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 두번째)이 24일 오전 서울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증권업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24 kjhpress@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원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에 대한 고강도 구조조정을 예고했지만 실제 현장의 반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부동산 호황기 매입가 수준을 고수하는 대주단 측과, 가격을 낮춰 매입한 후 재구조화를 거쳐 사업성을 확보해야 하는 원매자 측이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부실 정리를 위한 '물꼬'가 제대로 트이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사태 이후 한 숨을 돌리는 듯 했던 PF시장엔 재차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 "엄청난 강도로 정리"…발언수위 높이는 이복현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최근 해외 출장 일정까지 연기하고서 PF 이슈 챙기기에 집중하고 있다.
감독당국의 문제의식은 최근 이 원장의 발언에 그대로 드러난다.
우선 이 원장은 지난 16일 여신전문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 PF 이슈에 적극 대응해 줄 것을 주문한 뒤, 23일 임원회의에선 부실 사업장의 신속 정리를 강조했다.
부실 PF 사업자 정리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생산적 자금배분과 실물경제 선순환이 저해되는 만큼, 속도감 있는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는 게 이 원장의 판단이다.
특히, 그는 "본PF 전환이 장기간 안되는 브릿지론 등 사업성이 없는 PF 사업장은 원칙적으로 금융사가 2023년 말 결산시 예상 손실을 100% 인식해 충당금을 적립하라"는 고강도 주문도 내놨다.
이는 결국 대규모 충당금을 설정하는 것이 부실 정리의 시작이자 전제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상 사업이 불가능한 곳들도 만기 연장을 거듭하며 '도덕적 해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원장은 이에 더해 "단기성과에 치중해 PF 손실 인식을 회피하면서 남는 재원을 배당·성과급으로 쓰는 금융사에 대해선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이는 주요 부동산 PF 사업장별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대주단 협약 등을 통해 '옥석 가리기'에 집중하겠다던 기존의 입장에서 한 발 나아간 수준이다.
특히, 제2금융권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상호금융의 PF 대출 연체율은 지난 2022년 말 0.09%에서 지난해 9월 말엔 4.18%로 악화했다.
카드·캐피탈사와 저축은행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들 업계의 PF 대출 연체율은 같은기간 2.39%에서 4.62%로, 2.05%에서 5.56%로 올랐다.
이에 이 원장은 지난 24일에는 "PF와 관련해서는 과거 통상적으로 말했던 수준이 아니라 더 엄청난 강도로 진행할 것"이라며 "건설사와 금융사들의 노이즈(잡음)도 있겠지만 이를 감내하고라도 진행해야 된다는 생각이다"고 강조했다.
◇ 총 사업비의 100% 달라는 대주단…운용사 '당황'
이 원장의 문제의식은 현장의 상황을 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대주단이 호황기 부동산 매입가에 프리미엄까지 얹어 총사업비의 100% 이상을 요구하고 있는 점이 구조조정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이지스·신한·캡스톤·코람코·KB등 민간 운용사와 손잡고 출범시킨 '부동산 PF 정상화 지원 펀드'는 현장의 '욕심 전쟁'에 집행이 막힌 대표적 사례다.
캠코와 운용사들이 1조1천억원 규모로 만든 PF 정상화 펀드는 출범 4개월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캠코의 PF 정상화 펀드는 재구조화 가능성이 높은 80여개의 사업장을 선별한 뒤, 이를 캠코 자체 플랫폼을 활용해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운용사 한 곳이 자체적으로 '딜소싱'했던 사업장 한 곳을 제외하면 캠코 펀드가 플랫폼을 활용해 자금을 집행한 실적은 아직까지 '제로(0)'다.
이미 10여개 안팎의 부실·부실 우려 PF 사업장에 대한 입찰이 진행됐지만, 대주단과 운용사들이 가격 눈높이를 맞추는 데 실패하면서 실제 거래로 이어지진 못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총사업비 전부를 건져야 한다는 대주단의 고집에 재구조화 작업에 속도를 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상황"이라며 "결국 버티다 보면 캠코 펀드가 지원해 줄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딜이 진행되는 듯 하다가도 마지막 단계에 가격을 높여 거래 자체를 무산시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며 "왜 해당 사업장에 부실 딱지가 붙었는 지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금융권에선 금융당국이 '유예기간은 끝났다'는 시그널링을 본격화하고 있는 만큼 향후 대주단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캠코 또한 보다 원활한 PF 정리작업을 위해 운영 프로세스 개선 작업을 진행하되, 결코 단기 실적에 매달려 무리하게 딜을 끌고 가진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부동산 PF 사업장의 질서있는 구조조정을 위한 다양한 수단들이 남아 있다"며 "경·공매로 처리할 경우 오히려 복잡한 권리관계가 명확해지는 효과도 있어 최근엔 캠코 펀드 또한 경·공매에 참여할 수 있는 길도 열어줬다"고 말했다.
jwon@yna.co.kr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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