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사랑한 화가

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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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화가라 불리는 '호아킨 소로야'의 작품이다.

영감의 원천이자 위로와 치유의 공간이었던 바다. 캔버스 속 바다에 담긴 화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본다.

바다의 화가라 불리는 '호아킨 소로야'의 작품이다.

바다 위 삶과 풍경, 호아킨 소로야

스페인 해안 도시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호아킨 소로야(Joaquin Sorolla, 1863~1923). 그래서인지 그는 유독 바다 그림을 많이 그렸다. 산책하는 여인, 손잡고 걷는 가족,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낸 그의 그림에는 언제나 바다가 등장한다. 호아킨 소로야를 ‘바다의 화가’라고 부르는 이유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한 호아킨은 18세가 되던 해부터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거장의 작품을 모사하며 실력을 쌓았다. 이후 미술 공부를 위해 떠난 로마에서 르네상스 시기 대작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호아킨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파리 유학에서 접한 인상주의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빛의 순간을 포착해내는 새로운 사조에 매료된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법을 완성했고, 빠른 붓 터치와 생동감 넘치는 색채를 더한 역동적인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호아킨은 작품 활동을 위해 마드리드에 살았지만 언제나 그의 마음은 발렌시아를 향해 있었다. 잠시라도 틈이 생기면 지체 없이 고향의 바다로 달려갔다.

“저는 언제나 발렌시아로 돌아갈 뿐입니다. 그 해변으로 가 그림 그릴 생각만 합니다. 저에게는 발렌시아 해변이 바로 그림입니다.”

그는 지중해와 맞닿은 수평선과 햇빛에 반짝이는 발렌시아 해변을 캔버스에 담고 또 담았다. 그 해변엔 아내 클로틸데와 사랑스러운 세 자녀가 자주 등장한다. ‘해변 산책’ 속 두 여인은 그의 아내와 딸. 해변에 앉아 사진기를 만지고 있는 ‘순간 포착’ 속 여성도 그의 딸이다. 평화로운 바다 풍경과 가족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느껴져 행복한 미소를 전한다.

하지만 첫 삽을 뜨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했다. 에펠탑을 지으려면 800만 프랑이 필요했지만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건 150만 프랑뿐이었던 것. 에펠은 자신이 부족한 공사비를 부담하는 대신 20년간 에펠탑의 독점 운영권을 갖는 조건으로 공사에 착수한다.

 

만약 탑을 만드는 데 실패하거나 흥행하지 못한다면 모든 빚을 에펠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그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사를 진행한 건, 분명 에펠탑 건설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에펠의 결단력과 도전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파리의 상징이자 세계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에펠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색체의 화가라 불리우는 '라우 뒤피'의 그림이다.

행복의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라울 뒤피

화려하고 다양한 색감이 인상적인 ‘색채의 화가’ 라울 뒤피(Raoul Dufy, 1877~1953). 삶의 행복과 기쁨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겨 ‘기쁨의 화가’라고도 불린다. 두 개의 수식어만으로도 그의 작품 세계가 얼마나 밝고 다채로운지 짐작할 수 있는데, 특히 푸른 바다를 화폭에 많이 담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라울 뒤피는 노르망디 지방의 항구 도시 르아브르(Le Havre)에서 태어났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아름다운 르아브르는 클로드 모네를 비롯해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속에도 종종 등장하는 곳이다. 인상파 화가의 그림은 라울 뒤피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작품을 통해 ‘빛’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라울 뒤피를 색채의 세계로 인도한 건 앙리 마티스다. ‘사치, 평온, 쾌락’이라는 작품 속 강렬한 색과 굵은 윤곽선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훗날 화려한 색채와 역동적인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했다.

라울 뒤피에게 바다는 가장 익숙한 공간이자 친근한 소재였다. 그는 프랑스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바다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다. 또 그는 요트 경기를 주제로도 그림을 여럿 남겼다.

 

푸른 바다 위로 둥실둥실 떠 있는 요트가 다채로운 색과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에 행복한 파동을 일으킨다. 평생 세상의 밝고 즐거운 면만 보기 위해 노력한 화가 라울 뒤피. 그의 작품을 보고 있는 순간만큼은 잠시나마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삶의 기쁨과 행복에 빠진다.

인상주의 화가 '메리 카사트'의 그림이다.

추억을 품은 바다, 메리 카사트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인상파 화가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세기 인상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1844~1926). 카사트는 184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배웠고, 수많은 화가의 다양한 작품을 접하며 식견을 넓혔다.

메리 카사트는 15세가 되던 해, 화가가 되고 싶어 파리 유학을 결심하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쳤다. 19세기만 해도 여성은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만 충실해야 할 만큼 보수적이었기 때문. 반대를 무릅쓰고 떠난 유학에서도 차별은 계속됐다.

 

학교는 물론, 동료와 비평가조차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냉대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그림을 그린 카사트는 주로 여성과 아이를 캔버스에 담았다. 따스한 색감과 부드러운 터치로 완성한 그녀의 그림은 아늑하고 한없이 포근하다.

메리 카사트의 대표작은 ‘해변에서 노는 아이들’이다. 두 아이가 백사장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저 멀리 푸른 바다에서 요트와 보트가 한가로이 떠다니는 여유로운 풍경. 두 아이를 바라보는 메리 카사트의 따듯한 시선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1886년 인상파 전시에 출품해 호평받은 이 작품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 있다. 카사트의 사랑하는 언니 리디아가 45세의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 슬픔에 빠져 반년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카사트가 이후 처음으로 그린 그림이 이 작품이다.

 

아마도 그림 속 두 아이는 카사트와 리디아의 분신이거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지 않을까. 그녀에게 바다는 언니 리디아와의 추억의 공간이자 회상의 매개체, 그 모습을 담은 캔버스는 추억을 영원하게 만들어주는 기억의 저장소인 셈이다.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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