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원 기자 = 해운업계 최대 빅딜이었던 하림-HMM 간의 인수·합병(M&A)이 끝내 무산된 데는, 한국해양진흥공사(이하 해진공)가 협상 과정에서 과도한 경영 견제 조건을 고수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안팎에선 해진공이 '해운업 재편'이라는 대승적 관점이 아닌 HMM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점이 6조원대의 빅딜을 무산시킨 결정적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HMM의 매각 측인 산업은행과 해진공은 우선협상대상자인 하림과의 주식매매계약 및 주주간 계약에 대한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고 7일 밝혔다.
앞서 하림은 지난해 12월 진행된 HMM 지분 57.9% 인수전에 6조4천억원을 써내 동원그룹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후 최종 계약 절차를 진행하면서 '잡음'이 지속됐다. 해진공과 하림 측이 매각 이후 경영 주도권을 누가 쥘 지를 놓고 치열한 대립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양 측의 쟁점은 크게 3가지였다.
우선 입찰 단계에서 하림 측은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해 1조6천800억원 규모의 영구채에 대한 주식 전환을 3년간 유예해 줄 것을 요구했는데, 이에 대해 해진공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내 유일 대형선사인 HMM이 국가 해운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은 만큼 매각 이후에도 경영 견제는 불가피하다는 게 해진공 측이 내세운 주요 논리였다.
같은 취지에서 주주간 계약의 유효기한을 5년으로 제한해 달라는 하림 측의 요구에도 해진공은 난색을 표했다.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해진공은 여전히 HMM의 지분 10% 이상을 보유하게 되는데, 이 경우 양 측의 주주간 계약은 해지가 불가능한 구조다.
하림 입장에선 해진공과의 '불편한 동거'를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 지 예단할 수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이러한 구도가 지속될 경우 경영권을 바탕으로 기업가치 제고 등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게 하림 측의 판단이었던 셈이다.
하림과 함께 컨소시엄 구성을 통해 HMM 인수전에 뛰어든 사모펀드운용사(PEF) JKL파트너스의 지분매각 제한 기한에 대해서도 양 측은 쉽사리 접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PEF의 특성을 고려할 때 5년간 지분매각 제한에서 JKL은 제외해야 한다는 게 하림 측의 주장이었지만, 해진공은 JKL의 빠른 투자금 회수(엑시트·Exit)가 해운업의 국가 경쟁력을 약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경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자정까지 최종 협상을 지속했던 하림은 매각 측에 대부분의 요구를 철회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결국 딜은 무산됐다.
우선 하림 측은 영구채 전환 유예 요구를 일찌감치 접은 데 더해, 주주간 계약 유효기한과 관련한 요청도 막바지엔 철회했다.
JKL의 지분매각 시점 또한 5년이 아닌 3년으로 바꾸는 등 '절충안'을 도출을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이번 딜은 지분 매각을 결정한 해진공이 HMM에 대한 영향력은 놓지 않겠다는 이중적인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특히, 해진공은 HMM 매각 과정에서도 오히려 사외이사를 늘리겠다는 입장을 산은에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을 매각할 경우 기존 주주 추천 사외이사들이 동반 퇴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통상적인 사례와는 괴리가 있는 주문을 했던 셈이다.
하림으로의 매각 작업이 무산되면서 HMM의 처리 방식에 대한 정부의 고민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 2위와 5위인 머스크와 하팍로이드 등이 새로운 해운 동맹을 창설하는 등 해운동맹 재편 과정에서 과거의 출혈 경쟁이 재현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새롭게 매각 작업에 돌입하더라도 국내 원매자를 확보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이번 해진공과의 마찰에서 PEF와의 협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확인된 만큼, 향후 6조원대의 딜을 국내 원매자가 PEF 도움 없이 소화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분위기다.
금융권의 다른 관계자는 "이런 분위기라면 자금조달 능력이 압도적인 해외 선사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며 "비단 하림이 아니더라도 6조원 이상을 쓰고 경영권이 보장되지 않는 딜에 참여할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분 매각과 경영 견제 사이에서 해진공이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않는다면 딜은 계속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jwon@yna.co.kr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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