 흰색가발을 쓰고 선글라스를 낀 모습은 영락없는 앤디 워홀 그 자체였다. 강연 대타는 무려 4개월이나 이어졌다.

 

“앤디 워홀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나의 그림과 영화 그리고 나의 표면을 보세요. 거기에 내가 있습니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워홀의 이 발언은 자신의 작품 뿐 아니라 생애 전반을 정의한다. 그는 표면적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를 정확히 꿰뚫어봤고, 그 흐름에 온몸을 던졌다.

기계적 방식으로 만든 실크스크린 작품인 '금빛 마릴린 먼로' 작품이다.

앤디 워홀의 기념비적 작품

‘금빛 마릴린 먼로’

기계적 방식으로 만든 실크스크린 작품은 앤디 워홀을 일약 스타로 만든 것들이다. 그 첫 시도가 ‘금빛 마릴린 먼로(Gold Marilyn Monroe)’다. 1962년 8월 마릴린 먼로가 생을 달리하자, 워홀은 그 아름다운 얼굴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릴린 먼로를 담은 첫 작품 ‘마릴린 먼로 두 폭(Marilyn Diptych)’은 먼로 사망 후 단 3주만에 탄생했다.

 

곧이어 ‘금빛 마릴린 먼로’도 완성했다. ‘금빛 마릴린 먼로’는 앤디 워홀과 마릴린 먼로 모두에게 기념비적 작품이다. 청록색, 녹색, 파란색, 노란색, 검은색을 조합한 얼룩덜룩한 금빛 배경은 신화로 남겨진 먼로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연상시키고, 기이하게 과장된 금발, 붉은 입술, 청록색 눈, 하얀 치아는 천박하다고도 할 만한 할리우드의 분장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머릿결이나 피부색이 거세된 이미지는 먼로의 공허하고 고독한 삶을 드러내는 듯하다. ‘금빛 마릴린 먼로’를 처음 공개한 전시를 두고 미술비평가이자 미술사학자 마이클 프라이드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워홀이 빚은 작품은 아름답고 과감하며, 가슴 아픈 마릴린 먼로의 상징에 나만큼 감동받지 못할 세대에 대한 진일보적 저항이자 이번에 전시된 작품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이다. 마릴린이 우리 시대에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신화였기 때문이다.”

생산성, 상품성, 대중성이 드러나는 앤디 워홀 작품 '캠벨 수프 통조림'이다.

‘캠벨 수프 통조림’

상업적 요소를 다룬 작품의 창의성을 인정할 수 있을까? ‘캠벨 수프 통조림’은 예술계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예술계 전통주의자는 그 작품을 가벼운 장난으로 치부한 반면, 혁신주의자는 사회 비판적이고 독창적이라며 작품성을 인정했다.

단, 미국인에게 너무 익숙한, 그래서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이미지로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었다. 앤디 워홀이 “20년간 점심 식사로 매일 똑같은 수프를 먹었다”는 말은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수많은 동시대 미국인의 일상을 대변한다.

 

뉴욕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캐럴라인 랜츠너는 이 작품을 한 문장으로 정의했다. “일상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흔한 소비재를 일종의 상징으로 격상시켰다.”

‘캠벨 수프 통조림’에서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생산성, 상품성, 대중성은 앤디 워홀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특징이다. 생전에 워홀은 예술이 대중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고수했고, 대량생산해 저렴하게 판매하며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작품을 추구했다.

 

다만 그는 미래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자신의 작품이 거액에 판매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앤디 워홀의 고향인 미국 피츠버그에 자리한 '앤디 워홀' 박물관 외관이다.

앤디 워홀의 고향인 미국 피츠버그에 자리한 앤디 워홀 박물관. 유명한 작품은 물론 습작, 사진, 영상 등 앤디 워홀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괴짜 작가의 기이한 영화

앤디 워홀의 괴짜 이미지는 그가 제작한 영화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가 자는 모습을 20여 분간 찍은 뒤 5시간 넘게 반복하거나, 수십 시간 동안 먹거나 자는 모습을 찍은 뒤 편집 없이 그대로 상영하거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작품 등 영화의 틀을 완전히 뒤집은 작품을 연출했다.

그중 꾸준히 회자되는 작품으로 영화 <엠파이어>(1964) 가 꼽힌다.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보이도록 카메라를 고정한 뒤 8시간 동안 촬영한 작품이다. 해가 뜨고 지면서 자아내는 빛과 그림자가 연출 아닌 연출의 전부였다.

 

앤디 워홀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스타이기 때문에” 피사체로 선택했다고 했다. 그리고 마릴린 먼로를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낸 것처럼 반복적으로 노출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닿는 시선과 관심을 ‘무(無)’로 만들어버렸다. 자주,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지루함을 넘어서 관심조차 가지 않는 캠벨 수프 통조림 이미지처럼 말이다.

단,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 듯한 영화에도 일종의 변주가 있었다. 1초에 24프레임으로 찍은 영상을 16프레임으로 늘린 것이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현실과 영화의 속도는 달랐다.

 

또 이 작품이 아니라면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을 앞에 두고 몇 시간 동안 집중할 리도 없다. 영화는 표면적으로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지만 엄연히 비현실적 창작물이다.

여담으로, 영화관에서 <엠파이어>를 상영할 당시 관객 대부분은 1시간이 채 되기도 전 퇴장했다. 끝까지 본 관객은 중간중간 잠을 자거나 식사를 했고, 주변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앤디 워홀조차 이 작품을 끝까지 관람 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와 KB Think 글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