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주부, 회사원, 소상공인 등 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11.1 zjin@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은행팀 =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 종노릇'에 이어 '은행 갑질·너무나 강한 기득권층' 등 은행을 향한 강경 발언을 연일 쏟아내자 은행권이 초긴장 상태다.
올해 초 '은행 돈잔치' 발언 이후 대출금리 인하 등 수조원의 고통 분담안을 내놓았던 터라 이번에도 추가적인 '상생금융' 요구가 나올지를 두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은행권에선 전세계적으로 시장금리가 오른 상황에서 고금리에 따른 고통의 책임을 금융사에만 돌리는 게 억울하다면서도 더 큰 후 폭풍이 몰려오기 전에 대책을 마련하는 게 낫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 '돈잔치·공공재·독과점·갑질·기득권층'…작심발언 지속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일 마포구에 있는 한 북카페에서 주재한 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우리나라 은행은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고 비판했다.
한 자영업자의 금리 부담 호소에는 "(은행들이) 앉아서 돈을 벌고 그 안에서 출세하는 것이 문제"라며 "너무 강한 기득권층"이라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기업 대출에 비해서 가계대출이나 소상공인 대출이 더 부도율이 낮고 대출 채권이 안정적"이라며 "도대체 이런 자세로 영업을 하면 되겠나. 이런 독과점 행태는 정부가 그냥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한 어조로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하며 은행권이 사상최대 실적을 거두는 반면, 서민·소상공인들은 원리금 상환부담에 허덕이는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금리 장기화 속에 은행권이 대출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서민 등 취약계층의 빚 상환 부담은 커지고 있고,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 기조에도 대출을 급격히 늘리면서 이자이익에만 매몰하고 있다는 인식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30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도 대통령실 참모들의 민생 현장 탐방 결과를 설명하며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 자영업자들께서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은행을 향한 작심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 초에도 은행들이 고금리로 벌어들인 돈으로 성과급 잔치를 하고 있다며 '공공재 성격'을 강조하며 관련 대책 마련을 주문한 바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수개월에 걸쳐 '은행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TF'를 운영하며 대대적인 은행 개혁안을 발표했다.
당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주요 시중은행들을 잇따라 방문해 1조원이 넘는 상생금융 자금지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은행권은 윤 대통령이 '종노릇' '갑질' 등 강도 높은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간 은행들의 노력이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의 발언 직후 올 3분기 실적발표에서 역대 최대규모의 이자수익을 낸 것으로 나타났고, 전일 전국은행연합회가 내놓은 '은행 경영 현황 보고서'에서 평균 1억원이 넘는 연봉과 성과급이 공개되면서 은행들의 돈잔치 논란이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금융당국도 윤 대통령의 강도 높은 발언이 이어지자 부랴부랴 추가 대책을 고심하고 나섰다.
특히 윤 대통령이 김주현 금융위원장에게 직접 "정책금융 상품의 금리를 다른 금리가 올라간다고 해서 따라 올리는 것은 맞지 않는 거 같다"고 요구한 만큼 은행들에 관련 상품 금리 인하 등을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또 저금리 대환대출 등 금리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정책 서민금융 효율화 방안' 발표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서민금융 지원에 나설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등 다각적으로 금리 부담 완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일모 제작] 일러스트
◇ "취지는 공감하나 억울한 측면도…할 일은 할 것"
은행권은 적극적인 상생금융 등으로 화답해온 그간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크게 낙심하고 있다.
민간 금융사들의 수익 규모가 적정한 지에 대해 정부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무엇보다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하는 국가에서 민간 금융사 이익 규모에 관여하는 정부 행태는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은행권은 최근의 가계부채 증가세는 물론 고금리로 인한 서민 등 취약계층의 어려움까지 모든 문제의 중심이 민간 은행이라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점에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세엔 정책 모기지의 역할도 분명히 있었던 데다. 최근 소상공인의 위기는 기준금리가 이미 올라와 있는 상황에서 은행권이 자체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게 은행권의 주장이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민간 은행이 돈을 남겼다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정말 당혹감을 느낀다"며 "다른 분야가 어려우니 비교적 튼튼한 은행이 사회적 기여를 늘려달라는 취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비판이 반복되니 피로감이 누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금리 관련 문제를 모두 은행 탓으로 돌리는 최근 분위기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글로벌 고금리 기조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이 모두 국내 은행 탓은 아니지 않나"고도 지적했다.
은행권에 대한 정부의 비판은 지난해 본격화한 고금리 기조로 은행권에 막대한 이자수익이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기준 국내에서 영업 중인 18개 은행들의 순이익은 18조원에 육박했다. 이 과정에서 쌓은 이자이익은 53조 이상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렇다 보니 은행권에선 지난해에 이어 올해 실적이 나쁘지 않게 나오고 있는 분위기를 오히려 부담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늘고 있다.
올들어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요청에 1조원이 넘는 상생금융 행보에 나서기도 했다.
은행권은 정부 압박에 더해 국회 등을 중심으로 횡재세 논의까지 나오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할 때 '상생금융 시즌2'가 도래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은행권의 다른 관계자는 "정부의 취지는 모두 이해하지만 억울한 면이 많다. 횡재세 등은 외국인 지분이 높은 민간 금융사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정부에서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결국 추가 출연을 통해 사각지대를 지원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면 당연히 할 마음은 있다"고 했다.
다만, 최근 연이은 정부 비판에 그간 사회·경제적 문제 해결을 지원했던 은행권의 노력이 평가절되는 것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당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5대 금융지주가 95조원 규모의 지원에 나서며 급한 불을 껐던 점과, 은행채가 채권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어 발행을 중단했던 점, 상생금융 확대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고 있는 점 등이 간과돼선 안된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금융지주의 다른 관계자는 "은행에 공공성이 일부 있다는 점에 대해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며 서민 등 취약계층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정부의 기조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그간의 노력을 통해 은행권 시스템은 상당히 소비자 친화적인 형태로 변했다. 은행들 또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jwon@yna.co.kr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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