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어서 더 아름다운 체코 모라비아 소도시 여행

2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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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동부에 위치한 모라비아 지역의 드넓은 평야'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인 만큼 프라하 중심의 보헤미아 지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체코 동부에 위치한 모라비아 지역의 드넓은 평야.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인 만큼 프라하 중심의 보헤미아 지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체코는 크게 프라하로 대변되는 보헤미아 지역과 농업과 와인이 중심인 모라비아 지역으로 나뉜다. 화려한 건축과 유서 깊은 문화유산으로 익숙해진 프라하와 달리, 모라비아의 소도시들은 전혀 다른 풍경과 정서를 품고 있어 체코를 새롭고 낯설게 만든다.

모라비아는 체코 와인 생산을 대부분 책임지는 대표적인 산지다. 고요한 들판과 반짝이는 포도밭, 그리고 고풍스러운 소도시가 모여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펼쳐 보인다. 모라비아의 여유롭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비로소 체코의 또 다른 진면목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모라비아의 관문, 브르노

'언덕 위에 자리한 슈필베르크 성이 붉은 지붕'의 브르노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역사 도시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브르노 전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슈필베르크 성.

보헤미아의 대표 도시가 프라하라면, 모라비아 지역의 중심 도시는 브르노(Brno)다.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모라비아의 옛 수도였던 이곳은 오늘날에도 모라비아의 문화와 경제, 교육의 중심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프라하에서는 기차로 약 2시간, 자동차로 3시간 30분가량 소요되며, 국경을 맞댄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차로 1시간 30분 정도면 닿을 수 있어 모라비아 여행의 관문 역할을 한다.

여행의 시작은 브르노를 한눈에 굽어보는 슈필베르크 성(Špilberk Castle)이다. 붉은 지붕이 인상적인 이 성채는 한때 오스트리아 제국 시절 악명 높은 감옥으로 사용됐지만, 이제는 시립 박물관으로 탈바꿈해 과거의 이야기를 차분히 전하고 있었다. 성의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면 브르노 시내 전경이 한눈에 펼쳐져 마치 시간이 흐르는 깊은 강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브르노의 자랑, 빌라 투겐트하트(Villa Tugendhat)는 근대건축의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의 걸작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1930년 완공된 이 건물은 근대건축의 대표작으로 꼽히는데, 불필요한 장식을 모두 배제하고 기능성과 공간의 연속성을 중시하며 ‘적을수록 풍요롭다’는 그의 미니멀리즘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실제로 단순함에서 오는 세련미가 인상적인데, 투명한 벽과 개방감 넘치는 입면 설계로 자연광이 건물 내부에 스며들게 하고, 대리석과 가죽, 크롬 등 간결하면서 고급스러운 소재가 조화를 이룬 점도 눈에 띈다. 특히 철골 구조가 외관과 내부 공간에서 드러나도록 설계했는데, 이는 건축 그 자체가 예술이자 기능이라는 미스 반데어로에의 또 다른 철학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빌라 투겐트하트는 단순함 속에 숨어 있는 정교함과 미학, 그리고 기술적 진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던 건축의 기념비라 할 수 있다. 수개월 전부터 예약이 마감될 만큼 방문 경쟁이 치열하지만, 그만큼 가치를 품은 공간임은 틀림없다.

브르노의 심장이라 불리는 자유광장(Zelný trh)으로 향했다. 삼각형 모양의 매우 독특한 공간으로, 브르노 구시가지 한가운데 자리한 활기 넘치는 시장 광장이다. 이른 아침부터 신선한 채소와 과일, 향신료, 꽃 등 다양한 현지 농산물이 가득한 시장이 열리고, 광장 한편에는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해 가장 활력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크와 고딕 양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구경하며 걷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자유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카푸친 수도회는 지하 묘지로 유명하다. 17~18세기 수도사와 귀족 후원자들의 미라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공간이다. 현재는 미라 전시관으로 운영되며, 입장료를 내면 누구나 이 신비로운 역사의 공간을 탐험할 수 있다. 미로처럼 얽힌 지하 통로에서 마주하는 미라들의 모습은 다소 무섭기도 했지만, 브르노 여행에서 가장 독특하고 깊은 인상을 남긴 체험이었다.

