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밖으로 은색에 가까운 단단한 회색 돌산이 보인다면,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가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엑상프로방스로 향하는 모든 길은 생트빅투아르(Sainte-Victoire)산을 거친다. 로마인에 의해 도시가 건설될 때부터 산은 도시를 수호했다.
후기 인상주의 대표 화가 폴 세잔이 20년 연작을 남길 만큼 생트빅투아르산에 천착한 이유다. 엑상프로방스는 세잔에게 고향 이상의 예술적 영감을 제공했다. 도시의 모든 풍경은 그의 캔버스를 통해 작품으로 남았다. 생트빅투아르 산을 그리기 위해 자주 오른 언덕은 오늘날 ‘화가들의 언덕(Painters Park)’으로 불린다.
이곳에 서면 갤러리에 걸린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의 숭고함이 가슴 뭉클하게 전해진다. 명실상부 엑상프로방스는 세잔의 도시다. 여행객은 거리에 ‘C’라고 새겨진 표지판을 따라 걸으며 그의 흔적을 더듬는다.
로통드(Rotonde) 분수를 마주 보고 선 그의 동상부터 그의 장례식을 치른 생소뵈르(Saint-Sauveur) 대성당, 생전 작품 활동에 몰두하던 공간이자 실제 사용하던 미술 도구를 전시한 로브(Lauves) 언덕의 아틀리에는 반드시 들러야 한다. 다만, 세잔과 그의 친구 에밀 졸라가 토론을 즐기던 레 되 가르송(Les Deux Garçons) 카페가 화재로 소실된 건 아쉬울 따름이다.
생트빅투아르산과 함께 엑상프로방스 풍경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가 분수다. 교차로나 광장마다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 분수가 자리한다. 고대 로마의 온천 도시로 명성이 자자한 만큼 엑상프로방스는 물이 풍부하다.
도심에는 분수 70여 개가 여전히 옛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샤를 드골 광장 교차로에 자리한 로통드 분수. 1860년에 만든 것으로 여신 3명과 인어, 백조, 사자 조각상이 어우러진 조형미가 뛰어난 분수다.
특히 세 여신은 각기 다른 도시를 바라보는데, 엑상프로방스는 정의, 마르세유는 농업, 아비뇽은 예술을 상징한다. 로통드 분수 앞으로 생기 가득한 보행자 전용 미라보 거리가 이어진다. 널따란 이파리가 따가운 햇살을 반사하듯 나풀대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너머로 우아한 건축물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도시를 압도하는 색감은 따뜻한 노란색이다. 채도를 한껏 끌어올린 옐로 건축물은 봄날의 꽃처럼 화사하다. 너무 발랄하지도, 그렇다고 엄숙하지도 않은 적당한 활기가 도시를 따스하게 감싼다.
17~18세기 귀족 가문의 주거지였던 미라보 광장(Cours Mirabeau) 주변은 볼거리가 다양해 두 눈이 즐겁다. 광장 중심에는 관 9개에서 온천수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분수가 눈에 띄는데, 늘 이끼로 뒤덮여 있어 일명 ‘이끼분수’라고도 한다.
광장을 중심으로 골목의 풍경은 미묘하게 다르다. 프로방스의 자연이 키운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파는 재래시장 방면으로는 17세기 이전 조성된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옛 저택을 레스토랑과 전시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코몽 아트센터(Hôtel de Caumont) 방면으로는 화려한 로코코 양식의 건축물이 반듯한 골목을 따라 이어진다. 물줄기가 퐁퐁 샘솟는 분수처럼, 엑상프로방스 골목에는 생의 즐거움과 여유가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