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혹은 괴짜, 이상의 세계

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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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최소앙이 만든 '이상'의 '흉상'이다.

조각가 최수앙이 만든 이상의 흉상.

'이상'의 유고 '전원수첩'의 속표지 내용이다.

이상의 유고 <전원수첩>의 속표지.

'이상'의 집 모습으로 아담한 크기의 기와집이다.

이상의 집.

파란만장한 삶

1910년 태어난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李箱)’은 그의 필명으로, 한자를 풀이하면 ‘오얏나무 상자’라는 뜻이다. 신명보통학교 동창인 화백 구본웅에게 선물로 받은 화구상자(畵具箱子)에서 비롯한 이름이라 전해진다. 그 당시에는 화구상자를 오얏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구본웅은 야수파의 표현주의적 화풍을 국내 화단에 처음 소개하고, 우리나라 모더니즘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은 작가로 이상의 초상화를 남기기도 했다. 대부분 이상을 독특한 세계관의 문학가로만 알고 있는데, 그의 이력은 생각보다 다채롭다. 삽화가이자 건축가였고, 직장 생활을 했으며, 다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실제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이후 조선총독부 내무국에서 건축 기사로 근무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한 때가 이 시기다. 1930년 조선총독부 홍보 잡지 <조선>에 중편소설 <12월 12일>을 발표했고, 이듬해엔 <조선과 건축>에 ‘이상한가역반응’이란 시를 비롯 해 20여 편이 실렸다.

<조선과 건축>은 일본 건축가를 중심으로 결성한 조선건축회 학회지로, 당시 이상의 작품은 일본어로 실렸기에 국내 문단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1933년 폐결핵이 악화해 건축 기사 일을 그만둔 이상은 종로에 다방 ‘제비’를 열었다. 다방은 문인의 사랑방 역할도 했는데, 이때 이상은 박태준,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등 ‘구인회’와 활발하게 교류하며 다양한 작품을 창작했다.

이상의 시 ‘오감도’의 인쇄본이다.

이상의 시 ‘오감도’. C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36년 <여성> 12월호에 실린 '이상'의 '단편소설' <봉별기>의 모습이다.

1936년 <여성> 12월호에 실린 이상의 단편소설 <봉별기>. C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알 수 없는 이상의 세계

이상의 대표작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오감도’다. 오늘날에도 한국 문학 사상 가장 난해한 시로 평가받는 작품 이니, 당시에는 더 충격적이었을 터. 애초에 30편 연재를 목표로 했으나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쳐 15편에서 중단되었다.

가장 기초적 문법인 띄어 쓰기를 무시하거나 의미를 찾아볼 수 없는 제목,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없는 기괴한 내용등기존에 시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뜨린 파격적 작품이다. ‘오감도’라는 제목도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이상이 만든 신조어다.

건축 용어인 조감도(鳥瞰圖)의 첫 자 ‘새 조(鳥)’에서 획 하나를 빼 ‘까마귀 오(烏)’로 변형시켰는데, 이는 그가 전공한 건축학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발표 당시 숱한 논란과 비난의 대상이었으나 해방 후 이상의 시가 재평가 받는데 중심이 된 작품도 ‘오감도’다. 한국 문학사에서 유례 없는 난해한 작품으로 지금도 여전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그의 시 ‘오감도 시제 4호’를 물리학적으로 해석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해당 시는 온통 뒤집어진 숫자와 검은 점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를 광주과학기술원 연구 팀이 전자기학적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법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이전에 도비 문법적 형태와 모호한 표현, 규범에서 벗어난 그의 작품에 대한 풀이와 해석은 꾸준히 있었다. 과연 이상만큼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회자되는 문학가가 또 있을까.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심리소설'로 평가받는 '날개'이다.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 C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상'의 수필 '첫 번째 방랑' 원본 모습이다.

이상의 수필 <첫 번째 방랑> 원본. C 국립한국문학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1936년 발표한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회와 역사의 절망 속에서 무기력한 지식인의 모습을 그린 우리나라 최초의 심리소설로 평가받는다. 작품은 모더니즘 소설 기법인 ‘의식의 흐름’에 따라 써 내려간 게 특징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서술하는 기법으로 화자의 심리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서술하는데, 논리와 일관성이 결여되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상의 작품 중에서도 <날개>를 근대 모더니즘의 대표작이자 문제작으로 꼽는 이유다.

식민지 시대의 어두운 현실에 순응하며 살던 주인공의 모습은 이상의 현실과 닮았고, 몸에서 돋은 날개와 함께 “한번만 날아보자 꾸나”라는 독백은 일제에 대한 저항, 완전한 자유를 향한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는 곧 이상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천재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그이지만, 이상은 생전 책을 내지도, 작가로서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맹렬한 비난 속에 괴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젊은 작가는 스물일곱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불과 7년 동안 시와 소설, 수필 등 작품 100여편을 남긴 이상.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삶은 짧지만 강렬했다.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라는 말처럼, 온통 수수께끼 같은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한 관심은 계속될 것이다.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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