미스 반데어로에가 설계한 ‘빌라 투겐트하트’는 그의 미니멀리즘 철학이 깃든, 근대건축의 대표작이다.

미스 반데어로에가 설계한 ‘빌라 투겐트하트’는 그의 미니멀리즘 철학이 깃든, 근대건축의 대표작이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거대한 인물 조각상들'이 기둥 역할을 하며 바로크 양식 건축물의 화려한 장식미를 드러낸다.

브르노 중심부에 위치한 자유광장에서는 다양한 건축양식의 건물과 다채로운 조각품을 만날 수 있다.

와인의 깊은 향기, 미쿨로프

붉은 지붕의 미쿨로프 성이 언덕 위에 우뚝 서 있고, 아래로는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이 펼쳐져 남모라비아의 정취'를 전한다.

미쿨로프의 랜드마크이자 마을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미쿨로프 성.

브르노에서 차로 40분 남짓 달리면, 넓게 펼쳐진 들판과 포도밭 사이로 모라비아 와인 산지 미쿨로프(Mikulov)가 모습을 드러낸다. 모라비아 남부에 자리한 미쿨로프는 체코를 대표하는 와인 생산지로, 오랜 역사와 문화, 아름다운 자연과 와인의 낭만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다.

가장 먼저 미쿨로프의 구시가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좁고 구불구불한 돌길 사이로 파스텔 톤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이어져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그림책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곳곳에는 바람에 실려 오는 포도밭의 신선한 향과 함께 오래된 도시의 역사가 스며 있다.

도시의 상징이자 수백 년의 이야기를 품은 미쿨로프 성은 구시가지를 굽어보며 든든한 수호자처럼 자리한다. 성 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과 도시의 전경은 미쿨로프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포도밭의 푸르름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성과 도시가 한 폭의 예술 작품처럼 어우러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미쿨로프는 체코 와인 생산의 중심지답게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수많은 와인 셀러와 와이너리가 밀집한 곳이다. 특히 모라비아의 화이트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데, 화이트 와인 외에도 로제,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 곳도 많다.

전문 가이드와 함께하는 와인 투어는 포도밭과 셀러의 역사, 와인 제조 과정에 대한 생생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와인을 깊이 이해하고 애정을 더하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한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열리는 와인 축제에선 현지인과 여행객이 어우러져 다채로운 와인과 음식, 음악을 즐길 수 있어 꼭 한 번 경험해 봄 직하다. 또 곳곳에 아담한 와인바가 다채롭게 자리하고 있어, 신선한 모라비아 치즈와 수제 소시지를 곁들여 와인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든든한 식사 후에는 강가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와 풀벌레 우는 소리가 오늘 하루의 여유로운 정취를 더해준다. 들꽃이 햇살에 반짝이고 짙은 허브 향이 코끝을 스치며, 몸과 마음이 자연에 녹아드는 기분이 든다.

저녁이 되어 도시가 노을빛으로 물들면 미쿨로프는 한층 더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로 변한다. 붉은빛 속에서 고즈넉한 성과 포도밭, 그리고 옛 건물들의 그림자가 어우러진 모습은 한 편의 시와 같았다.

'잘 정돈된 포도밭이 마을까지' 이어지고, '언덕 너머로 펼쳐진 모라비아 전원의 풍경'이 와인 산지의 매력을 보여준다.

미쿨로프 근교의 포도밭. 모라비아에서도 최고의 와인 산지로 꼽힌다.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갓 수확한 포도를 압착기에 넣으며' 모라비아 지역의 와인 생산 문화를 재현하고 있다.

미쿨로프 팔라바 포도 수확 축제. 팔라바는 체코 대표 품종으로 달콤한 과일 향과 향신료의 풍미가 함께 느껴진다.

체코의 숨은 보석, 발티체

'바로크 양식의 우아하고 웅장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발티체 성'의 탑뷰 이미지이다.

바로크 양식의 우아하고 웅장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발티체 성.

모라비아 소도시 여행에서 와인 투어가 인기가 높은데, 미쿨로프와 함께 꼭 빠지지 않는 곳이 발티체(Valtice)와 레드니체(Lednice)다. 세 곳 모두 브르노 남쪽에 위치해 있고, 거리도 가까워 당일치기 코스로도 손색없다. 와인 산지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각기 다른 매력을 품고 있어 서로 비교해 가며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나란히 붙어 있는 발티체와 레드니체는 유럽 최고의 와인 루트이자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총면적 200km²에 달하는 두 곳을 묶어 ‘레드니체-발티체 문화경관’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특별하다.

