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교감하는 건축, 안도 다다오

2025.04.29

읽는시간 4

0

'안도 다다오'의 사진이다.

안도 다다오는 건축을 독학했다. 건축을 전공한 친구가 빌려준 책이나, 헌책방에서 서서 본 책이 그의 스승이었다. 그중 『르코르뷔지에의 설계 도면』은 안도의 인생 방향을 결정한 중요한 책이다.

 

헌책방에서 이 책과 처음 마주할 당시, 그는 수중에 돈이 부족해 선뜻 구매하지 못했다. 그래서 책을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틈틈이 방문해 조금씩 읽다가, 한 달간 돈을 모은 뒤 마침내 손에 넣었다.

이후 안도 다다오의 인생은 온통 건축에 초점이 맞춰졌다. 생업을 유지하면서도 몇 시간씩 책을 파고들었고, 일하며 번 돈은 모두 건축 여행에 쏟아부었다. 그는 일본 전역뿐 아니라 베트남 후에, 태국 방콕,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스 파리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자기만의 건축 철학을 쌓았다. 그사이 1급 건축사 자격증도 취득해 어엿한 건축 전문가로서 지식과 역량을 갖췄다.

독학한 지 8년 만인 1969년, 안도 다다오는 첫 사무실을 차렸다. 당시 건축계에서는 수요가 풍부한 도쿄에 사무실을 차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안도는 자신의 고향인 오사카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수습 기간도 거치지 않고 이렇다 할 경력도 없는 신예에게 건축을 의뢰할 사람은 없었다. 생계를 유지하려면 직접 발 벗고 나서야 했다. 그는 건축주나 토지 소유주를 직접 찾아다니며, 누구도 의뢰하지 않은 설계를 자발적으로 제안했다. 그렇게 오사카를 중심으로 안도 다다오의 건축 철학이 잔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안도 다다오, 전설의 시작

일본 히로시마 소재 '시모세 아트 뮤지엄' 외관 사진이다.

일본 히로시마 소재 시모세 아트 뮤지엄

안도 다다오가 일본 건축계에 두각을 나타낸 계기는 유서 깊은 상인 일본 건축학회상을 1976년 수상한 것이다. 수상작 ‘스미요시 연립주택’은 너비 3.6m, 길이 14.4m, 높이 5m의 직육면체 건물이다. 정면에서 보면, 창문이 전혀 없는 회색 콘크리트 벽면에 현관문으로만 구성되어 답답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내부는 전혀 다르다. 실내도 어두컴컴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햇빛과 달빛이 쏟아지고 비바람까지 자유롭게 통한다. 하늘이 개방된 중정 덕분이다. 실내와 실외가 분명히 구분되는 기존 건축에서 과감히 벗어난, 그야말로 자연을 품은 작품이다.

일본에서 입지를 다진 안도 다다오는 이내 세계 무대에서도 조명받기 시작했다. 1982년 프랑스 건축가협회(IFA)의 초청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저명한 건축가와 교류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91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1993년에는 프랑스 퐁피두 센터에서 일본인 건축가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해 세계적 건축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물론 그를 향한 비판도 많았다. 특히 안도 다다오의 상징인 ‘노출 콘크리트’에 대한 비난이 거셌다. 건축의 기본에서 벗어났다는 평가와 일상생활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아마추어적 발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안도 다다오는 당당히 말했다. “집 안에서 영위되는 생활을 무시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일상이 무엇인지, 또 집이란 무엇인지 나름대로 철저히 고민하고 계산해 만든 건축물이다.”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이야말로 주거의 본질’이라는 신념, 그리고 이를 건축주가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안도 다다오는 ‘스미요시 연립주택’을 설계, 완성했다. 그가 한평생 남긴 건축 작품에는 이런 철학이 한결같이 녹아 있다. 노출 콘크리트, 자연과의 교감, 안도가 단순한 공간에 깊이와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건축 안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경험

물을 이용해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한 '물의 교회'이다.

물을 이용해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한 물의 사원이다.

물을 이용해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한 물의 교회(왼쪽)와 물의 사원(오른쪽).

