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로봇·IoT·데이터 녹아있는 거제사업장
연결화·자동화·지능화…안전한 공간으로 변모
(거제=연합인포맥스) 유수진 기자 = 커다란 화면 앞에 작업복을 입은 한 사람이 서 있다. 머리에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착용하고 한 손에 손전등을, 나머지 한 손엔 스프레이건을 쥔 모습이다.
안내에 따라 이것저것 변수를 설정하더니 화면에 대고 스프레이건을 쏘기 시작했다. 발사된 압축공기가 닿은 화면은 오렌지색, 붉은색, 푸른색 등으로 색깔이 변했다. 실제 스프레이가 분사될 때와 비슷한 소리가 나 생동감을 더했다.
VR 체험장에서 볼 법한 모습이지만 이곳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내에 위치한 'VR 도장 교육센터'다. 수작업으로 선박에 도장을 하는 작업자의 기량 향상을 위한 훈련시설이다.
과거엔 숙련된 선임에게 도제식으로 일일이 배워야 했으나 이젠 VR을 활용해 연습할 수 있다. 한화오션은 국내 조선소 중 유일하게 이 같은 시설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시각·청각적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디테일'에도 신경을 썼다. 실제 도장할 때 쓰는 장비를 똑같이 사용한다. 도료의 색깔과 종류 같은 세부 사항도 선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훈련 결과를 정확히 피드백 받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도막 두께를 색깔로 구분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파란색은 너무 적게, 붉은색은 너무 많이, 오렌지색은 적당한 두께로 도료가 뿌려졌다는 의미다.
시연을 맡은 한화오션 관계자는 "2021년 11월부터 도장 작업자의 실력 향상을 위해 VR 교육센터를 운영해오고 있다"며 "초급 작업자 기준 과거엔 숙련되기까지 최장 1년 정도가 걸렸었는데 지금은 3개월 정도면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오션은 내년 시설을 추가로 확충해 더 많은 작업자가 동시에 연습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도장뿐 아니라 블라스팅(표면 처리) 작업도 VR을 통해 훈련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이 시설들은 7개 언어로 설정할 수 있어 외국인 근로자들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조선소로 들어온 AI·로봇…'스마트 야드' 구현
VR 도장 교육센터는 한화오션이 구현 중인 '스마트 조선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단면이다. 과거 쇠망치 소리와 용접 불꽃으로 상징됐던 조선소가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인터넷과 인공지능(AI), 로봇 등 전혀 무관해 보이는 단어들이 속속 조선소 안으로 들어오면서다.
지난 27일 찾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은 기존 '사람'과 '경험' 중심의 생산이 '데이터'와 '로봇' 기반의 디지털 및 자동화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른바 '스마트 야드'다.
[출처:한화오션]
스마트 야드의 목표는 간단하다. 정확성 높은 계획을 세우고 이를 적시에 시행해 안전하게 생산하는 것이다. 키워드로는 ▲연결화 ▲자동화 ▲지능화를 꼽을 수 있다.
현재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선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데이터가 모두 수집·공유돼 임직원 모두를 '연결'하고 있다. 누구나 현장 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필요한 정보를 곧바로 찾아볼 수 있다는 얘기다. 최첨단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자동화' 설비들은 힘든 육체노동을 대체한다. 이는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숙련자 부족 문제 해결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지능화' 기술은 작업자의 행동을 분석, 위험 요소를 줄여 더욱 안전한 환경을 만든다.
한화오션은 생산 현장 자동화율을 70%까지 높여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선소를 만드는 게 목표다.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압도적 경쟁력 확보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업계 최초 '디지털 생산센터'…공기 단축·생산성 향상 기여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는 '디지털 생산센터'가 스마트 야드의 전지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2021년 조선업계 최초로 설립했다.
