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파 ECB에도 시장은 "연준 따라 금리 인하"
[※편집자주: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에 따른 미국 금융권 혼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챗GPT의 확산…. 올해 금융시장은 연초부터 이어진 대형 뉴스로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연말까지도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정책 전환(피벗)'이란 빅이슈가 이어지면서 내년 금융시장이 만만치않은 변동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연합인포맥스는 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간 2024년 글로벌 주요국의 통화정책과 미국 및 중국 금융시장, 유가와 금 등 원자재 시장을 전망하는 기사를 7꼭지로 정리해 내보냅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문정현 기자 =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완화 기조를 고집한 일본은행(BOJ)이 내년 드디어 출구에 나설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본은행은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 회의에서도 기존의 완화 정책을 유지하고 포워드가이던스(선제안내)를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물가 상승 압력을 고려할 때 내년 정책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추측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몇 년간 되풀이되온 '일본은행 정상화' 이슈가 이번에는 과연 현실로 이뤄질지 주목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피벗(정책 전환) 신호를 보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달리 금리 인하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점점 악화되는 유로존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ECB가 연준과 동조화를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日 내년 '금리가 존재하는 세계'로 진입"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내년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12월 초 "연말과 내년에 걸쳐 한층 더 도전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이에 앞서 히미노 료조 일본은행 부총재도 "출구가 가계와 기업이 미치는 영향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해 시장의 기대에 힘을 실었다. 이후 우에다 총재는 정책 전환을 시사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기대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년 출구를 예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가가 중앙은행 목표치를 계속 웃돌고 있고, 초완화 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일본의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2.9%로 올해 초 4%대보다 둔화됐지만 목표치인 2%를 19개월째 웃돌고 있다.
일본은행이 장기금리를 특정 레벨에 묶어두기 위해 채권매입을 지속하면서 채권시장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해외 금리 급등에 일본 국채금리가 동반 상승세를 보이자 일본은행은 7월, 10월에 장기금리 상한선을 올리는 미세 조정에 나서야 했다.
마이너스 금리가 해제된다면 그 시기는 내년 4월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장 많다.
일본은행이 금융정책과 관련해 가장 중요하게 보는 지표는 바로 '임금'이다. 우에다 총재는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임금 인상률이 2023년 수준(평균 3.58%)을 웃도는지 확인할 수 있는 내년 4월 정도는 돼야 정책 변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이 마이너스 금리 해제보다 먼저 이뤄질지, 아니면 나중에 이뤄질지에 대한 궁금증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YCC 변화의 경우 궁극적으로 금리 인상, 즉 긴축에 해당하는 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더 높은 상황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일본은행이 내년 4월까지 마이너스 금리 해제를 보류할 경우 연준이 조기에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있어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에다 총재는 미국의 금리 인하 전에 일본이 서둘러 정책을 바꾸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언급했지만, 미국과 유럽이 금리 인하를 시작한 상황에서 일본은행이 역방향으로 움직이긴 아무래도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따라서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 전인 1~3월에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즈호은행의 가라카마 다이스케 이코노미스트는 "정책 정상화를 꾀하는 유일한 중앙은행이기 때문에 일본은행의 정책 운영 폭이 매우 타이트할 것"이라며 "가능하다면 연준의 금리 인하 주기가 시작되기 전에 정상화 조치를 취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전 일본은행 이코노미스트이자 일본 물가 연구 1인자로 불리는 와타나베 쓰토무 도쿄대 교수는 "지금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다"며 "만약 우에다 총재가 이번에 금융정책을 정상화할 수 없다면 그는 아마 임기 내내 완화 정책을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시장 관계자들도 일본은행의 변화 가능성에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릴 경우 미 국채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시장 전문가 도시마 이쓰오 도시마&어소시에이츠 대표는 "'금리 없는 세계'에 있는 일본 시장이 정상화로 움직이면 일본의 큰손 투자자들이 미 국채를 처분해 해당 자금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리파트리에이션(repatriation)을 촉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시마 대표는 그간 일본은행에 대한 미국 시장 관계자들의 관심이 크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회의 주목도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 ECB, 연준보다 매파적인 목소리 냈지만…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12월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후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하는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를 늦출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비둘기파적인 목소리를 낸 연준과 비교되며 ECB가 매파적인 스탠스를 이어갔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점차 약화되는 유로존 경제와 연준의 정책 전환을 고려할 때 내년 ECB의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이달 FOMC 회의 직후 한때 스왑 시장에서는 연준뿐만 아니라 ECB도 25bp씩 최소 6회의 금리 인하가 단행될 가능성을 반영했다.
픽테 웰스 매니지먼트의 프레데렉 듀크로제 매크로 리서치 헤드는 "연준이 더 일찍, 더 빨리 금리를 인하한다면 ECB가 (매파적인) 입장을 유지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존 경제 상황을 가늠하는데 중요한 지표로 여겨지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위축 국면에서 탈피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12월 유로존 합성(제조업·서비스업) PMI 예비치는 47.0으로 11월 47.6보다 하락했다. PMI는 올해 6월부터 경기의 확장과 위축을 가르는 기준선인 50선을 밑돈 후 하락세를 이어갔다.
올해 3분기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1% 감소해 2022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했다. S&P글로벌은 "유로존 경제가 3분기 이후에도 침체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올해 1월만 해도 8%대에 달했던 CPI 상승률은 11월 2.4%로 둔화됐다. ECB는 물가 상승률이 올해 평균 5.4%에서 내년 2.7%, 내후년 2.1%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ECB의 첫 금리 인하 시기에 대한 전망은 아직 분분한 상황이다. 이르면 4월께 첫 인하가 나올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상반기에 금리 인하를 예고하고 7월 이전에 금리 인하가 단행되리라는 의견도 있다. 하반기로 금리 인하가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바클레이즈는 ECB가 내년 4월 금리 인하를 시작해 2025년까지 1월까지 인하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최종 예금금리는 2.25%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베런버그는 ECB 총재가 데이터에 의존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첫 금리 인하는 6월 이후, 3분기 중에 이뤄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내다봤다.
일부 미국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처럼 ECB 관계자들도 과도한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ECB 정책위원인 보슈찬 바슬 슬로베니아 중앙은행 총재는 "ECB가 정책 전망을 재평가하려면 적어도 내년 봄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3~4월 금리 인하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ECB도 시장과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지가 내년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jhmoon@yna.co.kr
문정현
jh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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