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심 회복, 벤치마크 역량 두각…만기물·조달처 다각화
(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한국수출입은행이 20억 달러(약 2조6천570억 원)·5억 유로(약 7천140억 원) 규모의 글로벌본드(SEC registered) 발행에 성공했다.
이번 조달로 한국수출입은행은 공모 달러·유로화 조달의 물꼬를 틔웠다. 한국물(Korean Paper) 시장은 여름 휴가철과 135일룰 등으로 한동안 발행이 중단됐다. 한국수출입은행이 가볍게 스타트를 끊으면서 KP 후발주자들의 부담은 한풀 꺾일 것으로 보인다.
◇수출입은행, 달러·유로화 포문…글로벌 투심 입증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국수출입은행은 전일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에서 진행한 북빌딩(수요예측)을 통해 20억 달러와 5억 유로어치 채권 발행을 확정했다.
달러화 채권의 트랜치(tranche)는 2년과 5년, 10년물로 각각 5억 달러, 10억 달러, 5억 달러 규모다.
가산금리(스프레드)는 2년과 5년, 10년물 각각 동일 만기의 미국 국채금리 대비 45bp, 75bp, 95bp 높은 수준이다. 최초제시금리(IPG, 이니셜 가이던스)가 2년 75bp, 5년 105bp, 10년물 120bp였다는 점에서 최대 30bp가량의 금리 절감 효과를 보였다.
KP 시장에 공모 달러채가 등장한 건 한 달여 만이다. 지난 7월 말 GS칼텍스 북빌딩을 끝으로 한국물 시장은 휴지기를 가졌다. 최근 대한민국 정부의 엔화 외국환평형기금채권과 한국수자원공사의 스위스프랑 채권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이종통화였다는 시장 분위기를 온전히 파악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조달이 중단된 한 달여 사이 글로벌 채권시장은 출렁였다.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내몰리면서 아시아물은 물론 한국물에 대한 투자 심리를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여름 휴가철인 탓에 유통물 금리 변화가 크지 않았던 데다 발행물도 없어 분위기를 가늠하기가 더욱 쉽지 않았다.
미국이 고금리 기조를 장기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점도 부담을 높였다. 최근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등 인플레이션 압력이 이어지면서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좀 더 길어질 것이란 관측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수출입은행이 조달 물꼬를 틔우면서 한국물에 대한 굳건한 투자 심리가 확인된 모습이다. 최근 중국물 발행이 더욱 줄면서 도리어 한국물이 반사효과를 얻게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물이 중국 부동산에 대한 익스포저가 크지 않은 점도 이를 뒷받침했다.
KP 유로화 채권은 지난 5월 북빌딩 이후 4개월여 만에 등장했다. 당시에도 한국수출입은행이 달러·유로화 채권 북빌딩을 동시에 진행해 조달을 마쳤다.
유로화 채권의 트랜치는 4년물이다. 당초 IPG를 '유로화 미드 스와프(EUR MS)+low 40bp'로 제시해 40bp 초반대에서 자유롭게 주문을 넣을 수 있게 했다. 이후 투자 수요 등을 반영해 스프레드를 40bp로 확정했다.
◇다양한 만기물로 벤치마크 역량 부각
한국수출입은행의 벤치마크 역량은 트랜치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최대한 다양한 기관을 포섭할 수 있도록 달러채를 2년과 5년, 10년물로 설정했다. 2년물로는 정부·국제기구·기관(SSA)과 같은 초우량 투자자를, 5년물은 은행과 자산운용사, 10년물은 연기금 등의 기관을 겨냥한 것이다.
올해 2년물 KP를 찍은 곳은 현대캐피탈아메리카 정도가 유일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최근 호주계 은행을 비롯해 싱가포르개발은행(DBS) 등이 2년물 조달에서 흥행에 성공한 점을 포착해 발행에 나섰다.
한국수출입은행 등 은행권의 경우 발행물을 변동금리로 스와프한다는 점에서 이점 또한 누릴 수 있었다. 변동금리로 스와프할 경우 SOFR(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에 더하는 스프레드가 비교적 낮아진다는 설명이다. 2년물의 경우 최근 미국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 등으로 절대금리 측면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유럽 시장에서는 이번 달러채 트랜치 구성 및 앞서 찍은 유로화 채권 만기 등을 고려해 4년물 조달에 나섰다. 최근 유럽 발행 시장이 활기를 띤 것은 물론, 지난주 일본 정책투자은행(DBJ) 등의 발행을 참고해 만기를 설정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시장 관찰력과 벤치마크 발행사로서의 책임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앞서 채권을 찍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우량 발행사와 유사한 만기 구조를 설정해 자연스레 이보다 낮은 스프레드를 달성하는 방식으로 금리 절감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다시 한국물 금리 기준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시장 전반의 스프레드 부담을 낮추는 효과로 이어진다.
한국수출입은행의 국제 신용등급은 AA급 수준이다. 무디스와 S&P, 피치는 각각 'Aa2', 'AA', 'AA-'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이번 딜은 BoA메릴린치와 도이치뱅크, 미즈호증권, 노무라증권, 소시에테제네랄, 스탠다드차타드가 주관했다. KDB산업은행이 보조 주관사 격인 조인트 리드 매니저(joint lead manager)로 참여했다.
phl@yna.co.kr
피혜림
phl@yna.co.kr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