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태 기자 = "부정적인 의견을 낼 바에는 보고서를 내지 않는 게 편하다"
지난달 여의도에서 만난 한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같은 생각을 밝혔다. 기업과 투자자로부터 받을 항의가 버겁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 국내 증권사 31곳이 낸 보고서 중 매수 의견은 무려 93.9%였다. 중립(6%)과 매도(0.10%) 의견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애널리스트가 소신껏 의견을 내기가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숫자다.
여기에 더해 애널리스트가 기존의 의견을 뒤집는 데에는 더욱 용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의 길잡이로서 "혼란을 준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하나증권의 김홍식 연구원은 소신이 담긴 보고서로 올해 시장에서 관심을 모았다. 그는 20년 이상 통신섹터 분석을 담당한 베테랑 애널리스트다.
김 연구원은 지난 1월 31일 '2월이면 늦습니다. 매수 서두르세요!'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KT를 매수하라는 의견을 냈다.
구현모 전 KT 대표이사가 3월 주총에서 연임할 것이란 믿음이 확산하는 가운데 장기 경영전략이 시장에 노출될 시기라는 이유 등을 그는 근거로 들었다. 구현모의 KT가 시장 기대만큼의 배당도 이어갈 것으로 본 김 연구원은 "일부에서 지적하는 사법·정치 리스크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연구원은 2월 3일에 '분위기 급반전, 일단 비중 줄이세요'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김 연구원은 "갑자기 의견을 바꾼 이유는 3월 주총에서 현 구현모 CEO의 연임이 확정된다고 해도 경영 불안 양상이 지속될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라며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화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지난 3년간 실적 개선 및 주가 상승을 동시에 이룩한 CEO라고 해도 규제 산업이라는 특성을 감안 시 현재 경영진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KT 이사회는 구현모 전 대표를 차기 후보로 확정한 것을 백지화하고 선임 절차를 다시 추진했다.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데다, 윤석열 대통령도 에둘러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후 KT는 8월 말에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김영섭 후보자를 새로운 대표로 선임했다.
이후 김 연구원은 9월 11일에 낸 보고서를 통해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새로운 경영진이 경영·배당 정책 변경 가능성을 시사했는데 장기적인 KT 체질 개선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단기적으로는 주가 하락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등에서다.
실제로 김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주주 이익 환원은 앞으로 써야 할 돈을 지금 환원하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배당 축소를 시사했다.
김 연구원은 KT가 2014년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2014년은 황창규 전 KT 대표가 2014년에 취임한 뒤 배당 감축과 조직 슬림화를 선언한 시기다. 이로 인해 주가는 단기간에 급락했고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다가 한참 뒤에야 회복됐다.
이달까지 이어지고 있는 KT에 대한 중립 의견에는 비관적인 실적 전망도 한몫했다.
김 연구원은 올해 KT 영업이익이 감소로 전환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내년에도 영업이익 감소가 이어진다는 게 그의 예상이다. 이동전화매출액과 주파수 비용, 인건비 압박 등 때문이다.
그는 "인원 구조조정이 없을 것을 고려하면 획기적인 비용 감축과 수익성 향상이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봤다.
이같은 투자의견과 관련한 시장의 반응을 묻자 김 연구원은 "시장에서 이익 감소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직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올해 과감한 의견을 내며 투자자의 길라잡이가 되어준 김 연구원의 소신을 재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ytseo@yna.co.kr
서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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