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증권 필두로 확장 잰걸음, 삼성·NH는 주춤…기회 확대 목소리도
(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한국물(Korean Paper) 시장을 바라보는 국내 증권사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외국계 투자은행(IB)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한국물 시장에 도전장을 내미는 국내사가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시장으로 발을 넓히면서 부채자본시장(DCM) 파트 또한 세계화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한국수출입은행 등 주요 발행사의 토종 IB 육성책도 이들의 도전 정신을 북돋웠다.
하지만 트랙 레코드가 중요한 한국물 시장 특성상 후발주자로서의 한계도 명확하다. 동반성장 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토종 IB 육성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KB증권 선두, 미래·한국 눈독…삼성·NH는 자취 감춰
15일 연합인포맥스 'KP물 주관순위'(화면번호 4431)에 따르면 KB증권은 올해 공모 한국물 시장에서 8억6천900만달러의 주관 실적을 쌓았다. 지난 1월 한국수출입은행을 시작으로 KDB산업은행, 한국주택금융공사의 글로벌본드 발행을 주관한 결과다. 이로써 16위에 올라 국내 증권사로는 유일하게 KP 리그테이블 20위권에 안착했다.
수년 전만 해도 KP 리그테이블에서는 국내 증권사를 찾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외국환평형기금채권)나 한국수출입은행 등의 토종 IB 육성책에 기대 이따금 한두 번 이름을 올리는 수준이었다.
국내 증권사의 몸집이 커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자본력에 힘입어 해외 금융시장 전반으로 발을 넓히면서 KP 시장에도 뛰어들고 있다. 직접 달러채를 찍기 시작하면서 자체 발행물로 주관 경험을 쌓기도 했다.
올해는 KB증권 이외에도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공모 한국물 리그테이블에 올랐다.
보조 주관사 격인 코 매니저(co-manager) 등으로 이름을 올린 국내사까지 포함할 경우 신한투자증권과 한화투자증권, 하나증권까지 확대된다.
가장 존재감을 보이는 곳은 KB증권이다. 2020년 KB캐피탈을 시작으로 KB국민은행과 KB국민카드 등 계열 발행물을 잇달아 주관해 실적을 올렸다.
더불어 토종 IB 육성에 나선 한국수출입은행과 KDB산업은행, 한국가스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등의 발행에 참여해 입지를 다졌다.
올해는 한국수출입은행과 KDB산업은행의 달러채를 주관해 국책은행 딜을 섭렵했다. 처음으로 한국주택금융공사 글로벌본드(144A/RegS)를 주관해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자사 달러채 발행에서 주관사로 참여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싱가포르 법인, 한국투자증권은 홍콩 법인(Korea Investment & Securities Asia, Ltd.)이 주관하는 방식이었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SK브로드밴드 달러채 발행에 참여해 기업물 주관 이력을 쌓기도 했다.
반면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은 한국물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 모두 올해 공모 한국물을 단 한 건도 주관하지 않았다.
두 하우스는 최근 한국수출입은행의 글로벌본드 주관사 선정 입찰 제안요청서(RFP)조차 받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해외보다는 국내 DCM 시장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KB증권과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은 물론 신한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하나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이 관심을 높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대형 증권사의 각축전 속에서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은 '초대형 IB'라는 이름이 무색해진 셈이다.
◇경쟁력은 아직, 후발주자 한계도…육성책 확대 절실
국내 증권사의 역량 등을 두고 업계 내 회의적인 시선이 이어지고 있는 점은 극복 과제다. 주관사로서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적극적인 투자로 해외 세일즈 역량 확보 등에 집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토종 IB 육성책에 기댄 기회주의 행보라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토종 IB 지원의 혜택을 받았던 국내 증권사들이 이후 경쟁력 확보는커녕 오히려 한발 물러나는 듯한 모습을 보인 터라 우려의 시선이 드러나는 양상이다.
실제로 최근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당시 우리투자증권)은 10여년 전 토종 IB 육성책에 힘입어 대한민국 외평채라는 탄탄한 이력을 쌓았다.
NH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은 각각 2013년, 2014년 외평채 발행을 주관했다. 당시 국내 증권사의 존재감이 지금보다 더욱 미미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행보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삼성증권은 2017년 또다시 외평채를 주관했다. NH투자증권은 2021년 한국수출입은행, 2022년 한국가스공사 달러채 맨데이트를 받아 토종 IB 육성의 효과를 다시 봤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는 주관사로 뽑히더라도 경험을 쌓는 수준일 뿐 본연의 역할을 다하진 못하고 있다"며 "10년 전 반짝했던 토종 IB 육성처럼 해당 시기가 지나면 다시 열기가 사그라질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전했다.
다만 최근 국내 증권사들은 중장기적으로 한국물 시장에 접근하고 있다. 앞다퉈 아시아 법인에 신디케이트 인력을 갖춘 것은 물론, 조직 정비 등으로 꾸준한 도전을 예고했다.
일례로 KB증권은 2021년 국내에 글로벌 DCM 전담팀을 조직했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최근 외국계 하우스의 DCM 뱅커를 홍콩 법인에 영입해 역량 강화에 나섰다.
국내 증권사의 의지와 달리 한국물 시장은 여전히 후발주자의 진입이 쉽지 않다. 주요 발행사들이 리그테이블을 기준으로 RFP를 발송한다는 점에서 제안서를 낼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사실상 업무 역량을 쌓고 싶어도 쌓을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에 토종 IB 육성에 동참하는 준정부기관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공적 성격이 강한 공기업들이 보다 관심을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투자와 성과가 반복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춰야 경쟁력 제고 등에 힘이 실리는 데 한국물 시장은 후발주자가 맞닥뜨리는 구조적 장벽이 상당하다"며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상생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공기업이라도 토종 IB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공기업의 경우 대부분 과거에 설정한 기준에 따라 주관사를 선정해야 하다 보니 토종 IB 육성 취지에 공감하더라도 국내사를 고려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달라진 시대에 맞게 선정 기준 등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phl@yna.co.kr
피혜림
ph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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