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로워질 시간, 프로방스

20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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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기네'(Aiguines)에 위치한 '생피에르 예배당'(Chapelle of Saint-Pierre)에서 바라본 환상적인 뷰. 고성 너머로 파란 생트크루아 호수가 보인다.

에기네(Aiguines)에 위치한 생피에르 예배당(Chapelle of Saint-Pierre)에서 바라본 환상적인 뷰. 고성 너머로 파란 생트크루아 호수가 보인다.

엑상프로방스의 랜드마크, '로통드 분수'. 맞은편에 폴 세잔의 동상이 서 있다.

엑상프로방스의 랜드마크, 로통드 분수. 맞은편에 폴 세잔의 동상이 서 있다

진초록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생기를 불어넣는 '미라보 거리'이다.

진초록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생기를 불어넣는 미라보 거리.

'폴 세잔'이 수없이 화폭에 담을 만큼 사랑했던 '생트빅투아르산'이다.

폴 세잔이 수없이 화폭에 담을 만큼 사랑했던 생트빅투아르산.

살면서 결핍은 피할 수 없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다시 오늘과 똑같은 내일에 지친 이에겐 삶의 즐거움과 환희가 절실하다. 결핍을 충족하는 해결책 중 하나는 여행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 이질적 장소에서 완전해지는 경험은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스한 지중해 햇살을 잔뜩 머금은 프로방스(Provence)는 내면의 결핍을 채우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쪽빛 지중해를 품은 거대한 항구도시 마르세유를 필두로, 프로방스 특유의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엑상프로방스를 거쳐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아를, 여름이면 보랏빛 라벤더 물결이 넘실대는 발랑솔, 14세기 교황청이 있던 아비뇽 등 놀라움의 연속이다.

 

도시 사이사이 촘촘히 박힌 소박한 정취의 시골 마을은 얼마나 또 매력적인지! 눈부신 자연의 축복 속에서 꾸밈없이 빛나는 삶이 펼쳐지는 곳, 프로방스는 그런 곳이다.

분수처럼 퐁퐁 솟아나는 여유, 엑상프로방스

18세기 ‘작은 베르사유’라 불릴 만큼 우아한 건축물로 가득한 '엑상프로방스'이다.

느긋한 삶의 여유가 넘치는 엑상프로방스는 18세기 ‘작은 베르사유’라 불릴 만큼 우아한 건축물로 가득하다.

'프로방스적'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소품으로 가득한 상점이다.

프로방스적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소품으로 가득한 상점. 꾸밈없는 자연스러움, 자연친화적 모습과 예스러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차창 밖으로 은색에 가까운 단단한 회색 돌산이 보인다면,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가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엑상프로방스로 향하는 모든 길은 생트빅투아르(Sainte-Victoire)산을 거친다. 로마인에 의해 도시가 건설될 때부터 산은 도시를 수호했다.

 

후기 인상주의 대표 화가 폴 세잔이 20년 연작을 남길 만큼 생트빅투아르산에 천착한 이유다. 엑상프로방스는 세잔에게 고향 이상의 예술적 영감을 제공했다. 도시의 모든 풍경은 그의 캔버스를 통해 작품으로 남았다. 생트빅투아르 산을 그리기 위해 자주 오른 언덕은 오늘날 ‘화가들의 언덕(Painters Park)’으로 불린다.

 

이곳에 서면 갤러리에 걸린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의 숭고함이 가슴 뭉클하게 전해진다. 명실상부 엑상프로방스는 세잔의 도시다. 여행객은 거리에 ‘C’라고 새겨진 표지판을 따라 걸으며 그의 흔적을 더듬는다.

 

로통드(Rotonde) 분수를 마주 보고 선 그의 동상부터 그의 장례식을 치른 생소뵈르(Saint-Sauveur) 대성당, 생전 작품 활동에 몰두하던 공간이자 실제 사용하던 미술 도구를 전시한 로브(Lauves) 언덕의 아틀리에는 반드시 들러야 한다. 다만, 세잔과 그의 친구 에밀 졸라가 토론을 즐기던 레 되 가르송(Les Deux Garçons) 카페가 화재로 소실된 건 아쉬울 따름이다.

생트빅투아르산과 함께 엑상프로방스 풍경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가 분수다. 교차로나 광장마다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 분수가 자리한다. 고대 로마의 온천 도시로 명성이 자자한 만큼 엑상프로방스는 물이 풍부하다.

