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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떠난 64년 용띠·떨고 있는 63년 토끼띠…여의도 잡은 '50대 CEO'

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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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증권 사옥

[출처 :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인포맥스) 박경은 기자 = 국내 증권업계의 정체성을 쌓아 올린 60년대 초반생 대표이사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불안정한 금융시장 환경에 안정보다 변화를 선택한 곳이 늘어나면서 증권사 수장의 나이는 50대 중반으로 젊어졌다.

끈끈한 네트워킹과 실력으로 자본시장을 주름잡았던 64년생 용띠 군단은 이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다음 세대의 활약을 지켜보게 됐다. 각종 논란의 파고를 넘고 있는 63년생 대표들도 여의도에 불어닥친 세대교체 바람에 마음이 편치 않다.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미래에셋증권, 메리츠증권에 이어 한국투자증권에서도 장수 CEO인 정일문 사장이 후임 김성환 부사장에 자리를 내주며 세대교체의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자리 내려놓는 장수 'CEO'…미래·메리츠 이어 한투에서도 50대 대표 선임

한국투자증권은 23일 이사회를 열고 신임 대표이사로 김성환 개인고객그룹장(부사장)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인사에서 정일문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됐다.

1964년생인 정일문 부사장이 5년 전 대표이사에 올랐던 54세의 나이에 김성환 부사장도 신임 대표로 내정됐다.

김성환 신임 대표가 쌓아온 커리어도 정일문 대표가 걸어온 길이 겹친다. 비록 기업금융 분야에서의 주전공이 다르긴 하나, 두 사람은 30년 안팎의 기간 IB 분야에서의 실력을 보여준 뒤 부사장에 올라 개인고객그룹장으로 활약했다.

일각에서는 정일문 사장의 6연임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왔으나, 한국투자증권도 시대의 흐름인 세대교체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정일문 신임 부회장은 한국투자증권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대신, 부회장의 위치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게 됐다.

그간 증권업계의 헤게모니는 63~64년생이 쥐고 있었다. 이름 세글자로 증권 시장을 움직이는, 입신양명의 아이콘과 같은 이들이다.

메리츠의 운명을 바꿨다는 김용범(1963년생)·최희문(1964년생) 부회장, 국내 IB의 실력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고 평가받는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1963년생), KB의 브랜드에 증권사의 색깔을 입힌 김성현·박정림 대표이사(1963년생)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용띠 클럽' 중 가장 먼저 자리를 떠난 이는 이만열 미래에셋증권 사장이다. 그는 이번 세대교체에서 개국공신 최현만 회장과 함께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놨다.

일찌감치 사내이사로 자리 잡아 대표이사 타이틀을 가장 먼저 쥔 김미섭 부회장이(1969년생) 두 사람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미래에셋의 글로벌 프로젝트를 이끌어 온 김 부회장의 기획력이 인정받은 셈이다.

허선호 부회장과 전경남 사장은 미래에셋의 차기 이사회를 이끌어 갈 사내이사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허 부회장은 김 부회장과 동갑내기고, 전 사장은 1969년생으로 한 살 아래다. 오는 7일 공개될 대표이사 추가 선임의 결과에 따라 미래에셋그룹이 그리는 청사진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김미섭, 허선호 각자 대표이사 체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메리츠금융그룹을 이끌어왔던 김용범·최희문 부회장도 신임 대표에 자리를 내줬다. 특히 1977년생인 김중현 부사장의 대표이사 내정은 '메리츠의 파격'으로 또 한 번 업계를 놀라게 했다. 최희문 부회장이 회사를 맡은 지 14년 만에 결정된 후임은 장원재 신임 대표이사로, 1967년생이다. 신임 대표들은 숫자 전문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1963년생 토끼 군단의 핵심 인물들도 올해 연말 인사에서 연임 여부가 갈린다.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이달 29일 예정된 정례회의에서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 영향권에 있는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한다.

박정림 KB증권 대표,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에 대한 징계 수준에 따라 두 사람 역시 자리를 내놓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달라진 금융 환경에 용인술도 변화…기획·리스크 역량 중요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연말 인사 과정에서 엿보인 증권업계의 용인술이 지난 15년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평가한다.

'원 맨파워'를 중심으로 증권사의 성장을 도모하던 지난 2010년대에는 경험하지 못한 환경이 펼쳐졌다. 그룹의 핵심인 지주사를 중심으로 계열사의 역량을 단단히 집결해야 변화의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 공격적인 영업보다는 리스크 관리와 건전성의 숫자를 볼 눈을 가진 인물이 전진 배치된 배경이다.

증권업계를 이끌어 온 곳들은 '부드러운 세대교체'를 위해 몇 년 전부터 애써왔다.

대표적으로 미래에셋증권은 차세대 리더 육성을 목표로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운용했다. 성과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회장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박현주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사내 임직원은 연수 프로그램에 다녀온 인물들이 차기 리더에 오를 것이라 확신해왔다.

냉담하기까지 한 철저한 성과주의를 제일의 가치로 두는 메리츠금융그룹도 매년 인사에서 이러한 기조를 내비쳐왔다. 성과주의에 기반한 평가는 메리츠 특유의 파격 인사에 근거가 됐다. 사내 구성원들은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이 앞서나가는 결과를 지켜보며 의지를 다져왔다.

그러나 막상 세대교체가 이뤄진 지금, 향후 몇 달간 뒤숭숭한 분위기를 정리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을 보인다.

신임 대표 타이틀을 차지한 이들과 한 회사에서 수십년간 시간을 보낸 동년배 임원들은 자신의 거취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국내 대형 증권사를 기준으로 대표이사를 제외한 부사장, 전무급의 나이는 신임 대표와 비슷하다. 50대 사장보다 경력이 오래됐거나, 나이가 많은 임원들은 '어쨌든 집에 갈 고민을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의 승진과 커리어를 지켜 본 후배 임직원들도 그룹의 판도 변화에 새로운 생존 전략을 꾸려야 할 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존 경영진의 실책, 신임 대표의 성과만으로는 세대교체의 바람을 설명할 수 없다"며 "증권업의 성장 과정을 지켜봤을 때 변화한 환경에 회사를 맞추고 이끌어 갈 새로운 인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gepark@yna.co.kr

박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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