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맛보다, 마르딘

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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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국기가 나부끼는 '마르딘' 성 아래, 베이지색 석조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튀르키예 국기가 나부끼는 마르딘 성 아래, 베이지색 석조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단단한 돌과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올드 마르딘'의 건축물이다.

단단한 돌과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올드 마르딘의 건축물.

문명이 탄생하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류의 시간이 응축된다. 우리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마저도, 그것이 탄생하기까지 시계를 얼마나 거꾸로 돌려야 할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소요된다. 튀르키예는 수천 년 문명의 발자국으로 가득한 나라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지만 어림잡아 21곳에 달한다.

그중 하나가 튀르키예 남동부에 자리한 마르딘(Mardin)이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평원을 품은 고대도시로,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자부심 넘치는 매력이 낯선 이방인의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굳건한 요새 도시

이스탄불에서 국내선으로 2시간 걸리는 마르딘은 아주 오래 된 거주 지역 중 하나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사람과 물자가 들고났다. 아나톨리아 고원과 메소포타미아 평원을 연결하는 요충지이기에 아랍과 페르시아 대상이 이곳을 지나 이스탄불로 향했다. 불과 20km만 더 가면 시리아 국경과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 아랍 문화와도 친숙하다.

오스만튀르크족, 쿠르드족, 아시리아인, 아르메니아인 등이 뒤섞여 산 지 오래다. 자연스레 종교의 산실로, 마르딘 구시가지는 역사적 모스크, 수도원, 교회 건물로 가득하다. 참고로 마르딘 인구의 절반은 시리아 정교회를 믿는 기독교인으로, 튀르키예에서 교회가 가 장 많고 역사 또한 깊다.

마르딘의 볼거리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구시가지, 올드 마르딘에 집중된다. 해발 1,000m의 가파른 돌산은 ‘압바라’라고 하는 베이지색 석조 건축물이 빽빽하게 밀집해 있다. 보기만 해도 황금빛 흙 내음이 밀려오는 듯하다. 외부 침략자를 방어하려고 고안한 좁은 골목과 가파른 계단은 성채처럼 높고 튼튼하다.

요새처럼 쌓아올린 담장 사이로 겨우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붙이고 지날 만큼 좁은 골목이 구불구불 이어 진다. 이 건물이 저 건물 같고, 이 골목이 아까 지나온 골목인 듯 하나같이 비슷하고 헷갈린다. 애써 목적지를 정해두고 걸어봐야 길을 잃을 게 뻔하니, 차라리 어슬렁어슬렁 골목 탐색에 나서는 편이 현명해 보인다.

헤매듯 골목을 누비다 보면, 친근한 동물 하나가 눈에 띈다. 당나귀다. 등에 한가득 짐을 싣고 가파른 골목길을 묵묵히 오르는 당나귀는 마르딘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청소차 대신 쓰레기를 옮기고, 택배차 대신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른다. 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하다 보면 어느새 마르딘의 경이로운 풍경과 맞닥뜨린다.

진지리예 메드레세에서 바라보는 '메소포타미아 평원'은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대자연의 위용을 보여준다.

진지리예 메드레세에서 바라보는 메소포타미아 평원은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대자연의 위용을 보여준다.

마르딘 어디서나 눈에 담기는 이정표인 '마르딘' 울루자미의 '미너렛'이다.

마르딘 어디서나 눈에 담기는 이정표인 마르딘 울루자미의 미너렛이다.

문명의 땅위에 서다

낯선 여행지에서 랜드마크는 도시의 이정표와 다름없다. ‘길을 잃어도 괜찮다’ 말하는 듯한 랜드마크는 존재만으로도 여행자를 안심시킨다. 마르딘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는 마르딘 울루자미(Mardin Ulu Camii)가 있다.

영어로는 ‘그레이트 모스크 오브 마르딘(The Great Mosque of Mardin)’이라는, 마르딘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이자 가장 높은 미너렛(첨탑)이 있는 곳이다. 마르딘 골목 어딘 가를 헤매고 있다면, 조금 탁 트인 곳에 올라서 울루자미의 미너렛을 찾으면 된다.

첨탑에는 셀주크 제국, 아르투키드 왕조, 오스만제국의 통치자들이 남긴 아름다운 비문이 새겨져 있다. 원래는 첨탑이 두 개였지만, 하나가 무너져 내리면서 외로이 마르딘을 수호한다.

울루자미가 이정표 역할에 충실하다면, 도심 최고의 전망을 바라볼 수 있는 뷰 포인트로 14세기 마르딘을 통치한 술탄 이사가 세운 마드라사, 진지리예 메드레세(Zinciriye Medresesi)를 꼽을 수 있다. 이곳을 오르지 않고는 결코 마르딘 여행을 논할 수 없을 만큼 역사적 기념물이자 압도적 풍광을 선사하는 명소다.

마르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마르딘성 바로 아래 위치한다. 진지리예 메드레세는 무슬림 신학교를 가리킨다. 이슬람의 원칙과 가치는 물론 과학, 철학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종교 학교다. 14세기에 지은 건축물은 거대한 돔형 모스크와 안뜰 두 개, 그리고 다양한 건물로 채워져 큰 단지를 이룬다.

마르딘 최고의 전망은 이 곳 건물 옥상에 선자에게만 허락된다.가쁜숨을 몰아쉬며 꽤 많은 계단을 올라야 하기에 결코 만만한 여정은 아니다. 많은이들이 일몰을 감상 하려고 찾는 인기 스폿이라, 계단을 오르는 내내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호객꾼이 계속 말을 걸어온다.