 

도심에는 분수 70여 개가 여전히 옛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샤를 드골 광장 교차로에 자리한 로통드 분수. 1860년에 만든 것으로 여신 3명과 인어, 백조, 사자 조각상이 어우러진 조형미가 뛰어난 분수다.

 

특히 세 여신은 각기 다른 도시를 바라보는데, 엑상프로방스는 정의, 마르세유는 농업, 아비뇽은 예술을 상징한다. 로통드 분수 앞으로 생기 가득한 보행자 전용 미라보 거리가 이어진다. 널따란 이파리가 따가운 햇살을 반사하듯 나풀대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너머로 우아한 건축물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도시를 압도하는 색감은 따뜻한 노란색이다. 채도를 한껏 끌어올린 옐로 건축물은 봄날의 꽃처럼 화사하다. 너무 발랄하지도, 그렇다고 엄숙하지도 않은 적당한 활기가 도시를 따스하게 감싼다.

17~18세기 귀족 가문의 주거지였던 미라보 광장(Cours Mirabeau) 주변은 볼거리가 다양해 두 눈이 즐겁다. 광장 중심에는 관 9개에서 온천수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분수가 눈에 띄는데, 늘 이끼로 뒤덮여 있어 일명 ‘이끼분수’라고도 한다.

 

광장을 중심으로 골목의 풍경은 미묘하게 다르다. 프로방스의 자연이 키운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파는 재래시장 방면으로는 17세기 이전 조성된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옛 저택을 레스토랑과 전시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코몽 아트센터(Hôtel de Caumont) 방면으로는 화려한 로코코 양식의 건축물이 반듯한 골목을 따라 이어진다. 물줄기가 퐁퐁 샘솟는 분수처럼, 엑상프로방스 골목에는 생의 즐거움과 여유가 충만하다.

한 편의 청춘 영화, 베르동 협곡

천년의 시간이 빚어낸 경이롭고 웅장한 '베르동 협곡'이다.

천년의 시간이 빚어낸 경이롭고 웅장한 베르동 협곡.

프로방스 시골 마을의 전형적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무스티에르 생트마리'이다.

프로방스 시골 마을의 전형적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무스티에르 생트마리.

보트, 페달보트, 카약을 탄 이들이 '베르동 협곡' 사이를 누비며 청량한 계절이 선사하는 여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보트, 페달보트, 카약을 탄 이들이 베르동 협곡 사이를 누비며 청량한 계절이 선사하는 여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천년의 시간 동안 대지를 타고 흐르던 강물은 거대한 협곡을 빚었다. 유럽에서 가장 큰 협곡인 베르동(Verdon) 협곡은 길이가 장장 25km에 달한다. ‘프랑스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도 한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깎아지른 듯한 석회암 절벽을 내려다보면 산세의 기세가 아찔하고도 경이롭다. 협곡의 가장 높은 전망대로 향하는 D23 도로가 드라이브 핵심 코스다.

베르동 협곡은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여름 휴양지기도 하다. 평소엔 쩍쩍 메마른 협곡에 캔디바 아이스크림을 녹인 것처럼 푸른 물줄기가 흘러넘친다. 부지런히 두 발을 놀려 물살을 천천히 가르는 페달 보트나 카누를 타고 협곡 사이사이를 누비며 청량한 계절을 마음껏 누리기 좋다. 한갓진 여유를 중시하는 프랑스인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남프랑스의 해변보다 아무런 방해 없이 쉴 수 있는 베르동 협곡을 더 애정한다.

협곡이 순수 자연의 결과물이라면, 호수는 사람의 손을 빌려 탄생했다. 협곡의 물줄기가 모이는 생트크루아 호수(Lac de Sainte Croix)는 식수원으로 활용될 만큼 투명한 물빛을 자랑한다. 지글지글 작열하는 태양 아래 파란 물속을 유영하는 이들을 보노라면 청춘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서투르고 미숙하지만, 생애 가장 풋풋한 시절의 낭만은 눈부신 호수와 참으로 닮았다. 갈르타 다리(Pont du Galetas)는 에메랄드빛으로 일렁이는 호수와 웅장한 협곡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기 좋은 놓칠 수 없는 포토 스폿이다.

