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이 이 흐름에서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광 인터커넥트 하나만 하는 회사가 아니라, 광과 ASIC 두 개의 성장 엔진을 동시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ASIC이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데,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구글, 아마존, 메타 같은 빅테크들은 시중에 파는 범용 GPU 대신 자기 서비스에 딱 맞게 설계한 전용 칩을 원한다.
마치 기성복 대신 맞춤 정장을 주문하는 것과 같다. 이 맞춤형 반도체를 ASIC 또는 맞춤형 가속기(XPU)라고 부른다. 마블은 이 칩의 설계와 개발을 빅테크 고객사에 대신해주는 역할을 25년간 해왔고, 지금까지 2000개 이상의 ASIC을 납품했다. 마블의 자체 분석으로는 2028년쯤 XPU 출하량이 범용 GPU를 추월할 전망이다.
이 흐름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마블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함께 차세대 AI XPU용 커스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개발 중이다. 표준 규격에 맞춰진 기존 HBM과 달리, 고객사 칩 설계에 최적화된 맞춤형 메모리다.
HBM은 AI 가속기 재료비의 약 3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인데, 마블은 이 HBM을 고객 칩 구조에 맞게 다시 설계함으로써 메모리 전력을 최대 70% 줄이고 용량은 33%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단순히 HBM을 납품하는 것을 넘어, 마블의 커스텀 플랫폼 안으로 들어가 설계 단계부터 협력하는 구조다.
마블의 광 포트폴리오는 AI 데이터센터의 연결 구조 전반을 겨냥한다. GPU끼리 연결하는 랙 안 초근거리 구간에는 데이터 이동을 중계하는 PCIe 스위치와 공동패키지광학(CPO) 기술을, 서버와 랙을 묶는 데이터센터 내부 구간에는 광 신호처리칩 Ara를, 데이터센터 간 장거리 연결에는 COLORZ 시리즈를 공급한다. AI 데이터센터의 부담이 연산 성능뿐 아니라 데이터 연결 속도로 옮겨갈수록 마블의 역할이 커지는 구조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굵직한 인수·합병(M&A)이 이 전략을 완성하고 있다. 마블은 2025년 12월 스타트업 셀레스티얼 AI를 최대 55억 달러에 인수했다. 셀레스티얼 AI의 포토닉 패브릭 기술은 GPU와 메모리 사이 신호를 전기가 아닌 빛으로 주고받는 차세대 기술로 구리 연결 대비 전력 효율이 2배 이상 뛰어나다.
여기에 스위치 칩 스타트업 엑스콘도 3억25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이 두 인수를 통해 마블은 단순 부품 공급자에서 AI 데이터센터 연결 구조 설계 전반에 관여하는 파트너로 입지를 격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