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은행 '이자 장사' 부정적 인식에 요목조목 따져
"급여·성과급 적절 수준…당국 정책이 오히려 리스크 훼손"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이수용 기자 =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금융당국의 정책을 비판한 KB금융지주 보고서에 대해 "그냥 무시하고 있다"고 일축하면서 보고서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금융권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정감사 과정에서 국회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이긴 했어도 정부의 금융정책을 작심하고 비판한 보고서에 대해 금융당국 수장이 사실상 불쾌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금융지주가 금융당국의 정책에 대해 반기를 드는 듯한 입장을 내놓은 것도 이례적이어서 보고서가 나오게 된 배경 등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과도한 충당금 압박, 과다 계상 문제…개선안 적절성 의문"
13일 연합인포맥스가 입수한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은행의 이익 처분 방식과 임직원 보수 관련 비판에 대한 소고' 제목의 보고서는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이 은행의 공공적 역할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은행이 본연의 역할을 무시한 채 이익 추구에만 몰두하고 있는지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화두를 꺼냈다.
총 38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는 은행의 이익 처분 방식과 임직원 보수와 관련해 금융당국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보고서는 현재 금융당국은 은행이 이자수익을 미래를 위해 활용하거나 국민에게 환원하기보다는 임직원과 주주를 위한 성과급과 배당으로 지급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이 팽배하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은행은 당국의 인식과 달리 매년 벤처투자를 확대하고 이미 이익의 상당 부분을 미래 부실에 대한 버퍼 마련 등 건전성 유지에 사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올 3월 현재 은행권의 기술 신용대출 잔액이 329조원으로 지난 8년간 연평균 성장률(CAGR)이 42.0%에 달하고, 민간 부문의 벤처펀드 출자 금액 비중이 33.6%로 정책자금 비중(25.3%)보다 높다고도 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의 벤처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벤처투자 한도를 기존 자기자본의 0.5%에서 1%로 확대한 것도 시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봤다.
보고서는 "은행들이 한도 규제로 투자를 못 하는 게 아니라, 벤처펀드 출자는 위험가중치가 높게 부여돼 자기자본비율을 낮추기 때문에 쉽게 출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문제가 더 크다"면서 "벤처펀드 투자 확대는 은행 본업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리스크 관리 능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자본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해서도 과도하게 높은 자본 비율을 유지하도록 하는 요구는 경기 악화 시 은행들이 실물경제에 자금을 지원하는 능력을 약화해 오히려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손실 흡수 능력 제고를 위해 내년 5월까지 경기대응완충자본(CCyB) 적립 수준을 '0→1%'로 상향하기로 했고, 특별대손 준비금 적립 요구권과 스트레스 완충 자본 도입도 내년 중 마무리할 계획이다.
보고서는 "국내 은행들은 높아진 신용위험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손충당금을 적립해온 만큼 벌어들인 수익을 미래 부실 대비에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적절치 않다"면서 "예상 손실이 증가할 것이란 충분한 근거 없이 대손충당금을 추가 적립할 경우 대손비용 과다 계상 문제가 생길 우려도 있다"고 언급했다.
또 "은행들이 자본 비율을 과도하게 높게 유지하도록 하기보다 (금융당국이) 경기 둔화 시점을 적시에 판단하고 자본 비율을 낮춤으로써 은행 신용공급의 과도한 축소를 방지하는 방향이 맞다"고 제언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은행의 이익 처분 방식과 임직원 보수 관련 비판에 대한 소고' 보고서
◇"사기업 급여·배당 '자율적'이지 못해…당국 인식 부적절"
보고서는 금융당국이 올해 초부터 은행의 공공재적 성격을 강조하며 현재와 같은 영업 행태를 '약탈적'이라고 규정했으며, 임직원에게 지급되는 성과급 등의 보수뿐 아니라 주주 대상의 배당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강하게 드러냈다고 적시했다.
금융회사의 주주 친화적 배당 정책은 국내 은행그룹주가 기업가치를 재평가받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략적 투자, 견고한 자기자본의 유지, 그리고 주주 수익의 개선 사이의 균형 잡힌 자본 정책하에서 이루어지는 자율적 경영 의사결정이라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또 "정부나 금융당국은 배당 확대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기도 했고, 심지어 배당 확대 정책 취한 적도 있으나 과거에는 주로 건전성 유지 명분을 내세워 배당 자제를 권고하기도 했다"면서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기업의 자율적 의사결정을 존중하고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올해 들어 다시 금융회사의 손실 흡수력 강화를 내세우며 배당 자제를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며 오락가락 정책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금융당국의 입장은 이익잉여금을 배당하지 않는 대신 대손준비금을 더 쌓으라는 것인데, 이 경우 은행의 배당 여력이 줄어들어 은행주 저평가를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이 높은 개별 회사의 배당을 자제하라고 권고한다면 이는 주주 회사에 대한 과도한 개입으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고 꼬집었다.
은행 직원 급여 및 성과급 수준에 대해서는 무려 15페이지를 할애해 글로벌 주요 국가 및 타 산업과 비교하면서 적정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사기업의 직원 성과급 및 퇴직금은 노사 자율 교섭에 의해 결정되는 사안임에도 (금융당국이) 과점 체제로 인한 불로소득으로 인식, 지급 자체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규모의 적정성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회사 입장에서 높은 수준의 급여 제공과 적극적 성과 공유는 우수한 인력 유치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반박했다.
보고서는 은행권의 경영·영업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문제 제기가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보다 합리적이고 충분한 근거 제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은행이 '약탈적 영업'을 했다면 시장에서의 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강압적인 형태로 예금 또는 대출 거래를 했다는 의미인데, 계약의 성립 과정에서의 그러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은행을 과도한 이자 장사 주체로 보는 것이 틀렸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금융당국도 은행의 공적 역할만을 과도하게 강조하기보다는 은행업에 대한 대중의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고 자율적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장 여건을 조성하는 데 역할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감 도마 오르자 관심 증폭…김주현 "무시"로 대응
이러한 보고서가 공개되고 논란이 되자 KB금융은 보고서를 즉각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불편한 심기가 팽배한 상황이지만, 민간 금융사의 입장에 관여할 수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 일단 관련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주현 위원장이 해당 보고서에 대한 질문에 처음으로 입장 표명을 하면서 다시금 화제가 됐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은행들이 고금리 이자 장사가 문제가 돼 당국이 태스크포스(TF)를 만드니까 KB금융이 반박 보고서를 내놨는데 그냥 놔둘 것이냐"고 질의했다.
김 위원장은 "KB금융 보고서는 그냥 무시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일부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국민들이 공감하지 않을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대응하지 않고 그저 우리가 할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KB금융은 보고서를 작성한 직원이 내부용 문건을 잘못 올린 것이라며 그룹 전체 입장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공교롭게도 회장이 교체되는 시기에 이런 보고서가 올라오다 보니 오해 살만한 여러가지 해석을 낳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2023.10.11 xyz@yna.co.kr
hjlee@yna.co.kr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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