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당일 정정 불가' 입장 고수
영업력 강조 분위기 속 기초 역량 흔들
(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회사채 수요예측 제도가 도입된 건 2012년이다. 12여년가량 회사채 수요예측이 이뤄졌으나 채권 상장 당일에 발행이 취소되는 사례는 흔치 않았다. 금융당국의 보다 엄격해진 잣대가 최근 잇따랐던 철회 등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주관 업무를 맡은 증권사에 대한 책임론도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최근 증권사들이 주관 업무 수임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이어왔던 터라 외형 성장에 치중하다 본질을 놓친 게 아니냐는 쓴소리도 나온다.
◇원칙론 강해진 당국, 늘어난 발행 취소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화의 회사채 발행 철회의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원칙론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금융당국이 발행 당일에는 원칙상 증권신고서 수정이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발행사는 결국 철회를 결정했다. 당국은 자본시장 법령상 증권신고서 정정이 청약(발행일) 전일까지만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해 이를 허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발행금리는 채권의 가장 중요한 정보인 만큼 이를 오기재한 일을 간과하기 어렵다.
문제는 최근 들어 부쩍 상장 당일 채권 발행이 취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금융당국의 까다로워진 잣대가 철회 배경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이 증권신고서 정정 시 단순 오기재로 간주하고 발행 일정을 하루가량 미루는 등의 방식으로 넘기곤 했는데 JB금융지주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실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발행금리 산정 시스템에 당국의 원칙론이 더해지면서 회사채 철회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화와 비슷한 사례가 2021년에도 있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2021년 7월 회사채를 찍은 엔씨소프트는 당시 발행 전일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금리를 잘못 기재했다. 이후 해당 채권은 발행 당일 거래가 정지됐으나 이후 금융감독원이 신고서 정정을 받아들이면서 이튿날부터 매매가 재개됐다.
반면 지난해 HD현대오일뱅크는 금리를 잘못 기재한 7년물 채권의 거래가 발행 당일 정지된 데 이어 그날 곧바로 상장 폐지가 결정됐다. 이번 ㈜한화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한화의 파장은 더욱 컸다. HD현대오일뱅크의 7년물 회사채가 발행일 장 시작 전인 오전 8시 57분에 거래 정지 사실을 알렸던 것과 달리, 한화는 이보다 늦게 오류를 확인하면서 거래가 이뤄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연합인포맥스 '통합시장 일별거래내역'(화면번호 4609)에 따르면 채권 발행일이었던 지난 26일 오전까지만 해도 한화 2년물 채권이 장외에서 120억원 거래됐다. 이후 발행이 취소되면서 해당 거래 건은 화면에서 자취를 감췄다.
㈜한화(A+)의 경우 리테일 시장에서 인기를 끈 A급 채권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혼란을 줬다. 리테일은 사전에 지점 등을 통해 고객을 확보한 후 물량을 확보한다.
하지만 발행일 오전까지도 취소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던 데다 이후 철회로 가닥을 잡으면서 고객들의 불편이 가중됐다. 기관 중심인 AA급 HD현대오일뱅크(AA-)와는 투자자층이 상이했던 데다 A급은 개인 고객 중심이라는 점에서 피해가 더욱 컸던 셈이다.
◇치열한 주관 경쟁 속 흐려진 기본기…책임론 불가피
물론 일차적 책임은 증권신고서 등의 업무를 도맡은 증권사의 몫일 수밖에 없다. 주관사는 채권 발행과 관련한 전문성과 노하우가 강조되는 역할인 만큼 해당 업무에서 발생한 오류를 마냥 실수로만 여기기 어렵다.
특히 회사채의 가장 기본 요소 중 하나인 발행 금리가 연거푸 잘못 기재됐다는 점에서 주관사단의 역량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당국은 증권신고서 제출 기한인 발행 전일 오후 7시를 넘겨도 해당 일자에는 수정에 비교적 유연한 태도를 보여왔다. 사실상 주관사가 채권이 상장될 때까지도 오류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관련 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증권사들의 주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내실보다는 외형 성장에만 치중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자 포섭 등을 통한 주관 경쟁에만 집중하다 보니 가장 기본이 되는 서류 작업에 대한 중요도는 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최근 증권사들이 주관사의 기본 업무보다는 계열 캡티브 물량을 확보해 맨데이트를 받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증권사 내부적으로도 증권신고서를 두고 확인하는 절차가 보다 까다로웠는데 요즘은 증권사는 물론 발행사까지도 캡티브에만 매몰돼다 보니 점차 기본이 흔들리는 분위기"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번 ㈜한화 채권의 증권신고서 작성 업무를 담당했던 신한투자증권 또한 최근 공격적인 외형 확장으로 관련 업계의 이목을 끌던 곳 중 하나다. 그룹 계열사인 신한은행 등의 캡티브 물량을 활용해 연초부터 적극적으로 주관 실적을 쌓아 올렸다. 이어 이번 증권신고서 오기재로 발행 자체가 취소되면서 오명을 피하지 못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회사채 발행 금리는 중요한 정보인데 해당 업무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보여야 할 증권사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문제를 만든 것 자체가 책임감이 부족해 보인다"며 "결국 피해는 수요예측에서 물량을 확보했던 투자자들이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phl@yna.co.kr
피혜림
ph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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