체코 남부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한 발티체는 과거 유럽 귀족 문화와 와인 생산이 어우러진 곳으로, 가장 상징적인 공간으로는 발티체 성(Zámek Valtice)을 들 수 있다. 13세기경 처음 건설된 것으로 알려진 발티체 성은 여러 번의 증축과 개조를 거쳤는데, 특히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소유하면서 현재의 웅장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도시 중심부에 자리한 데다, 성 주변은 온통 포도밭이어서 마을 어디서든 쉽게 눈에 띈다.

그림 같은 풍경 속에 놓인 발티체 성의 백미는 바로크 양식의 웅장하고 우아한 건축미다. 노란빛 벽과 하얀 장식, 붉은 지붕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예술 작품 속 고성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발티체 성은 내부에 국가 와인 살롱(Národní Salon vín)을 품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체코 전역에서 엄선한 수백 종의 와인을 보관하고 있는데, 매년 엄격한 심사를 거친 100여 종의 와인을 시음할 수도 있다. 와인 초심자임에도 다채로운 종류를 조금씩 경험하며 와인의 세계에 가까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현지인과 와인 애호가에게 인기 있는 ‘100분 동안 100잔 시음하기’ 코스는 와인의 역사와 자연, 전통이 녹아든 깊이를 느끼게 하는 특별한 체험이다. 이곳에서 와인이 단순한 음료를 넘어 역사와 전통,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임을 새삼 깨닫는 동시에 와인에 숨겨진 의미와 정성을 마주하는 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레드니체의 우아한 정원을 거닐다

'와인잔 두 개가 붉은 지붕의 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놓여 있으며, 모라비아 지역 특유의 와인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체코산 와인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화이트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레드니체 성을 둘러싼 아름다운 레드니체 호수와 200년 역사의 이슬람식 첨탑 미나렛'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레드니체 성을 둘러싼 아름다운 레드니체 호수와 200년 역사의 이슬람식 첨탑 미나렛.

발티체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레드니체는 우아한 매력을 품은 도시다. 이곳의 백미는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여름 궁전인 레드니체 궁전(Zámek Lednice)이다. ‘레드니체’는 체코어로 냉장고라는 뜻으로, 귀족들의 청량하고 우아한 휴식처를 의미한다. 바로크 양식을 기본으로 르네상스·로마네스크·고딕·네오고딕 양식 등이 혼합되어 유럽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레드니체 궁전은 프랑스식 조경이 어우러진 영국식 정원으로 유명하다. 넓은 꽃밭과 조각 가득한 분수, 미로 같은 산책로는 걸음마다 황홀한 경험을 선사한다. 8개의 건물과 4개의 정원으로 구성된 궁전은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보통 말이 끄는 마차나 보트로 둘러보는 코스가 인기가 높다. 궁전과 정원을 모두 둘러보고 나면 ‘모라비아의 베르사유’라는 별칭이 왜 붙었는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발티체와 레드니체는 자전거나 전동 스쿠터를 이용해 여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포도밭을 가로지르고 호수와 고즈넉한 성들을 지나며 그림 같은 풍경 속을 달리는 경험은 이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다. 특히 저녁 무렵 레드니체 호숫가에서 보는 일몰은 포돗빛 노을로 물든 하늘과 어우러져 한층 더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포도 향기 가득한 들판과 고요한 정원을 거닐다 보면, 체코를 단지 프라하의 도시로만 한정 지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모라비아의 소도시가 간직한 와인 문화와 풍부한 역사,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여정은 마치 시간을 초월한 한 편의 서사시 같았다. 도시의 번잡함을 떠나 한결 여유롭고 평화로웠던 시간은 오랫동안 가슴에 맴돌아 깊은 여운을 남겼다.

'발티체 성 내부에 있는 국가 와인 살롱'이다. 체코 전역의 와인을 모두 만날 수 있다.

발티체 성 내부에 있는 국가 와인 살롱. 체코 전역의 와인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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