쉽게 말해 공항의 관제탑 같은 개념이다. 여의도 면적의 1.67배(490만㎡)에 달하는 사업장 곳곳에서 발생하는 일을 한눈에 파악하고 문제 발생 시 신속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디지털 생산센터는 2개의 센터로 구성돼 있다. 건조 중인 블록 위치와 생산 공정 현황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생산관리센터'와 바다 위에서 시운전 중인 선박 상태를 육지에서 볼 수 있는 '스마트 시운전센터'다.
[출처:한화오션]
스마트 생산관리센터에선 드론과 사물인터넷(IoT) 센서 등에 기반해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각종 생산 정보를 대형 스크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상 상황 등 생산에 영향을 주는 불확실성을 예측할 뿐 아니라 시뮬레이션으로 위험 요소에 대한 사전 대응도 가능하다.
한화오션은 조선사 최초로 드론을 이용해 생산 현장 실시간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블록과 생산 설비, 장애물 등의 길이와 면적을 자동으로 계산해 활용할 수 있는 적치 공간을 찾아내고 있다. 또한 현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트랜스포터가 블록을 운반하는 데 필요한 최적 이동 경로를 제시한다. 이는 공기 단축과 안전성 확보에 보탬이 된다.
스마트 시운전센터에서는 해상 시운전 중인 선박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엔 시운전 중인 선박에 문제가 생기면 기술 인력이 예인선이나 헬기를 타고 해상에 있는 배로 직접 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곳에서 엔지니어가 원격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전체 시운전 기간을 단축,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현재 실시간으로 2개 호선에서 해상 시운전 데이터를 받고 있다"며 "해상 기후 환경에 대응해 시운전해야 해 해상 환경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1년~1년 반 정도 수집된 해상 빅데이터는 LTE 통신이 일부 제한적인 해상 환경에서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용접 대신하는 '로봇'…안전성↑·노동강도↓
한화오션은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생산 기술과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해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각종 로봇 기술을 용접 현장에 활용, 공정 자동화를 꾀하는 게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지능형 생산혁신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에 성공해 현장에 적용한 로봇이 총 10여 개 분야 80여 종에 이른다. 이들은 용접·가공 등 주요 공정에서 활약하고 있다.
[출처:한화오션]
일례로 탑재론지 용접로봇을 들 수 있다. 조선업계에서 유일하게 외업 용접을 목적으로 개발한 로봇이다. 밀폐구역(이중선체) 용접 직무 특성상 열악한 업무 환경으로 인력난이 심각하다는 점을 고려,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며 개발했다고 한다.
해당 로봇은 소형 경량으로 제작돼 작업자가 들고 이동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무게는 17㎏다. 원하는 위치에 고정하면 30분 정도 용접이 가능하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인체공학적으로 부담되는 위치의 용접도 가능하다"며 "현재 4대를 개발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사람 수작업과 달리 용접량이 일정해 별도의 그라인더 작업도 필요 없다. 지난해 현장 테스트를 마치고 올해 시운전과 작업자 교육까지 완료한 상태로, 내년 본격 적용을 앞두고 있다.
[출처:한화오션]
세계 최초로 개발한 '무레일 EGW 자동용접장치'도 회사의 자랑거리다. 선박 대량 건조를 위해 메가 블록 조립 공법을 쓰며 용접 공정의 단축 기술이 필요해 개발하게 됐다. 통상 블록 12~14개를 하나로 이어 붙이면 선박 한 척이 완성된다.
이전까지는 수직 이음부의 용접에 여러 개의 레일 부착이 필요한 용접장치를 사용했다. 하지만 레일을 까는데 평균 4시간이 걸리는 데다 레일 이동과 부철, 철거에 따른 작업 불편이 뒤따랐다.
이를 개선해 현재는 레일 없이 자석을 설치해 철판에 부착, 롤러를 따라 자동으로 주행하는 로봇을 쓰고 있다. 현장에 투입된 무레일 로봇이 110대에 달한다. 내년부터는 개발 기술 필요로 하는 국내외 조선, 해양 업체에 판매도 할 예정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로봇 개발을 통해 용접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작업 현장의 안전성 강화와 노동 강도 저하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sjyoo@yna.co.kr
유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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