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박경은 기자 = "이제는 때가 됐다. 누구나 의자에 앉을 수 있어야 기업은 늙지 않는다"
대표이사 정년제를 도입하며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쐈던 미래에셋그룹이 본격적인 전문 경영인 시대를 열었다.
창업 공신의 용퇴와 연공 서열을 타파한 발탁 인사가 맞물리며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자연스럽게 길을 내줬다. '늙지 않은 미래에셋'을 만들겠다던 박현주 회장이 '의자론'을 꺼낸 지 단, 2년 만의 일이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그룹은 전일 이정호·스와럽 모한티(Swarup Mohanty)·허선호·김미섭·이준용·김재식 등 6명의 신임 부회장 선임을 골자로 한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이와 함께 오랜 시간 그룹을 이끌었던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을 비롯해 조웅기 부회장, 최경주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 등 창업 멤버들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미래에셋그룹은 내달까지 일부 조직개편을 포함한 나머지 인사를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 고심, 또 고심…창업 멤버 용퇴의 함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계기로 창업한 미래에셋벤처캐피탈이 지금의 미래에셋그룹으로 성장하는 동안 박 회장의 가장 큰 고민은 세대교체였다. 적극적인 세대교체만인 지속 가능한 미래에셋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최우선 신조다.
이에 오랜 시간 박 회장은 회사에 기여한 이들에 대한 대우와 존경은 필요하지만, 리더의 나이 듦이 조직에 영향을 줘선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면서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 앉을 수 있다고 말해왔다.
2년 전 박 회장이 이 '의자론'을 이야기하며 세대교체를 꺼냈을 때, 시장은 반신반의했다. 주인이 명확한 오너 기업, 그리고 창업 기업에서 이른바 '개국 공신'으로 불리는 이들의 존재감은 남다른 탓이다. 특히 미래에셋에서는 더욱 그랬다.
이 때문에 이번 미래에셋의 인사가 주는 의미는 어느 때보다도 크다.
지난여름부터 금융투자업계는 미래에셋의 올해 임원 인사를 주목해왔다. 창업 멤버들이 정말로 물러날 것인지, 그리고 누가 이들의 자리를 물려받을 것인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랜 시간 이어졌다.
실제로 박 회장 역시 이번 인사를 두고 고심이 꽤 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가 발표된 이후에도 박 회장은 주변에 무거운 마음을 전했다는 후문이다.
통상 미래에셋그룹은 퇴임한 사장단에게 고문이라는 직함을 2년간 부여한다. 하지만 다른 금융회사에 비해 고문의 역할은 제한된다. 경험과 노하우는 공유하지만, 현직의 의사결정을 더 존중하기 위해서다. 미래에셋이 후배들에게 진짜로 '길'을 터주는 방식이다.
미래에셋그룹 고위 관계자는 "이미 예견된 인사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차원의 고뇌가 반복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남다른 존재감을 가지고 일했던 분들에 대한 예우"라고 귀띔했다.
쉽지 않았을 법한 이번 임원 인사가 가능했던 것은 개인에 대한 마음보다 그룹 전체를 위한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사 대표는 "CEO 출신 첫 회장을 배출했던 미래에셋이다. 이제는 개국공신이 아닌 회장이 나올 차례"라며 "단언컨대 미래에셋이라 가능한 인사"라고 평가했다.
◇ 국적·출신 안 따진다…'70년대생도' 가능한 미래에셋 의자
그간 미래에셋은 증권과 운용 등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 각각 20~30명 정도의 최고경영자 후보군을 관리해왔다. 주주는 물론 사내 추천, 기관 투자자, 외부 자문기관 등의 추천을 활용해 자격요건을 검증하고 연간 교육을 진행한다. 이는 다른 금융회사와 비교해 두 배 이상 큰 규모다.
올해부터는 '글로벌 AMP' 프로그램을 통해 본격적인 차세대 리더 육성에 나서기도 했다. 김미섭·이준용·스와럽 모한티 신임 부회장을 비롯한 8명이 선발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하버드대학교 등에서 연수를 받았다.
박 회장은 글로벌 AMP 대상자를 그룹 내 부문 대표가 가능한 상무급까지, 이사 직책이 가능한 부장급까지 넓혀 지역도 확대할 계획이다. 조직에 대한 로열티는 현지인과 내국인은 물론 직급과 나이에서도 차이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이번 인사에서도 이러한 박 회장의 생각은 고스란히 반영됐다.
글로벌을 전면에 내세운 인사에서 이정호 신임 부회장은 홍콩법인 최고경영자(CEO)로 미래에셋증권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게 됐다. 스와럽 모한티 신임 부회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 인도법인 대표이사를 겸하며 그룹에서 중점을 두는 인도 사업을 주도할 방침이다.
안인성·구용덕·김남기 신임 부사장들은 그룹에서 내로라하는 '70년대생' 세대교체 주역들이다.
안 부사장은 새 둥지를 튼 지 2년 만에 부사장에 올랐다. NH투자증권에서 리테일 디지털 솔루션 '나무(Naumuh)'를 만든 성과를 인정받아 미래에셋 디지털 부문 대표를 맡은 그는 신규 MTS를 선보이며 미래에셋은 물론 업계에서 다시 한번 디지털솔루션에 더해 브랜딩 능력까지 인정받았다.
구용덕 부사장은 한국투자신탁운용 출신이지만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오랜 시간 주식과 리서치 부문 대표 선수로 손꼽혀왔다. 이번 그의 승진을 두고 후배들 사이에서도 인정하는 분위기가 짙었다.
삼성자산운용 KODEX를 만든 주역이었던 김남기 부사장은 올해도 승진 명단에 올랐다. 미래에셋에 몸담은 지 4년 차, 1977년생인 그는 박 회장이 선택한 세대교체의 대표주자다. 올해 ETF 시장의 패권을 삼성자산운용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 옮겨온 성과를 연이은 파격 승진으로 톡톡히 보상받았다.
그밖에 미래에셋증권의 박홍근 IT 부문 대표와 한현희 글로벌마켓본부장 등도 올해 인사에서 연공 서열을 뛰어넘은 승진의 주인공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난히 많은 사업 부문 대표를 두는 미래에셋을 향해 시장 일각에서는 직급 인플레이션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겠다는 미래에셋만의 인사 시스템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를 인정하고 투명하게 육성하겠다는 얘기다.
미래에셋그룹 고위 관계자는 "나이를 포함해 미래에셋 근무 기간 등은 중요하지 않다"며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미래에셋의 의자는 누구나,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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