안도 다다오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자연과의 긴밀한 결합’이다. 그의 건축물에서는 빛, 물, 바람, 나무, 하늘 등 자연 요소가 건축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얕고 잔잔한 물은 안도가 주로 사용한 핵심 소재다. 물은 고요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예술적 매개체이자, 주변 환경을 거울처럼 반영해 공간을 확장시키는 도구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물의 사원’과 ‘물의 교회’가 대표작이다. 또 건축물의 구조를 통해 빛을 설계하는 점도 안도 다다오 작품의 특징이다. 밝음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를 이용해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노출 콘크리트와 석재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를 채광으로 따듯하게 감싼다.

안도 다다오는 “건축이란 터를 읽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이 대지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다. 그는 설계하기 전 풍속과 일조량과 강수량, 터의 형태와 성질, 각도 등을 면밀히 검토한다.

 

이런 모습을 두고 건축 비평가 케네스 F. 프렘턴은 “일본에서 지역성을 가장 의식하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경사진 언덕이든 드넓은 평지든, 주변 환경을 최대한 활용한 작품은 어느 공간에서든 자연 속에서 숨 쉬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가 건축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건축이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용히 있는 것이 좋다. 그리고 바람과 빛으로 가장한 자연이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

안도 다다오의 발자취 따라 국내 여행

안도 다다오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서울, 원주, 제주도 등지에 작품이 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운영된다. 건축물은 자연과 교감하며 명상을 유도하거나, 자연 요소를 활용해 예술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강원도 원주 _ 뮤지엄 산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 내부이다.

산과 계곡, 숲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건축물을 배치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기러기가 하늘을 나는 듯한 모습과 유사한 구조다.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 물의 정원이 어우러져 자연과 예술, 건축이 하나로 융합된다. 내부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며, 계절과 시간에 따라 공간의 모습이 달라진다.

 

안도 다다오는 뮤지엄 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곳 지형이) 아주 보기 드문 땅이었기에, ‘주위와 동떨어진 별천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부지 전체를 하나의 뮤지엄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른과 아이 모두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면 자연과 예술에 대한 감성이 풍부해져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되찾을 것 같은 곳 말이다.”

서울 _ LG아트센터 서울

서울의 'LG아트센터' 내부이다.

‘스텝 아트리움’, ‘튜브’, ‘게이트 아크’라는 세 가지 콘셉트로 설계된 복합문화공간이다. 지하철역과 연결된 긴 계단형 스텝 아트리움은 지하와 지상을 잇는 통로이고, 곡선 벽이 독특한 튜브는 지상에서 각 공간을 대각선으로 관통하며, 공연장과 LG디스커버리랩, 서울식물원을 연결한다. 웅장한 로비인 게이트 아크는 곡선과 직선, 빛과 그림자가 조화롭게 연출되어 있다.

서울 _ JCC아트센터

서울의 'JCC아트센터' 외관 사진이다.

서울 중심지, 혜화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건축주는 ‘예술적 열정을 끌어낼 수 있는’, ‘창의적 생각을 실험할 수 있는’, ‘교육적 사고를 길러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했고, 안도 다다오는 ‘길에서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고 부딪치며 대화한다’는 테마를 부여해 야트막한 언덕길 위에 자신만의 ‘골목’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바깥길을 걷다가 자연스럽게 건물을 타고 오르며 건축 작품에 스며들 수도 있고, 건물 안에서 걷다가 자연스럽게 외부로 나가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흘러 순환하는 물길’이 형성된 것이다.

제주도 _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과 글라스하우스

제주도의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과 글라스하우스' 외관 사진이다.

제주 휘닉스파크 내에 자리한 두 건축물은 안도 다다오 특유의 건축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자연 풍경을 건축의 일부로 끌어들인 것. 바람과 빛, 파도 소리가 공간을 채우며, 미술관 곳곳의 창과 테라스는 자연을 감상하는 액자 역할을 한다.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에서는 19세기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공예디자인 운동인 아르누보의 유리공예 작품을 전시한다. 해변과 맞닿은 글라스하우스는 레스토랑과 카페로 운영 중이다.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와 KB Think 글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