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한국은행이 취약부문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운영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금중대) 일부가 병원 등 부적절한 주체의 '눈먼 돈'으로 사용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한은은 금융중개지원대출의 규정을 부랴부랴 개정했지만, 10년 이상 장기간 지속된 발권력 사용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피해 가지 못하게 됐다.
◇병원이 쓸어갔다…신기술창업지원의 씁쓸한 백태
17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중소기업 대상 한시 특례대출 9조 원 지원을 발표한 것을 비롯해 총 30조 원의 금중대를 운용 중이다.
금중대는 중소기업 등 취약 부문의 이자부담 경감을 위해 한은이 이례적으로 발권력을 사용해 낮은 금리의 대출을 제공하는 일종의 정책금융이다.
이런 금중대 프로그램 중 하나인 신기술창업기업지원 자금의 부적절한 지원 실태가 감사원의 감사 결과 드러났다.
신기술창업기업지원은 우수한 기술력을 갖췄지만, 초기 자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기술기업에 저리 대출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3년 도입됐다.
일선 기업이 정부가 인증하는 기관에서 일정 수준 이상 기술신용평가(TCB) 등급을 받으면 은행이 이들 기업에 저리로 대출하고, 한은이 해당 자금의 일부를 은행에 배당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기술 기업과는 거리가 먼 일반병원과 치과병원 등이 해당 자금의 수혜를 가장 많이 본 곳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해당 프로그램으로 돈을 빌린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일반의원과 치과의원이 3년 내내 가장 많은 대출을 받아 간 기업 1, 2위를 차지했다. 기타 보건업과 일반병원, 한의원도 매년 순위권에서 빠지지 않았다.
2022년 말 기준으로 병·의원(일반의원, 치과의원, 일반병원, 한의원, 요양병원, 그 외 보건업)이 은행에서 기술 금융 명목으로 대출받은 금액 총액이 1조5천억 원으로 전체 대출액의 15% 이상을 차지했다.
감사원
이들 병·의원이 의료분야의 기술기업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기술형창업기업으로 분류된 병·의원은 3천196개였는데, 의사 1인 업체가 62%(1천995개), 의사 2인 업체가 19%(606개)였다. 이들의 사업자당 연간 건강보험 급여 청구 건수는 각 9천924건 및 1만5천307건이었다.
감사원은 "이들 병·의원의 일반외래 환자 치료 건수를 보건대 독보적인 기술이 있다거나, 연구개발 위주의 의료 분야 기술형창업기업으로 보기는 어려웠다"고 밝혔다.
외래 환자 진료를 주로 하는 일반 병·의원이 기술기업으로 위장해 저리의 대출을 받아 갔다는 의미다. 취약부문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의 발권력이 대표적 고수익 전문직인 의사들의 배를 불리는 데 가장 많이 지원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증받으면 어쩔 수 없다지만…한은 관리 '구멍'
취지와 한참 어긋난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기본적으로 허술한 TCB 인증에 있다.
한은은 대부분의 금중대 프로그램에서 제외 업종을 지정한다. 병·의원업 포함 부동산업, 숙박 및 음식업 등이 대표적인 제외 업종이다.
하지만 기술형창업기업지원은 제외 업종을 따로 지정하지 않았다. TCB 인증을 받은 경우 기술 창업 기업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TCB 인증이 취지에 맞게 운영될 것이란 전제가 깔린 조치기도 하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드러난 실태는 이런 '이상'과는 거리가 컸다. 전문자격증 보유 시 가점을 받을 수 있는 조항 등으로 의사나 치과의사 등이 대거 TCB 조건을 충족한 것이다.
한은은 TCB 조건을 갖춘 병·의원의 경우 규정상으론 문제가 없는 만큼 대출을 막을 수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지원 대상이 수만 개를 넘어 개별 기업이 취지에 맞는지 실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기는 하다. 하지만 2013년 해당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번 감사가 진행될 때까지 1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실태를 모르고 있었다는 점은 묵과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특히 금중대는 재정이 해야 할 역할을 발권력으로 대신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제도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해 말 국정감사에서 금중대 지원 대상을 줄여야 한다는 견해를 표한 바 있다. 실제 사용 실태도 그만큼 더 엄중하게 관리했어야 할 이유다.
한은은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 이런 실태를 파악하고 최종 감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인 지난해 11월에 기술형창업기업지원에서도 병·의원 등을 제외하는 조처를 했다고 밝혔다.
제외 업종을 설정하는 것은 한은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다. 병원과 치과 등에 지원이 집중되는 현황을 일찍 파악했다면, 감사 이전에도 충분히 부적절한 사용을 막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한은 관계자는 "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실태를 확인한 결과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서 곧바로 조치했다"면서 "감사 이전에는 개별 기업의 실체까지 한은이 파악하기는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jwoh@yna.co.kr
오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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