생트크루아 호수에서 차로 10분을 달리면 해발 635m 고지대에 자리한 작은 마을 무스티에르 생트마리(Moustiers Sainte Marie)에 닿는다. 과거 수도원을 세우며 형성된 마을로, 거친 바위산 자락에 폭 안긴 듯한 마을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마을의 볼거리는 아찔한 절벽 위에 세운 예배당과 두 절벽 사이를 연결하는 별 조형물 정도다. 인내심을 갖고 계단 262개를 쉬지 않고 오르면 예배당 너머 생트크루아 호수까지 선물 같은 절경이 펼쳐진다. 이후 시선을 하늘로 돌리면 작고 노란 별 조형물 하나가 눈에 띈다.

 

누가 왜 높은 허공에 처음 별을 매달았는지는 모른다. 하나 확실한 건, 볼품없어 보이는 작은 별 하나가 수 세기 동안 마을을 수호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와 안식을 선사했다는 사실이다.

가장 프로방스다운 풍경, 뤼베롱

절벽에 세운 중세도시 '고르드'의 모습이다.

절벽에 세운 중세도시 고르드는 마을 자체도 멋스럽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절벽 아래 고즈넉한 농촌 풍경이 마음에 더 와닿는다.

'농가'를 개조한 숙소이다.

프로방스에서는 농가를 개조한 숙소에 머물며 한가로운 휴식의 기쁨을 누려봐야 한다.

건물 외벽에 황토를 덧칠해 때론 레드와인처럼, 때론 노을처럼 붉게 빛나는 '루시용'이다.

건물 외벽에 황토를 덧칠해 때론 레드와인처럼, 때론 노을처럼 붉게 빛나는 루시용.

봄부터 여름까지, 프로방스는 천 가지의 색으로 넘실댄다. 새하얀 아몬드꽃을 시작으로, 4월에는 연분홍 벚꽃이 흩날리고, 5월은 붉은 양귀비꽃이 들판을 채우며, 6월과 7월은 보랏빛 라벤더 물결이 천지를 뒤덮는다.

 

마치 자연이 직조한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보는 듯하다. 자연에 순응하며 가장 이상적인 프로방스 라이프를 제안하는 뤼베롱(Luberon) 지역은 내륙에 자리한다. 사방으로 산과 들판이 펼쳐진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자연공원으로, 저마다 특색을 지닌 환상적인 풍광의 마을이 선물 보따리처럼 가득하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레드카펫을 깔아놓은 듯 불그스름한 물결로 일렁이는 루시용(Roussillon)은 거대한 황토 지대를 품는다. 프로방스의 마을 대부분이 석회암으로 지어 베이지색 일색인 데 반해 루시용은 건물 외벽에 황토를 덧칠해 마을 전체가 붉은 노을을 연상시킨다.

 

천연 안료의 재료로서 황토를 채취하던 광산을 직접 걸을 수 있는 황토 트레일은 인상적인 체험거리다. 촛대처럼 솟아오른 지층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로 경이롭고, 손가락 사이로 안개처럼 빠져나갈 만큼 황토 입자는 부드럽다. 12세기 중세 도시의 흔적을 품은 고르드(Gordes)는 절벽에 세워진 마을 풍광이 압도적이다.

 

덕분에 마을을 둘러보려면 좁다란 오르막길을 부지런히 오르내려야 한다. 마을의 자랑인 고르드 성당 앞 광장에 있는 생크림 마카롱을 판매하는 제과점이 유명하다. 이 밖에 메네르베(Ménerbes)는 진귀한 블랙 트러플과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와인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와인&트러플 박물관이, 루르마랭(Lourmarin)에는 각양각색의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숍과 갤러리가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연친화적 프로방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려면 농가를 개조한 숙소에 머물러야 한다. 솜씨 좋고 마음씨 좋은 주인장이 슬쩍 내어준 오목한 안락함을 선사하는 집 밖으로 그림 같은 풍경이 내걸린다.

 

올리브나무 잎을 스치는 바람과 느릿느릿 흘러가는 구름, 꽃물처럼 번지는 노을과 흑단 같은 밤하늘에 박힌 별을 헤아리다 보면 비로소 알게 된다. 프로방스를 여행한다는 건 삶의 즐거움을 찾는 과정과 많이 닮았음을.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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