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문정현 기자 = 올해 국제금융시장은 쏟아지는 미국발 이슈로 연초부터 연말까지 숨 가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연초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고, 연중에는 부채한도와 예산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에 금융시장이 출렁댔다.
연말에는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시장 예상보다 강한 내년 피벗(정책 전환)을 예고하면서 시장을 놀라게 했다.
기업 섹터에서는 챗GPT의 확산으로 인터넷 등장 이후 최대 기술 혁신이 진행 중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 SVB 파산과 미국·유럽 은행권 혼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초고속으로 파산하면서 연초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
주요 고객인 스타트업들의 예금이 줄어든 탓에 대부분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을 어쩔 수 없이 매각, 18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봤다는 은행의 발표가 발단이 됐다.
이후 주가가 폭락하고 고객들의 예금인출(뱅크런)이 가속화돼 2008년과 같은 금융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일었다.
증자에도 실패한 SVB는 결국 퍼스트시티즌스은행에 인수됐지만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시그니처은행 등 다른 지역은행도 잇따라 파산하면서 불안이 이어졌다.
당국이 위기를 예견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이 일었고, 글로벌 중앙은행은 달러 유동성 강화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SVB 사태는 유럽에도 영향을 끼쳤다. 잇따른 대규모 투자 실패로 건전성 우려가 있었던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CS)로 SVB 붕괴 사태의 불똥이 튄 것이다.
스위스 금융당국이 긴급 유동성 지원 방침을 밝히며 사태를 진화하려 했지만 CS의 자금 유출은 계속 심화됐다. 결국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가 구원투수로 나서 CS를 30억스위스프랑(약 4조5천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 연준, 내년 금리인하 예고
연준은 12월 연방공개시장위윈회(FOMC) 회의에서 금리 인상 사이클이 종료되고 내년 금리 인하로 돌아설 방침을 나타냈다. 9월과 11월에 이어 3회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데다 내년 25bp씩 세 차례, 총 75bp의 금리 인하를 예상하면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연준의 긴축 정책이 사이클상 고점이거나 고점 부근에 도달했다. 다음 질문은 언제 정책을 되돌리느냐는 것"이라며 시장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비둘기파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깜짝 연말 선물에 미국 증시의 다우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연중 5%를 넘나들었던 미국 10년만기 국채금리는 4% 아래로 뚝 떨어졌다(채권가격 상승).
기준금리를 '오랜 기간 높게(higher for longer)' 유지하겠다는 발언을 되풀이해왔던 연준이 이제는 '너무 오래 긴축해 경기를 과도하게 식힐 위험'을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시장은 이르면 내년 3월 금리 인하가 시작될 수 있으며, 내년 한 해 인하폭이 150bp에 달할 수 있다고 점치고 있다.
다른 중앙은행들도 긴축 사이클이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음을 시사했다. 9월까지 10회 연속 금리를 올렸던 유럽중앙은행(ECB)이 10월부터 금리를 동결했고 8월까지 14회 연속 금리를 인상한 잉글랜드은행도 9월부터 금리를 유지했다.
◇ 美 디폴트 위기와 신용등급 강등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지난 8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전격 강등했다. 3대 국제 신평사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피치는 미국의 재정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증가 등을 신용등급 강등의 이유로 꼽았다. 2023회계연도에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전년 대비 23% 불어난 1조7천억달러를 기록했고, 국가 부채 규모는 33조달러를 넘어섰다.
피치는 특히 정치권이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치하고 기한에 이르러서야 일이 해결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 다른 국가에 비해 지배구조가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 의회는 6월 초까지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두고 첨예한 갈등을 이어갔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부채한도를 올리지 못하면 '디폴트'라는 경제적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며 여러 차례 호소했으나 정치권은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갔다.
결국 기한인 6월 1일을 코앞에 두고 하원이 합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사태가 진정됐다. 합의안에는 미 대선 이후인 2025년 1월까지 부채한도 적용을 유예하는 내용이 담겼다.
◇ 美 셧다운 위기 고조
미국 정치권 갈등은 하반기에도 지속됐다. 내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의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연방정부의 운영이 일시적으로 중단(셧다운)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9월 마지막 날 하원이 45일간의 임시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하는 듯했으나 이후에도 내홍은 이어졌다.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민주당의 지원을 받아 임시 예산안을 처리한 후폭풍으로 234년 미 의회 사상 최초로 의장직을 박탈당했다.
11월 중순 의회가 내년 1~2월까지 사용할 추가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최종 합의가 내년으로 미뤄진 것에 불과해 내년 초 다시 셧다운 우려가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무디스는 정치 양극화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미국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하기도 했다.
◇ 챗GPT 확산과 샘 올트먼 축출 사태
2022년 11월 첫 등장해 AI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챗GPT'는 올해 글로벌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출시 이후 두 달 만에 사용자 수가 1억명을 돌파하며 1990년대 인터넷과 2000년대 아이폰 등장 이후 가장 큰 혁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용자들은 텍스트와 오디오, 그림,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통해 일상적인 업무의 자동화하고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챗GPT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개발사 오픈AI의 몸값도 1년 새 3배인 860억달러로 불어나 바이트댄스, 스페이스X에 이어 세 번째로 가치 있는 비상장기업으로 등극했다.
챗GPT의 빠른 확산은 인류에 실존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실제 AI 기술개발 속도와 안전성을 둘러싼 시각차로 오픈AI가 내부 분열을 겪기도 했다. 이사회가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를 전격 해임한 것이다.
하지만 오픈AI 대주주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올트먼을 영입하겠다고 밝히고 직원들도 올트먼을 따라 회사를 떠나겠다며 크게 반발하면서 이사회가 백기를 들었다.
올트먼은 축출된지 닷새 만에 CEO 자리에 복귀했다.
jhmoon@yna.co.kr
문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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