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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조달 통로 열어준 금융당국…은행, 유동성 숨통 트이나

23.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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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채·LCR 규제 유연화로 불안↓…조달 측면 여유 생겨

대출 확대·수신금리 경쟁 자제해야 조치 효과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이수용 기자 =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의 은행채 발행 한도 제한을 사실상 없애고,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를 완화하기로 하면서 불안정한 양상을 보이던 단기자금시장이 안정세로 돌아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분기말 은행채 발행 한도에 막힌 은행들이 양도성예금증서(CD)를 대규모로 발행한 것이 최근 채권 금리 상승의 핵심적 이유라고 금융당국은 판단했다.

막힌 구멍을 일단 열어줌으로써 전체적인 유속을 조절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한 것으로, 은행채 발행이 늘어나더라도 단기 채권의 발행은 그만큼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쏠림에 따른 부작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들은 이번 금융당국의 조치로 어느정도 유동성 부담을 덜었다는 분위기다.

당국의 여·수신 유치 경쟁 자제 요청에 따라 은행들이 자체 물량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여 지난해와 같은 크레디트 시장 경색은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조달 부담 덜었다"…선제 조달 자제할 듯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오는 4분기부터 분기 만기 물량의 125%까지로 제한하고 있는 은행채 발행 한도를 유연하게 풀어주기로 했다.

채권시장에 크게 부담을 주지 않는 한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은 LCR 규제도 당분간 현 상태(95%)를 유지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시기 85%까지 낮췄던 LCR 비율을 단계적으로 정상화하면서 내년 1월부터 97.5%로 올릴 계획이었으나 당분간 유보하기로 한 것이다.

최근 단기자금시장 불안이 지속되자 수급 안정화가 우선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최근 채권 금리 상승은 신용리스크가 아닌, 단순 수급 불균형이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급격한 금리 인상과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보증 철회, 흥국생명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 철회,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 등이 한꺼번에 겹치며 신용경색으로 확산했지만 이번에는 조달 측면의 '미스매치'로 인한 수급 문제라고 본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단기자금시장 불안은 은행들이 고금리 예적금 만기 도래에 대비하고 내년 1월 LCR비율 상향에 맞춰 선제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일시적으로 수급이 맞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작년 신용경색 때와는 상황이 다르며, 은행채 발행 제한이 풀린다고 해도 금리가 급등하는 등의 일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이번 조치로 어느 정도 조달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한 시중은행 자금담당 임원은 "9월 들어 자금조달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이번 조치로 필요할 때 은행채를 발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 선제적으로 조달 경쟁을 펼칠 이유도 사라졌다"면서 "여유있게 수급 조절을 해갈 수 있다는 분위기가 시장에 형성되면 금리도 안정화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은행 예금 만기 도래나 분기 유동성 규제를 맞추려다 보니 일시적으로 발행이 늘어난 측면이 있는데, 작년 자금시장 경색 때와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면서 "당국에서도 필요시 추가 조치 등을 검토해주기로 한 만큼 불안 요인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시 돌아온 자금 쏠림 우려…당국 "대출 확대 자제하라"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외형 경쟁 등 대출 확대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작년 채권시장 경색 당시 고금리로 조달한 1년 예금 만기가 도래하는 상황에서 은행권이 취급하는 대출이 많아질수록 예금 재예치에 더해 자금 조달 경쟁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채 발행 한도를 풀고 LCR 정상화를 유예해주는 등 자금 조달 창구를 늘려주는 대신 은행들도 조달 경쟁을 완화해 자금시장 안정에 협조해 달라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기업대출 증가가 은행권의 조달 경쟁을 부추겼다고 보고있다.

은행들은 한 해 취급할 수 있는 대출 규모를 두고 가계와 기업에 나눠 대출 포트폴리오 계획을 세운다.

다만, 최근 당국이 가계대출 증가를 억제하면서 은행들은 남는 가계대출 포트폴리오 비중을 기업 대출로 채우는 상황이다.

통상 은행권에서는 가계대출이 기업대출보다 위험가중치가 낮지만, 기업대출 중에서도 우량한 대기업대출을 중점적으로 할 경우 가계대출보다 위험가중치를 낮게 가져가면서 많은 대출을 취급할 수 있다.

기업들 또한 회사채 조달 환경이 악화하면서 은행의 기업 대출 문을 두드리고 있다.

5대 은행이 취급한 원화대출 규모는 8월 말 기준 1천447조6천538억원으로 작년 말 대비 30조2천785억원 늘었다.

가계 대출은 작년 말 대비 11조7천215억원 감소했으나, 대기업대출과 중소기업대출은 각각 23조9천436억원, 19조8천712억원 증가했다.

최근 우리은행은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목표로 기업 대출 비중이 높아지도록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겠다며 영업 드라이브를 예고하기도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금융 상황 점검 회의를 주재하면서 "금융사의 외형 확대 및 과잉 대출을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추석 및 분기 말을 앞두고 자금 수요가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금융사의 불요불급한 자금조달 여부를 면밀히 모니터링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다른 은행 자금시장 담당자는 "대출이 늘면 당연히 조달도 늘려야 하는 만큼 조달 금리가 오르게 된다"며 "이 경우 은행 외 다른 금융사도 힘들어지니 외형 경쟁을 자제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hjlee@yna.co.kr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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