찰나의 머뭇거림은 실랑이만 길어지게 할 뿐이니 그저 묵묵히 계단만 보고 올라가는게 낫다. 그렇게 북적이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점차 시야가 트이고, 건물 옥상에 도달하면 절로 탄성이 나오는 경이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올드 마르딘의 풍광 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메소포타미아 평원이 펼쳐져 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봐도 담기는 풍경이라곤 광막한 대지뿐이다. 가슴 벅 찬 대자연 앞에서 문명을 이룬 인류를 향한 존경심이 인다. 그리고 자연이라는 완벽한 피사체를 통해 인간은 다시금 겸손을 새긴다. 노을이 머물다 떠난 자리에 진한 어둠이 내려앉고 도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빛을 꽃 피우며 평온한 하루의 끝으로 흐른다.

예스러운 건축물에서의 멋진 하룻밤을 선사하는 '올드 마르딘'에 위치한 아르투클루 유니버시티시(Artuklu Universitesi) 호텔 전경이다.

예스러운 건축물에서의 멋진 하룻밤을 선사하는 올드 마르딘에 위치한 아르투클루 유니버시티시(Artuklu Universitesi) 호텔 전경이다.

멀리선 밋밋해 보이는 건축물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섬세한 문양으로 가득하다. 사진은 '마르딘 울루자미'의 일부이다.

멀리선 밋밋해 보이는 건축물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섬세한 문양으로 가득하다. 사진은 마르딘 울루자미의 일부이다.

호기심과 익숙함 사이, 마르딘 요리

올드 마르딘 골목을 헤매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면, 마르딘 시장(Mardin Old Bazaar)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다. 여느 튀르키예의 시장처럼 온갖 향신료는 물론 견과류에 다디단 설탕을 입힌 간식, 기념품까지 없는게 없다. 여행기념품으로는 마르딘과 국경을 맞댄 시리아 와인이나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은세공품, 염소젖으로 만든 비누가 인기다.

현지인의 장바구니에는 독특하고 생소한 냄새를 풍기는 향신료와 신선한 로컬 식재료가 담긴다. 마르딘 요리는 튀르키예보다 아랍, 특히 시리아와 이라크맛이 더 진하게 풍긴다. 물론 계피, 생강, 올스파이스, 카다멈 같은 향신료를 듬뿍 사용하나 비교적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식탁의 중심에는 늘 고기 요리가 오르는데, 양고기 다음으로 염소고기와 닭고기를 좋아한다. 독특한 점은 고기와 과일이 함께 나오는 요리가 많다는 것, 그리고 마르딘에서 나는 다양한 종류의 치즈로 풍성한 아침을 즐긴다는 것이다. 마르딘에서 즐기는 조식은 가성비면에서 흠잡을데 없다.

라바슈 치즈, 딜 치즈, 무염스위트 치즈, 염소 치즈 등 다양한 치즈와 천연버터, 올리브, 아이란 같은 신선한 로컬 식재료로 풍성하게 차려낸다. 특히 요구르트 음료 아이란의 맛이 일품이다.

다진 소고기를 불구르(듀럼밀)로 감싸 튀긴 '마르딘' '이스리 쾨프테'이다.

다진 소고기를 불구르(듀럼밀)로 감싸 튀긴 마르딘 이스리 쾨프테이다.

'마르딘'에서 맛보는 다양한 치즈와 로컬 식재료로 차려낸 '정찬'이다.

마르딘에서 맛보는 다양한 치즈와 로컬 식재료로 차려낸 정찬이다.

대평원을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마르딘'의 '옥상 레스토랑'의 모습이다.

대평원을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마르딘의 옥상 레스토랑의 모습이다.

마르딘을 대표하는 로컬 요리로는 양고기 탄두리와 케밥, 스튜, 그리고 미트볼이 있다. 양고기라는 생소한 식재료와 이국적 향신료는 식욕을 돋우는 조합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행자의 입맛에 비교적 잘 맞는 음식도 있어 겁낼 필요는 없다.

갈비에 쌀을 채워 오랜 시간 조리해 만든 스터프 립스(Stuffed Ribs), 양파와 미트볼을 함께 맛보는 양파 케밥(Onion Kebab), 가지 속에 다진 양고기를 넣어 익힌 후 밥과 함께 제공되는 도보(Dobo), 다진 고기와 양파, 칠리로 속을 채운 페이스트리 셈부세크(Sembusek) 등은 현지의 맛에 새롭게 눈뜨게 한다.

깊은 풍미의 시리아 와인과 곁들이면 맛이 배가 되며, 식사 후에는 시나몬과 우유를 끓여 만든 푸딩 하리레(Harire)나 아몬드 바클라바, 아슈라 같은 달콤한 디저트와 쓴맛이 일품인 커피, 므라(Mırra)를 곁들이면 비로소 완벽한 맛이 완성된다. 물론 이 모든 음식은 메소포타미아 평원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환상적인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즐겼을 때 훨씬 극적이다.

고대 도시에서의 한 걸음, 한 걸음은 평소의 걸음과는 의미가 남달랐다. 시간을 거꾸로 내달려 마치 10년, 100년이라는 시간 위를 걷는 느낌이다. 드넓은 메소포타미아 평원에 선 인류는 어떠했을지 상상해본다. 막연한 두려움에 맞서 천천히 전진했을 그들의 발걸음처럼, 이곳을 찾는 여행자 역시 낯선 마르딘의 골목을 뚜벅뚜벅 용기 내 걷는다.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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