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우리나라는 시중금리와 부동산시장의 관계가 매우 취약한 국가로 꼽힙니다. 금리가 크게 오를 때는 주택담보대출의 문턱이 높아지는 동시에 기존 대출의 이자 상환 비용이 많이 늘어나 가구의 재정 여력을 크게 악화시킵니다. 반대로 금리가 낮을 때는 주택담보대출의 신규 수요가 급증해 가계부채 규모를 크게 키우는 문제를 야기합니다. 이는 반대로 적절한 금리정책을 시행하는 데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에 연합인포맥스는 미국과 캐나다 등 주택금융 선진국들의 사례를 살펴보고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기획기사를 송고합니다.]
(서울·뉴욕=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금리와 부동산시장의 관계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고정금리 비중이다.
우리나라는 시중금리와 연동되는 변동금리 주담대 비중이 크다 보니 금리가 급변동할 때 고스란히 주택시장의 취약 요인이 된다. 이런 취약성은 가계부채와 연관돼 금융 안정성을 해치고, 이는 기준금리 정책의 제약 요인이 되기도 한다.
20일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한국의 전체 주담대 가운데 변동금리 잔액 비중은 절반이 넘는 56%에 달한다. 순수 고정금리 잔액 비중은 25.7%에 그치고 고정과 변동금리가 혼합된 상품은 약 20.9%다. 혼합형 금리도 주로 5년 금리 고정 뒤 변동금리로 전환돼 금리 변동에 취약한 구조다.
최근 금리상승으로 주담대 차주의 상환 부담이 가중됐다. 시장금리가 2021년부터 상승하면서 변동금리 주담대 대출의 기준금리로 널리 쓰이는 신규취급액기준 코픽스는 지난 2021년 6월 연 0.82%에서 올해 10월 연 3.82%로 3%포인트가 급등했다.
대출 기준금리가 이런 속도로 오른 것은 유례없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주담대 차주가 빚을 갚는 데 써야 하는 비용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현재 가계대출자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40.3%로 추산됐다. 우리나라의 가계대출자들은 평균 연소득의 40% 정도를 금융기관에 진 빚을 갚는 데 써야 한다는 뜻이다.
가계는 빚을 갚느라 재정 여력이 줄어들고, 이는 소비침체 위험과 경제위기 시 대출 연체 위험을 키운다.
반면 미국은 주담대 고정금리의 국가다. 고정금리 비중이 90%를 넘어선다.
패니매와 지니매 등 정부 지원기업이 주택담보대출을 유동화(시장에서 거래가 될 수 있게 증권으로 만드는 작업)하여 2차 시장(유통시장)에 넘기는데, 이런 증권은 연방정부가 100% 지불보증을 하고 이에 따라 투자 안정성이 국채만큼 높다.
주담대 최초 발행자인 은행이 금리 노출을 줄이면서 초장기 고정금리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다.
이렇게 주담대 시장에서 고정금리 비중이 크면 차주의 현금흐름이 상대적으로 금리의 영향을 덜 받게 된다. 미국에서는 고정금리에다 만기가 30년인 대출이 표준적인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미국 뉴욕시의 노른자 땅인 맨해튼에서 주택 매매 80%가량을 중개하는 부동산중개인 여인제씨는 연합인포맥스와 만나 "금리가 고정된 데다 30년이라는 만기 때문에 차주들이 안정성을 느낀다"며 "주거 비용은 무슨 일이 있든 꾸준히 안정적으로 관리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뉴욕 맨해튼 주택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대표적인 부촌인 오렌지카운티(OC)에서 부동산 거래를 중개하는 정광필씨는 "미국은 정부가 공적자금을 들여 주택담보대출을 채권으로 만들어 고정금리를 보장해준다"며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차주 입장에서 매우 큰 혜택으로, 계획적으로 가계 예산을 짜고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을 받는다"고 소개했다.
물론 고정금리 주담대가 장점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반대로 금리가 하락하는 시기에는 차주가 상환 부담 경감의 효과를 보지 못할 수 있다. 다만, 미국에서는 금리가 내릴 때 새로운 대출 상품으로 재융자(대출 갈아타기)하는 관행이 매우 발달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부동산 중개 플랫폼 컴퍼스(Compass)에 소속된 여씨는 "차주 입장에서 별다른 부담 없이 대출이 남아 있어도 새로운 대출로 갈아탈 수 있고, 새로운 주택의 주택담보대출을 떠안으며 이사 가는 방식도 활발하다"고 말했다.
美 Compass 소속 부동산 중개인 여인제씨
고정금리 주담대가 변동금리 대비 사회 전반의 주거 이동성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현재 미국 주택시장은 주담대를 안고 있는 주택 소유주들이 이사하기 위해 새로운 대출로 갈아타려면 최근 급등한 금리 수준을 감내해야 한다.
이에 따라 기존 주택을 내놓는 소유주가 크게 드물고, 이는 금리가 오르는 데도 미국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기이한 결과를 낳고 있다.
그러나 금리가 급등하면 대출 차주의 부담이 대폭 늘어나고 금리가 하락하면 가계부채 규모를 즉각적으로 키우는 한국보다는 사회적인 부담이 크게 덜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미국 연방주택보증공사인 지니매(Ginnie Mae)의 존 겟치스 수석 부사장은 연합인포맥스를 통해 "고정금리 주담대는 가계 재정의 안정성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면서 "오늘날과 같은 세계의 금리 환경에서는 소비자들이 금리에 대한 보호를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커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권흥진 연구위원은 "정책당국은 10~15년 중기 고정금리 주담대부터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취급하도록 유인하거나 차주들이 5년 고정금리 주담대를 주기적으로 차환해 금리 고정 기간이 길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 연구위원은 "이렇게 단계적으로 유인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ywkwon@yna.co.kr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권용욱
ywk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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