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진정호 특파원 =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오피니언란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사 중 한 명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다. 올해 들어 1월에만 WSJ 오피니언란에 다섯 차례나 그와 관련된 글이 게재됐는데 그에 대한 비판과 이에 대한 반박이 꼬리를 물고 있다.
◇WSJ, 새해 첫 사설로 라이트하이저 저격
WSJ은 새해 들어 처음 발간한 1월 2일자 신문에서 '트럼프의 관세와 일반 시민들(Trump's Tariff and the Common Man)'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역 정책을 비판하며 라이트하이저도 같이 저격했다.
WSJ은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워 대선 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이는 어리석은 짓이라며 무역전쟁은 고통스러운 보복을 야기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최고 관세 전략가인 라이트하이저가 무역전쟁의 악영향에 관한 분명한 증거를 외면하고 있다며 그의 사고방식은 '한때 좋았던' 20세기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라이트하이저는 5일 뒤인 1월 7일 사설을 반박하는 글을 WSJ 오피니언란에 실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관세 정책을 비판한 2일자 사설은 근본적으로 틀렸다"며 "무제한의 자유무역을 밀어붙이는 사람들은 그것이 미국 노동자들에게 재앙적인 결과를 끼쳤다는 점을 인지하고 자신의 오만함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그를 비판하는 일반 독자의 글이 다시 신문에 게재됐고 필 그램 전 미국 상원의원과 도널드 J. 부드로 조지메이슨 대학교 교수도 공동으로 라이트하이저를 저격하는 글을 기고했다. 라이트하이저는 지난달 30일 두 사람의 글을 반박하는 기고문을 다시 실으며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두 사람과 라이트하이저의 공개 논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작년 9월에도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부상하면서 그램 전 의원과 부드로 교수는 WSJ에 이를 비판하는 기고를 실었고 라이트하이저와도 한 차례씩 공개적으로 논박을 주고받은 바 있다.
◇공짜 무역은 없다
라이트하이저가 이처럼 논쟁적인 인물이 된 배경에는 그의 강경한 보호무역주의 사고관과 그에 대한 트럼프의 강력한 신뢰가 있다.
트럼프는 재집권할 경우 해외 수입품에 10%의 보편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기존 관세에 10%포인트를 추가하는 방식이 유력한데 그럴 경우 글로벌 무역갈등은 불가피하다.
이같은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주도하는 인물이 라이트하이저다.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이 있는 만큼 그의 통상 '구루'인 라이트하이저의 견해는 수많은 사람과 산업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자유무역주의자들로선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라이트하이저에 대한 자유무역주의자들의 우려가 특히 터져 나온 시점은 그가 작년 6월 저서 '공짜 무역은 없다(No Trade Is Free)'를 출간한 이후다.
320쪽이 조금 넘는 이 책은 지금 워싱턴 D.C.에서 무역·통상과 관련해 좋든 싫든 읽어야 하는 책이다.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이 책에 담긴 아이디어가 정책으로 현실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이트하이저는 이 책에서 무역 갈등과 관세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자유무역주의 시대가 도래한 이래 수십년간 보기 어려웠던 고율 관세와 무역장벽이 필요하다는 게 '공짜 무역은 없다'의 핵심이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가 접근법은 다르지만 미국 제조업을 재건하고 중국은 더 견제하려 한다는 점에선 같은 노선이라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라이트하이저는 책에서 미국 기업의 중국 투자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이 미국 정부에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보복하면 오히려 미국의 전략적 '디커플링(관계 단절)'에 이롭다며 중국의 무질서한 부상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틱톡 같은 중국 소셜미디어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사업을 못하도록 막아야 하며 모든 비영리 기관은 중국 관련 기관으로부터 받은 외화 지원금을 공개하도록 의회가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국만 견제 대상이 아니다. 라이트하이저는 미국과 가까운 동맹국조차 미국 기업과 생산자를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다며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레토릭과 일치한다.
◇트럼프의 오른팔…재집권시 중추 역할
자유무역주의자들이 라이트하이저를 집중 공격하는 것은 그만큼 그가 트럼프의 2기 집권 계획에서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재선 공약인 '어젠다47'을 보면 공약 중 상당수는 중국과 무역전쟁, 관세 부과 정책 등에 집중돼 있는데 이를 총괄하는 역할이 라이트하이저다.
트럼프의 무역·통상 공약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트럼프 상호무역법(Trump Reciprocal Trade Act)'이다. 상호무역법은 미국과 무역하는 나라가 미국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거나 미국에 수천억달러를 지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는 "다른 나라가 미국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도 똑같이 할 것"이라며 "눈에는 눈, 관세에는 관세"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법이 겨냥하는 것은 중국이다. 트럼프는 1기 집권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중국을 부유하게 만들었고 중국은 축적한 부로 미국의 부동산과 공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관세에 대해서도 "중국 관세 평균은 미국보다 341% 높다"며 불공정 무역을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트럼프와 라이트하이저가 힘을 주는 또 다른 정책은 보편적 관세다.
라이트하이저는 작년 12월 말 미국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5%의 세금이 부과되는 수입 제품에 대한 세율이 10%로 인상되느냐 아니면 15%로 인상되느냐고 묻는다면 15%"라고 밝혔다.
라이트하이저는 트럼프가 퇴임한 이후 미국 무역 적자가 2022년에 약 1조달러로 더 높아진 것이 이같은 관세 정책을 구상한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WSJ에 "트럼프 2기에서 무역 적자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캠프가 구상 중인 보편적 관세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20여 개국에서 수입되는 제품에도 적용되는지 여부는 미정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어떤 결정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트럼프는 또한 기존 법률에 따라 일방적으로 관세를 추가 부과할 수 있는지, 아니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지 여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jhjin@yna.co.kr
진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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